[파고들기]박나래→브브걸 난데없는 '남혐' 백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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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 분위기 확산되자 여성 연예인들 향한 '사상 검증'까지
신조어만 쓰면 무맥락 '남혐' 프레임 작동…여성 혐오 재생산
"전 사회가 억지 주장에 반응 말아야…정치권은 포퓰리즘 그만"
"언론, 비판 없이 '남혐' 받아쓰기만…페미니즘 가치 판단 사라져"

#박나래는 지난 3월 CJ ENM 웹 예능 '헤이나래'에서 남자 인형의 신체 일부를 묘사하는 수위 발언을 했다가 고발을 당했다. 남자 인형을 상대로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떤 혐의를 적용할 지 고심했던 경찰은 결국 2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혐의없음' 결론을 냈다.

#일명 '군통령'으로 불리는 그룹 브레이브걸스(이하 브브걸) 멤버 유나는 지난 25일 한 인터넷 방송에서 "이번 판은 5억점을 주겠다"는 멤버의 말에 "나 5조억점 땄다"고 답한 것으로 '남혐'(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소속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는 악플러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SBS 웹 예능 '문명특급' 진행자 재재는 지난 5월 한 시상식에서 초콜릿을 집는 손동작 모양을 했다가 '남혐' 논란이 불거졌다. 뿐만 아니라 평소 재재가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내왔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 테러를 당했다. '문명특급' 측은 "퍼포먼스였을 뿐"이라며 "근거 없는 억측과 논란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개그맨 박나래. 이한형 기자

 

19금 개그부터 오조오억, 허버허버, 집게 손가락까지. 난데없는 '남혐' 프레임이 연예계를 휩쓸고 있다. 특히 여성 유명인들을 향해 사상 검증까지 요구하는 분위기다.

앞서 나열한 사건 외에도 많은 여성 유명인들이 최근 일각에서 남혐으로 기정사실화 한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질타를 받았다.

정말 박나래의 언행은 2개월간 경찰 수사를 받을 정도로 남성 인격체를 향한 광범위한 모독이었을까. 많은 연예인들은 해당 단어들을 남혐 의미로 사용한 것일까.

경찰은 박나래 조사 결과 "영상을 확보했고, 판례 등에 비춰봤으나 박나래의 행위를 음란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브브걸 외 다른 사례들 역시 해당 단어들을 문맥상 재미있는 신조어로 사용한 것이지 특정 성별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의미는 없었다. 애초에 이들 단어의 '남혐 유래설' 자체가 일부 남초 커뮤니티 주장일뿐 정확히 검증된 바 없다.

수위 규제가 덜한 유튜브 웹 예능이었을지라도 박나래의 발언은 경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나래에게 모든 사회적 잣대가 더 엄격하게 작동한 것도 사실이다. 과거 다수 남성 개그맨들은 '19금' 개그를 표방해 실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선 넘은 혐오·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았다.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않거나 비판·사과 정도로 끝났지만 박나래 사건의 경우 남성 인형이 '피해자'인 '성희롱' 범죄를 다루듯했다.

남혐 단어로 불리우는 일부 신조어들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검열은 한국 사회 여성 혐오 현상을 바꿔 나가려는 목소리를 억누르고, 오히려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는 153개국 중 10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9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은 67.8%에 불과하다. OECD는 올해 열린 컨퍼런스에서 "한국 남녀 임금격차는 OECD 회원국 중 최고치"라며 "성 격차를 해소하고는 있지만 성평등 문화 자체가 기업과 가정 내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포함된 '할당제'가 있어도 여전히 2021년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 전 세계 121위 수준이다. 세계에서 한국은 비교적 안전한 치안 국가이지만 여성에게만큼은 아니다. 대검찰청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강력범죄 여성피해자 비율은 89.2%로 2000년 강력 사건 전체 피해자 8765명 중 71.3%(6245명)에 비해 20% 가까이 증가했다.

그룹 브레이브걸스.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제공

 

해당 신조어들이 모두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갖더라도 사회 구조적 차별이 없는 이상 실제 피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뿌리깊은 성차별과 맞물려 여성들을 '개념녀' 프레임에 가두거나 성희롱 피해를 유발하는 남초 커뮤니티의 각종 여성 혐오 신조어들과는 그 양상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쉽게 강력범죄에 노출되거나 직장 내 성차별을 겪거나, 임금과 고용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되기 어렵다.

최근 백래시대응위원회를 발족한 여성의당 측 한 관계자는 "일련의 현상들이 여성세력화에 대한 근본적 거부감, 기득권을 내려 놓는 박탈감에 따른 '백래시'(주로 사회·정치적 진보한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행동)라고 본다"며 "국가기관, 언론, 기업 등 전 사회가 억지스러운 주장에 대응하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피드백'을 주다 보니 승리의 경험을 쌓게 되고 여성을 향한 검열로 작동하게 된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여성들은 '기본권'이 침해 당해서 목소리를 낸다. 남초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해봤지만 정말 혐오와 차별을 당해서 분노하는 게 아니라 '남혐' 논란이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재미있는 게임이나 도구일 뿐이었다. 사회적 가치를 지닌 유의미한 논쟁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기분권'이 중요한 트집, 반대를 위한 반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정치인, 연예인 등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인사들의 발언은 또 다시 '백래시' 근거로 활용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성의당 관계자는 "한국 페미니즘은 너무 급진적이고 변질됐다고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자국 페미니즘에 대한 그런 여론이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 위주 사회였다보니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상"이라며 "'백래시' 공격을 계속 사회가 받아준다면 페미니즘은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가치 판단 없이 남초 커뮤니티 주장만 중계하는 언론 역시 백래시 확산에 한 몫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임동준 정책모니터팀장은 "특정 커뮤니티에서 '남혐' 주장이 나왔다고 해도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확산되지 않는데 아무런 비판적 관점 없이 그대로 옮긴다.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이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남성 혐오'라고 주장하는 단어들이 정말 맥락상 혐오 표현인가, 페미니스트 문구 티셔츠를 입은 것이 문제나 논란이 될 수 있는가, 이를 명백히 인지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논란 보도 자체가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폄훼가 될 수 있는데, 상식적 판단이 없는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백래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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