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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포미니츠' 김수하 "피아노 예뻐하자 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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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복역 중인 난폭한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 역
6개월간 피아노 맹연습…4분간 피날레 연주로 관객 사로잡아
"나를 믿어주는 크뤼거 덕분에 삶의 상처 조금씩 아물어"
국립정동극장에서 5월 23일까지

배우 김수하. 국립정동극장 제공

 

"제니가 치열하게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에요."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 중인 창작 초연 뮤지컬 '포미니츠'에 출연 중인 배우 김수하(27)의 말이다.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동명의 독일영화(2006)가 원작인 '포미니츠'는 60년간 재소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온 '거트루드 크뤼거'라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다.

김수하가 맡은 역할은 살인죄로 복역 중인 18세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스스로를 가두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최근 국립정동극장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김수하는 "결핍이 많은 제니가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크뤼거를 만나 서서히 마음을 열고 가슴 속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모습을 연기한다"며 "관객들도 제니의 모습을 통해 삶의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포미니츠'는 단국대에서 뮤지컬을 전공한 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런던 웨스트엔드 등 해외에서 주로 활동해온 김수하가 2년 전 국내로 복귀한 후 출연하는 세 번째 작품이다. 6개월간 맹연습한 끝에 작품 속에서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하는 김수하는 "스스로 피아노를 예뻐하자 무대에서 소름돋는 순간이 생겼다"고 웃었다.

[ 다음은 일문일답 ]

뮤지컬 '포미니츠' 중 한 장면. 국립정동극장 제공

 

▷ '제니'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저는 작품을 하게 되면 먼저 그 캐릭터가 갖고 있는 결핍이나 상처를 들여다 봐요. 누구나 말 못할 고민과 상처가 있잖아요. 그것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게 작품 속 캐릭터에요. 제가 27년간 살면서 겪은 작은 상처를 크게 만들어서 그 캐릭터에 대입시키는 편이에요. 제니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재능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요. 결핍이 많다보니 사랑하는데도 서툴고 사랑받는데도 서툴죠. 그런데 자신을 잔심으로 대해주는 크뤼거를 만난 후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받고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죠."

▷평소 본인과 정반대되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오는 즐거움은?

"제니는 극적인 캐릭터에요. 살면서 할머니한테 욕하고 남자를 때려 눕히지는 않으니까요. 크뤼거가 제니한테 하는 말이지만 저한테 하는 말인 것처럼 와 닿을 때가 있어요. 극 후반부에 크뤼거가 '넌 아직 밝고 창창해. 후회들로 너의 날을 강물에 흘려 버리지 말라'고 말해요. 공연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 다짐해요. '난 아직 젊고 태양처럼 밝구나. 허투루 살지 말자.' 스스로 힐링된다는 점이 이번 작품을 하는 보람이죠."

▷이번 작품 하면서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발견한 점이 있나

"제니는 항상 날이 서 있어요. 버럭버럭 소리지르고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불같이 화내고. 평소에는 남들 배려하면서 살다보니까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내기 쉽지 않지만 제니는 그렇게 하잖아요. 사람들이 눈채치지 못하는 순간 제니의 그련 모습이 터져 나와야 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어요. 언젠가부터 저를 내려놓았고 크뤼거가 독방에 갇힌 제니를 찾아간 장면에서 크뤼거에게 진심으로 소리지르는 저를 발견했어요. 순간 '이게 정말 제니일지 모르겠구나' 싶었죠."

국립정동극장 제공

 

▷온 몸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노 연습과정이 궁금한데

"피아노는 어릴 때 딱 1년 배운 게 전부에요. 직년 10월쯤 연습 들어가고 나서부터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던 것 같아요. 노래, 춤, 연기와 달리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벗어난 영역이니까요. 주변에서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줘도 저조차 스스로를 못 믿는 게 답답했죠. 그러던 중 동갑내기 음악조감독이 피아노 레슨 후 보내준 메시지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김)수하야, 피아노를 예뻐해주면 좋겠어. 피아노는 널 기다리고 있어. '포미니츠'라는 작품을 만나서 너가 피아노를 싫어하게 될까봐 걱정돼.' 생각해보니 저는 단 한 번도 피아노를 사랑한 적이 없었어요. 피아노랑 항상 싸우고 있었죠. 그 다음날부터 피아노를 어루만지면서 '사랑해. 잘 부탁한다'라고 속삭였어요."

▷4분간의 엔딩에서 '제니'와 배우 김수하는 어떤 마음을 연주했을까

"제니와 피아노는 애증 관계에요. 그토록 증오하지만 제니는 스스로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요. 나아가 피아노는 제니 인생의 전부죠. 피아노 때문에 소중한 걸 잃었지만 얻기도 하니까요. 이 장면은 제니 자신을 위해 연주하죠. 제니는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거에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줘.' 크뤼거가 브라보를 외칠 때 제니가 정말 순수하게 웃죠. 배우 김수하로서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제니를 보여주기 위해서 젖먹던 힘까지 써요. 1시간 50분 동안 에너지를 쏟고 나면 공연 막바지에는 기진맥진해요. 4분 동안 현을 뜯고 두드려야 하는데 저도 모르는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4분간의 연주가 끝난 후 '제니'와 배우 김수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제니는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서 연주에 몰입해요. 연주를 마치고 나서야 관객이 눈에 들어오죠. 그 순간, 제니가 보는 관객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 없어요. 그런데 어둠 속에서 크뤼거의 모습을 보고 제니는 엄마 잃은 아이가 엄마를 되찾았을 때의 안도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배우 김수하로서는 '내 연주가 천재 피아니스트 연주처럼 보여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가장 커요. 그래도 지금은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멘탈이 생겼어요. 제니라면 신경 안 썼겠죠. 제가 점점 제니와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하하"

국립정동극장 제공

 

▷'제니'가 보는 '크뤼거'는 어떤 사람이고 '크뤼거'는 왜 '제니'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제니가 처음으로 말을 듣게 되는 사람이에요. 아빠가 자신을 억압시키는 존재였다면 크뤼거는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할 것 같은 사람이죠. 그래서 더 반항하고 싶지만 크뤼거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제니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죠. 한편으로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에요. 제니가 진심과 다르게 말을 내뱉는다는 걸 크뤼거는 알죠. 더구나 크뤼거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연인 '한나'를 잃었잖아요. 죄책감 때문에 제니를 더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니'가 방어막을 쳤던 '크뤼거'에게 마음을 여는 결정적인 지점은 언제일까

"청소년 콩쿠르 본선에 갔을 때 제니가 망상에 시달려요. 사람들이 '넌 살인자야'라고 수군댄다고 생각하죠. 그때 크뤼거가 '제니는 특별해요. 도망치지 말아요'라고 얘기해요. 그 말에 제니가 허를 찔리죠. 교도소에서 사고를 칠 때마다 자신을 억압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모습을 보고 크뤼거에게 서서히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 늘 정돈되고 꼿꼿했던 크뤼거도 제니와 진심으로 교감하면서 웃음이 많아지고 부드러워져요. 제니가 잃어버린 아이 '오스카' 얘기를 꺼낸 다음부터죠. 제니가 머리를 묶는 것도 이 장면부터에요. 외적인 모습에 변화를 줘서 제니의 마음 속 상처가 조금씩 아문다는 것을 표현한 거죠."

▷김수하 배우 주변에도 '크뤼거' 같은 존재가 있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저의 재능을 처음 알아봐 주신 이아라 선생님, 대학 입시를 앞두고 만난 유영재 선생님, 그리고 제가 런던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할 수 있게 길을 터준 양준모 선생님, 맹성연 작곡가님, 요코 선생님에게 고마워요."

국립정동극장 제공

 

▷전작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과 '포미니츠' 모두 창작초연이다. 창작초연의 매력은 뭔가

"제가 그 캐릭터를 처음 연기한다는 거죠. 그 작품의 넘버(음악)와 대사를 내뱉는 것도 제가 처음이고요. 창작진과 출연진의 필요에 따라 작품을 바로바로 수정하는 것도 장점이죠."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자신인상(스웨그에이지),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렌트)을 받았다. 수상이 동기부여가 되나

"신인상 받았을 때는 '상을 받기 전과 후가 똑같은 사람이 되자'는 마음이었어요. 올초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나서는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했죠. 수상하고 다음날 '스웨그에이지' 무대에 섰는데 부담감이 컸나봐요. 제가 맡은 '진' 캐릭터 솔로곡 '나의 길' 끝나고 퇴장하자마자 울었어요. 몇 주 동안 오묘한 감정이 들었는데 소속사(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님이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외롭고 쓸쓸해지겠지만 배우라면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선배들도 그런 과정을 거쳤어'라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과 맡고 싶은 캐릭터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제가 미국(렌트 '미미')에서 조선시대(스웨그에이지 '진')로 갔다가 독일(포미니츠 '제니')로 왔잖아요. '김수하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 얘기 들을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국립정동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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