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네이버 노동조합 관계자. 연합뉴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국내 대표 IT 기업들이 초과 근무와 직장 내 괴롭힘, 소통 부재 등 화려한 외양에 가려졌던 내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취업하고 싶은 기업' 같은 조사에서 늘 상위권에도 오르는 등 쾌속 성장을 거듭하며 내로라하는 기존 재벌을 제치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국내 인터넷 업계의 양대 산맥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주 52시간 초과 근무 등 근로기준법 위반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IT기업 특유의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 구조를 추구해왔지만, 덩치가 커지면서 기존 대기업의 경직된 문화를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 노조 "과도한 업무 모욕적 언행 시달려"… "문제 제기했지만 경영진 방조·묵인"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지난달 25일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임원A)에 대해 7일 "고인이 2년 이상 회사에 수차례 문제 해결을 요청했음에도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3월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한성숙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도 관련 문제가 제기됐지만 해결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건에 대한 첫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노조는 동료 증언, 과거 사내 메신저 등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고인이 직속 상사였던 임원A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으며 2년 이상 회사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묵살당했다고 했다.
노조는 "자체 조사 결과, 임원A는 고인에게 회의 중 물건을 집어던졌고 스톡옵션 부여 등 인사권한을 앞세워 강하게 압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고인의 죽음은 회사가 지시하고 회사가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다"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그러면서 이 GIO와 한 대표 역시 이번 일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일찍이 괴롭힘 관련 문제 제기가 있어 왔던 임원A를 회사가 '책임 리더'라는 자리에 선임한 것에 대해 "지난 3월 4일 이 GIO와 한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한 직원이 (임원A 선임 관련) 정당성을 물었지만, 동석한 인사 담당 임원은 '책임 리더(임원A)의 소양에 대해 경영 리더와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으며 더욱 각별하게 선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고 했다.
이 GIO와 한 대표 참석 회의가 열린 지 약 3개월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은 임원A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왔던 정황이 경찰과 노조의 조사에서 각각 드러나고 있다.
노조는 "고인과 동료들이 2년 가까이 문제 해결을 위해 사내 절차를 밟아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했다"면서 "무책임하게 방조한 회사 역시 고인의 비극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사와 수사 이후 노조가 참여하는 재발방지 대책위원회를 꾸릴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또 책임이 드러난 상급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과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경영진의 사과 등도 촉구했다.
◇"꿈의 직장인 줄 알았는데"…IT업계 곳곳서 '진통'
연합뉴스
"꿈의 직장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다르죠. 다른 대기업보다 더 수직적인 부분도 존재합니다"대형 IT(정보기술) 기업 출신인 스타트업 기업의 이모 임원은 최근 논란이 된 네이버 본사 직원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여전히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시절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과를 위해서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수직적인 문화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네이버에 이어 카카오의 노동 환경도 도마 위에 올랐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근로기준법을 다수 위반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이 지난 4월 카카오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일부 직원에게 법정 상한인 주 52시간 이상 근무시키거나 임산부에게 시간외근무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근로감독은 올해 초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직장인 커뮤니티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게임업계에서도 노사 갈등이 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넥슨은 게임 개발 프로젝트가 종료·중단돼 업무 재배치를 기다리는 직원 중 1년 이상 업무에 재배치 되지 않은 인력 10여명에게 임금을 4분의 1을 삭감하고, 3개월의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이에 지난 1일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는 "노동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일방적 조치다. 일을 시키고 성과와 평가를 논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넥슨은 "직원들이 집중적인 역량향상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200만원의 외부교육 수강비를 지원하며 내린 결정이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