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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동 비석마을 '핵심유산' 철거했는데…유네스코 등재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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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등재 위해 비석마을 종합조사
이달 철거한 은천교회, 비석마을 '핵심유산'에 포함
비석 남은 지역도 주차장 건립 사업으로 '완충구역'서 제외
부산시 "문화재 등록 안 돼 철거 막을 방법 없었다"
전문가 "있는 유산도 못 지키면서 세계유산 등재라니" 비판

지난 12일 부산 아미동 은천교회 철거 직전 모습. 박진홍 기자

 

피란민 애환이 고스란히 남은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의 역사와 보존 가치를 조명하는 첫 종합조사 결과, 최근 철거한 은천교회가 '핵심유산'으로 분류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란수도 부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도전한다는 계획이지만, 있는 유산도 못 지킨 상황에서 등재를 도전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대 산학협력단은 부산시 의뢰로 지난해 5월부터 1년 동안 '아미동 비석마을 생활문화 자료조사'를 벌였다.

조사단은 아미동 비석마을 역사와 유산 발굴, 구술기록 수집 등 사상 최초로 전방위적인 조사를 벌였는데, 특히 마을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핵심유산' 11개소를 발굴했다.

핵심유산에는 이달 이미 철거가 이뤄진 은천교회가 포함돼 있다.

아미동 비석마을 핵심유산 11개소. 이미 철거된 은천교회가 중요도 '상'으로 표기돼 있다. 아미동 비석마을 생활문화 자료조사 보고서 캡처

 

조사단은 은천교회에 대해 "1950년대 교회 건축물로 종교사·건축사적 큰 가치를 지닌다"며 "한국전쟁기 피란민과 빈민에게 구휼 및 교육 활동하던 종교기관이자, 지역 공동체 거점인 동시에 1950년대 우리나라 석조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건축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명시했다.

보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외국 사례에 비춰보면 역사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은천교회 (철거 관련) 도로계획 선회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은천교회가 보존된다면 아기보살집, 비석계단집 등을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연결 가능해 보존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중요성을 언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은천교회는 지난 12일 아미4행복주택 건설 관련 도로 확장공사로 서구청에 의해 철거된 상태다.

여기에 더해 당초에 조사단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묘지로 추정되는 비석마을 일대 2만 1,366㎡를 '완충구역'으로 지정했다.

완충구역이란 역사 문화재 주변 경관 등을 지키기 위해 지정하는 보존구역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사 기간 중 서구청이 완충구역 내 부지에 천마산 모노레일 주차장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3,792㎡가량이 완충구역에서 제외됐다.

현재 서구청은 이곳에 주차장을 짓기 위한 보상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건설 대상지에 포함된 주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일대 주택에 내걸린 '철거 반대' 현수막. 박진홍 기자

 

조사 책임연구원인 부산대 건축학과 우신구 교수는 "은천교회의 경우 조사가 너무 늦게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미등기 건물이라 철거가 안 됐더라도 문화재 등록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다른 지역 근대등록문화재와 비교해 봐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어 "완충구역에서 제외한 부지에도 비석은 남아있고, 일제강점기 공동묘지의 일부였지만 핵심유산은 없었다"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지금은 그저 평범한 주거지일 뿐이라 주차장 건설도 진행되고 있지만,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고 완충구역으로 설정됐다면 개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시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이 제시한 조건을 해소해 '피란수도 부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7년 12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8곳을 잠정목록에 조건부 등재하면서, 피란생활상을 반영하는 유산을 추가하고 종합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하라고 제시했다.

이에 부산시는 아미동 비석마을과 우암동 소막마을을 목록에 추가했는데, 비석마을 가치 규명을 위해 이번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피란수도 부산' 9개 유산. 부산시 홈페이지 캡처

 

부산시는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핵심유산이 문화재로 등록된 상태가 아니어서 철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문화재 지정이 안 된 유산의 지정·등록을 추진하고 있으며, 문화재 지정이 돼야 보존이 이뤄진다"며 "다만 문화재 지정에는 심의 등 과정이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전제했다.

이어 "은천교회는 조사 과정에서 가치가 발굴돼 서구청에 중요성을 전했지만, 도로 확장공사 주체는 서구청이라 시가 간섭할 수 없었고 소유주도 문화재 신청을 하지 않아 철거를 막을 수는 없었다"며 "다만 사진과 도면 등을 조사 내용에 담아 가치를 기록으로 남겼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구청 관계자는 "애초에 시로부터 비석마을 연구용역 범위를 '비석주택' 인근으로 전달받고 생활상을 반영해달라고 권고를 받았는데, 이후 구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은천교회에 대해서도 역사적 가치가 논해졌다"며 "현재 비석마을 일대에 진행 중인 아미·초장 도시재생 뉴딜사업에도 은천교회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노레일 주차장 부지도 완충구역에 포함돼 있지 않아 도시계획사업이 가능하고, 이 구역 자체도 공적으로 지정된 게 아니라 학술용역에서 임의로 지정한 것"이라며 "문화재로 등록된다면 개발행위가 제한되겠지만, 지금처럼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개발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철거 예정인 은천교회 외벽에 라벨이 붙은 모습. 박진홍 기자

 

문화재 전문가는 남아있는 근대유산도 지키지 못한 지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데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은천교회나 천마산 모노레일 주차장 부지는 모두 보존돼야 하는 곳"이라며 "구청이 필요한 것만 보존하고 그렇지 않은 건 없애버리는 상황에서 부산시는 철거를 못 막는다면 이전 비용이라도 지원했어야 했는데, 계획만 거창하고 예산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를 한다는 건 '앞으로 우리가 문화유산을 이렇게 보존하겠다'는 의미인데, 만약 유네스코에서 '등재 전에도 유산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등재 이후에 지킨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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