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누가 엄마들을 무릎 꿇렸나…'학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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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학교 가는 길'(감독 김정인)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아이들에게 학교란 그들만의 즐거운 세상이자, 세상과 사람을 배워가는 창구다. 모든 아이는 학교에 갈 권리가 있고, 여기에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여전히 발달장애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엄마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감독 김정인)은 사회 속 혐오와 차별에 맞서 앞으로 나아간 용기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학교에 가는 길만 왕복 1~4시간, 이렇게라도 등교할 수 있다면 다행인 일이다. 장애 학생 수에 비해 그들이 갈 수 있는 학교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2013년 서울시교육청은 폐교를 맞은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현 서진학교)를 설립한다는 내용의 행정 예고를 내렸다. 그러나 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건립하겠다는 지역구 의원의 난데없는 공약까지 맞물리며 지역 주민들은 특수학교 건립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다.

주민들은 특수학교를 '기피 시설'이라 명명하고, 결사반대를 외친다. '장애인은 나가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의 반대 외침 속에는 장애 아이를 둔 학부모들을 향한 온갖 혐오와 차별의 언어도 포함돼 있다.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학교 가는 길'은 강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의 개교를 위해 무릎까지 꿇는 강단과 용기로 17년째 멈춰 있던 서울 시내 신규 특수학교 설립을 끌어낸 용감한 어머니들의 사연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영화는 서진학교 건립을 위해 투쟁한 장애 학부모들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서진학교들 둘러싼 갈등을 통해 혐오와 차별, 그 안에 담긴 또 다른 차별,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 부재 등을 폭넓게 바라본다.

그 안에서 엄마들은 개인의 힘으로 아이들의 등교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연대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엄마들이 원하는 건 그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 그 단순하고도 모두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그 당연함조차도 그 앞에 '장애'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난제로 변한다.

특수학교 설립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 역시 하나같이 특수학교를 '기피 시설'이라 부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어 기피와 기피가 아닌 것을 구분한다. 반대 주민들은 또한 특수학교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 지역'이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안에는 역시나 장애인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다.

서진학교 건립을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도덕책 보는 시대가 아니라고도 한다. 하지만 과연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를 편히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도덕책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건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결국 반대 주민의 반대 논리 속에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린 '다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이 폭력적인 혐오와 차별에도 엄마들은 쓰러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상처를 뒤로 한 채 아이들의 등교를 위해 싸워나간다. 이에 앞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발달장애를 둔 가족으로서 이겨내야 했던 개인적 투쟁을 넘어 사회를 향한 투쟁에 나선 엄마들이다.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살피며 그들의 용기와 연대를 이야기한다.

카메라가 조명하는 것은 단순히 학교 건립 과정에서 보인 민낯뿐만이 아니다. 서진학교 건립 반대에 담긴 혐오와 차별의 인식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혐오와 차별을 비춘다. 서진학교 건립부지에 위치했던 공진초등학교에 담긴 난개발로 인한 빈부 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 그것이다. 이 역시 우리 사회의 민낯 중 한 부분이다.

'학교 가는 길'은 학교 건립 속에 담긴 혐오와 차별만을 담아내지 않는다. 학교 이후의 삶, 즉 사회가 그들을 사회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여전히 미흡함을 알려준다. 사회 복지 시스템의 부재 속에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다 해도 이후의 삶은 또다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시스템의 부재는 결국 일가족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영화 '학교 가는 길' 스틸컷.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는 이처럼 학교 건립 문제가 아주 기본적이고 시작점에 있는 시스템일 뿐, 더 나아가서 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돌봄과 자립이 장애 가족 개개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일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를 남의 일, 그들만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받아들여야만 풀어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아마도 이러한 것이 무릎을 꿇어서까지 학교를 만들고자 한 엄마들이 진정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학교 가는 길' 속 엄마들의 투쟁과 그 지난한 여정을 통해 이러한 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99분 상영, 5월 5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스튜디오 마로·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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