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검은사제들 중 한 장면. 알앤디웍스 제공
"조명 맛집", "조명만 봐도 티켓값 뽑아요."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 중인 신작 창작뮤지컬 '검은사제들'에 대한 관객의 평가다.
엑소시즘을 다룬 동명영화(2015)를 뮤지컬로 옮긴 검은사제들은 조명쇼를 보듯 강렬한 조명으로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김신부'와 신학생 '최부제'가 교단의 반대를 무릎쓰고 악령에 씌인 고등학생 '영신'을 구하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조명을 적극 활용한다. 장면과 캐릭터에 따라 조명 빛깔을 달리 해 성스러움과 공포스러움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패턴(인물에 묻어 있는 조명의 그림자)을 많이 이용해 앙상블 배우가 연기하는 악령의 존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이는 원유섭(45) 조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2004년 연극 'TV동화 행복한 세상'으로 무대예술 조명 디자인계에 첫 발을 디딘 그는 연극과 뮤지컬, 소극장과 대극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최소 70여 편의 작품에 참여했다. 대표작으로는 뮤지컬 '호프', '빨래', '더데빌', '브로드웨이 42번가', 연극 '아마데우스', '나쁜자석' 등이 있다. 조명장비 전문 업체인 '아트원플러스'(직원 14명) 대표이기도 하다.
특히 영신이 몸에서 악령을 떨쳐내는 구마(엑소시즘) 의식 장면에 공을 들였다. 선과 악이 교차하는 구마 의식은 오묘하게 변하는 조명과 영신이 악령과 사투하는 듯한 안무, 신부들의 기도문 읊는 소리가 섞여 몰입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원 디자이너는 "대학로의 1천석 이히 중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은 무대 세트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극 분위기를 바꿀 때 조명을 많이 사용한다"며 "오컬트 장르라서 조명 디자인할 때도 판타지적 요소를 강조했다. 악령은 패턴과 원색을 활용해 강렬함을 줬고, 무대 옆에 설치한 조명기기에서 수직 구조물에 빛을 쏴서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 이미지를 만들고 성스러운 느낌을 살렸다"고 했다.
검은사제들같은 창작 뮤지컬은 신경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원 디자이너는 "대본, 음악 등이 이미 나와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달리 창작 뮤지컬은 셋업부터 해야 하니까 작업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이게 바로 창작 뮤지컬의 매력이다.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늘 설렌다"고 웃었다.
원 디자이너가 작업한 조명 디자인이 늘 호평만 받았던 건 아니다. 그는 2014년 '더 데빌' 초연 작업에 참여했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악마를 소재로 한 록뮤지컬이라서 조명을 강하게 가져갔죠. 이례적으로 객석에도 빛이 비추게 하고요. 그런데 공연 커뮤니티에 '눈 멀겠다', '작대기 조명이냐' 등 악플이 쏟아졌어요. 저같은 시도를 한 디자이너가 없었기 때문에 생소했던 거죠. 다행히도 재공연할 때는 '빛샤워 하러 가자', 어느 좌석이 빛이 잘 들어온다'며 호평 일색이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저보다 조명을 더 세세하게 분석하는 관객도 있다. 관객들이 '믿고 보는 조명'이라고 표현해줄 때 정말 고맙다"고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뮤지컬 '빨래'다. 2009년을 시작으로 총 8번이나 참여했다. 원 디자이너는 "극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섬세하게 조명을 쓴 작품이다. 조명을 떠나 팍팍한 서울살이를 견디는 등장인물들의 삶에 공감이 가서 좋아한다"고 했다.
원 디자이너 역시 팬데믹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연계가 생각 보다 더 어려워요. 저 역시 1년에 네 작품씩 참여하다가 작년에는 거의 작업을 못했죠. 장비를 극장에 걸어놓은 상태로 셧다운 되기도 했고요. 그래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어서 팬데믹이 걷혀서 '조명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대면공연이 정상화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