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
"경찰이 신분증 보여달라고 해도 거부하는 세상인데, 일개 모텔 사장이 보여달라고 하면 시비밖에 안 붙어요. '앱으로 다 예약했는데 뭐가 문제냐'며 더 큰소리칩니다."경기도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A 사장은 2년 전 아찔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대실 이용객이 나간 뒤 청소하다 지갑을 발견했는데, 신분증을 보니 미성년자였던 것. 국내 대표 숙박업 중개거래 플랫폼(숙박앱) 야놀자를 통해 들어온 손님이었다.
A씨는 지갑을 찾으러 온 미성년자에게 대실비를 돌려주면서 '이렇게 미성년자가 오면 내가 범죄자 되니까 제발 다시는 오지 말아달라'고 거의 빌다시피 당부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A씨는 "그 학생이 키도 덩치도 워낙 큰 데다 옷차림도 성숙해 미성년자일 거라곤 생각 못 했다"면서 "숙박앱이 보편화된 뒤 손님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것은 민폐일뿐더러, 무엇보다 "악성 후기로 보복당한다는 게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신분증 확인'이 고객의 재방문율을 낮추거나 별점 테러를 당하는 제살깎아먹기가 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게 업주들의 공통된 얘기다.
또 숙박앱으로 예약한 고객이 아니라면 신분증 확인은 당연하고, 대실이나 숙박, 방 종류 등에 대한 대화 몇 마디만 나눠봐도 미성년자인지 아닌지 대략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엔 숙박앱으로 예약한 화면만 보여주면 끝이니, 손님과 대화를 나누며 미성년자 여부를 알아차리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16년간 서울에서 모텔 사업을 해온 B씨는 "숙박업자들은 24시간 미성년자 감시와 실랑이로 밤잠을 설친다"면서 "미성년자들은 오히려 숙박앱로 예약 다 했는데 왜 안 받아주냐고 따지고, 설령 미성년자인 걸 알고 돌려보내더라도 숙박앱은 환불도 해주지 않는다. 원성과 손실 모두 숙박업주의 몫"이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숙박앱 예약後 바로 입실, 마스크로 얼굴도 안 보여 확인 어려워
청소년보호법상 남녀 청소년들의 숙박업소 혼숙은 금지됐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야놀자와 여기어때 등 숙박앱 회원가입 절차에는 성인인증 시스템이 따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메일과 비밀번호, 약관 동의 후 휴대전화를 통한 인증번호만 입력하면 만 14세 이상 청소년도 회원가입과 예약이 가능했다. 숙박앱이 오로지 혼숙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사실상 미성년자 혼숙을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업주들이 입실 전 방문객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구조다. 만약 고객이 10대 청소년인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책임과 검증에 대한 책임은 숙박업자에게만 돌아간다. 이들이 숙박앱에 성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특히, 마스크 때문에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기 어렵고 숙박 앱 예약 손님은 이미 요금을 모두 지불한 뒤 방문하기 때문에 미성년자들이 프리패스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주들은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숙박업주 C씨는 "정말 순수하게 동성끼리 여행하는 경우도 있기에 미성년자의 모텔 출입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성인인증을 최소한 10대라는 것을 업주가 인지한다면, 행여 범죄 등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준다든지, 복도 CCTV가 잘 보이는 방을 주는 식으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게라도 해달라"는 주장이다.
실제 야놀자와 여기어때 등 숙박앱이 청소년 남녀 혼숙을 조장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숙박앱에 가입한 중소 숙박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숙박앱 활용업체 애로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숙박앱과 거래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숙박앱을 통해 예약한 미성년자의 위법한 혼숙으로 인한 신분 확인 애로'(49.6%)라고 답했다. 신분 확인 없이 숙박앱을 통해 결제하고 곧바로 입실하기 때문에 연령 확인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미성년자 투숙, 폭행·금품 갈취 범죄도…"적발되면 업주만 처벌"
지난 2월에는 또래 청소년을 모텔에 가두고 뜨거운 물을 얼굴과 몸에 부으며 때리면서 돈을 뜯어내기까지 한 10대 세 명이 각각 실형과 집행유예에 처했다.
이들은 16세 남학생을 협박해 10만 원을 계좌로 송금받고 모텔로 데려가 옷을 벗게 한 뒤 약 15시간 동안 감금 및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얼굴과 가슴 부위를 때리고 커피포트에 있는 뜨거운 물을 붓기까지 했다.
앞서 지난 2018년에는 남녀 10대 청소년 7명이 성인 남성들을 모텔로 유인해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했다. 이들은 '가출팸'을 조직해 모텔에서 숙식하며 인터넷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미성년자의 범죄와 일탈 등이 잇따르자 전국의 모텔 운영자 1만 7천여 명이 모인 단체인 '모텔은 아무나 하나'(모아하)는 매주 광화문이나 야놀자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성년자들의 모텔 출입을 방치'한 숙박예약 앱 업체들을 규탄하고 있다.
모아하는 "미성년자 고객들이 '야놀자'로 예약하고 모텔까지 당당하게 오는 이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야놀자와 미성년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미성년자 손님을 받은 업주만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성인인증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모텔 업주들이 광고비·수수료 및 미성년자 예약 관련 고충을 수차례에 걸쳐 얘기했지만,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오직 덩치 키우기, 고액광고 유도에만 집중하고 미성년자 출입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흔히 보는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19세 이상 영상물일 경우, 시청 전에 성인인증을 하라고 한다"면서 "야놀자의 자본금으로 얼마든지 가입과 예약 전 시스템을 통해서 필터링할 수 있을 텐데 업주들에게 과도한 광고비와 수수료는 받아 가면서 미성년자 혼숙에 대한 원인 제공과 판매를 한 숙박앱은 '나 몰라라' 하는, 도덕성이 결여된 운영 행태에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소년 보호법은 혼숙을 금지"…"청소년이라서 숙박 서비스를 이용 못 하는 건 아니야"
야놀자 제공
이에 대해 야놀자 측은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의 숙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혼숙을 금지하고 있다"며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숙박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또 "앱에서 미성년자를 판단하려면 주민등록번호 수집 또는 실명인증이 돼야 하는데 온라인 예약 서비스의 특성상 실제로 숙박을 예약한 이용자와 실제 투숙자가 다를 수 있다"며 "이에 개인정보 수집 최소 원칙에 따라 야놀자에서는 개인정보 수집을 하지 않고 사용자의 최소 정보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업주가 법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반드시 사용자의 연령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놀자 관계자는 "미성년자가 투숙을 시도하면 혼숙 여부와 무관하게 업주가 미성년자에게 투숙 자체를 거부할 수 있도록 취소·환불의 예외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즉 청소년 보호법에서 정한 청소년 혼숙보다 당사는 더 엄격한 기준을 고객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현장에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업주가 투숙을 거부할 경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해당 이용자에게 어떠한 환불도 해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