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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 삶 간직한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모노레일'에 철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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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비석 위 수십년 거주한 부산 서구 주민들 '철거 위기'
비석마을 일부 주차장 부지로 계획…'천마산 모노레일' 사업 일환
주민들 "문화마을로 지정하더니, 이젠 마을 없애려고 해"
서구 "주차장 건설 필요…이달 중순 보상 절차 시작"
전문가 "'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등재 움직임과 정면 배치" 지적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주민들이 손으로 쓴 '철거 반대' 현수막. 박진홍 기자

 

6.25 전쟁 당시 부산에 모인 피란민들이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정착하면서 조성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일부가 관광용 모노레일 건설로 뜯길 위기에 처했다.

고령자가 대부분인 주민들은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갈 곳을 잃게 됐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묫자리 건들면 명줄 짧아진다" 마을 곳곳에 '철거반대' 현수막

3일 오전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이곳 특유의 계단식 주택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오르니, 주민들이 손글씨로 무언가를 빼곡히 적어 놓은 붉은색 현수막이 보였다.

현수막에는 "주민 일동 철거 결사반대", "서민들 집을 빼앗지 마라", "여기서 뼈를 묻고 싶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주택 외벽에도 "묘지 자리 건드리면 명줄 짧아진단다", "70년 보금자리 쫓아내지 마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일대 주택에 내걸린 '철거 반대' 현수막. 박진홍 기자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지난해 갑자기 들려 온 주택 철거 소식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였다.

주민 A(65·여)씨는 "서구청에서 천마산에 모노레일을 지을 예정인데, 승객을 위한 주차타워를 이곳에 만든다고 하더라"면서, "마을이 사라진다는 소리에 주민들이 모두 우울해하고 있고,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몸져누운 사람도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이곳 주민 대부분이 오랫동안 거주한 70~80대 노인들"이라며 "전화만 한 통 하면 각자 밥 한 공기, 반찬 하나씩 가져와 모여 먹는 달동네인데, 주민들이 돈도 돈이지만 이런 정 때문에 다른 곳으로 안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관광용 모노레일' 위해 '문화마을' 주민 이주할 판

주민들에 따르면, 이 마을은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을 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서구 대신동~충무동 일대와 용두산공원 등에 모여 살던 피난민들은 시에서 군용천막과 구호품을 준다는 말에 천마산 중턱으로 이주했다.

천막을 치고 살던 주민들은 생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규격화된 일본인 공동묘지에 대리석으로 된 비석을 기둥 삼아 지붕을 이고 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미동 일대 달동네는 10여년 전부터 독특한 분위기와 피난민 역사가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일부 정비도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해 서구청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추진 중인 천마산 모노레일 사업과 관련해, 비석마을 일부를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일대에 내걸린 '철거 반대' 현수막. 박진홍 기자

 

이 마을에서 6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B(70·여)씨는 "전쟁 때는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가서 살라고 하더니, 이제는 무허가 건물이라며 '부담금 내라', '나가라'고 한다"며 "다른 곳보다 철거비용이 덜 든다는 이유만으로 이 마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철거 대상인 집들 아래에는 지금도 일본사람들 비석이 곳곳에 묻혀 있다"면서, "어느 날 갑자기 여기를 '비석문화마을'이라고 이름 붙이고 문화재 가치를 언급하더니, 이제는 또 비석마을을 없앤다고 한다"며 황당해했다.

주민 C(77)씨는 "비석마을 중 빨래터 등 정비가 된 곳은 아미동 16통 지역이고, 구청이 철거한다는 지역은 17통으로 비석마을 전체의 6분의 1 정도 된다"며 "17통은 특별한 시설은 없지만, 집 아래에 비석이 16통보다는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차장을 만드는 목적은 결국 관광용 모노레일이라는 이익사업인데, 사업을 위해 마을 비석마을 일부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뚜렷한 대책도 없이 시유지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제철거하겠다는 것은 행정 횡포라고 생각하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 높였다.

◇문화재 전문가 "'피란수도 부산' 정체성 없애는 행정" 지적

서구청은 천마산 모노레일 탑승객 편의 등을 위해 주차장 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구 관계자는 "비석마을 일부에 속하는 아미동2가 3천25㎡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2층 규모 주차장을 지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며 "이는 천마산 모노레일 사업의 일환이며, 오는 9월 착공해 내년 말까지 건설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철거 대상은 건물 32동, 46세대로 예상하고 있다"며 "이번 달 중순쯤 철거 보상을 위한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서구의 이런 계획이 피난민 생활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비석문화마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부산시 움직임과 전면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마을을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없애면 안 된다"며 "관광객을 위해 주민들을 희생시키겠다는 건데, 마을 주민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건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피란수도 부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 중인 부산시가 나서서 서구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주차장 부지는 의견 수렴을 통해 다른 대안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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