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24)은 범행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 상에서 큰 딸로부터 차단을 당한 김씨는 다른 사람으로 가장해 큰 딸에게 접근, 근무 일정을 파악하기도 했다.
9일 '노원 세모녀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노원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큰 딸 A씨와 친분을 쌓게 됐다. 주로 게임 내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던 김씨와 A씨는 지난해 11월쯤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후 올해 1월 초 강북구 한 PC방에서 만나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한 김씨와 A씨는 같은 달 23일 공통으로 알고 지내던 지인 2명과 함께 넷이서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김씨와 A씨 사이에 어떤 다툼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날 저녁 식사 이후 A씨가 김씨에게 연락하지 말라며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김씨의 스토킹은 시작됐다. 김씨는 다음 날인 24일 A씨 거주지 인근을 찾아갔다. 이를 근무하던 중 알게 된 A씨는 잠시 차단을 풀고 김씨에게 "왜 거기 있느냐", "만날 일 없으니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김씨는 돌아가지 않았고, 인근을 배회하다 귀가하던 A씨를 마주쳤다. A씨는 다시 한 번 '찾아오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김씨의 스토킹 행각은 집요해졌다.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A씨에게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만24세)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서울북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연락을 차단하고 만나주지 않아 화가 나 배신감을 느껴 살해를 결심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인들은 김씨와 A씨가 연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분명한 건 피의자 스스로도 연인이 아니라고 하고, 피해자의 지인들도 연인이나 진지하게 만나 교제한 사이는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약 두 달간 스토킹 행각을 이어가던 김씨는 사건 발생 일주일 전쯤부터 범행을 계획했다. 인터넷으로 '급소' 등을 검색하는가 하면, 본인이 평소 쓰지 않던 다른 게임 아이디로 A씨에게 접근해 근무 일정 등을 파악하기도 했다.
게임 내에서 다른 사람으로 가장한 채 A씨와 대화를 하면서 지난달 23일 근무가 있고, 24~25일이 휴무라는 점을 파악한 김씨는 23일 범행을 저지르기로 계획했다.
김씨는 사건 당일 A씨 거주지 인근 PC방에 잠깐 들러 화장실을 이용한 뒤, 마트에서 범행 도구인 흉기를 훔쳤다. 이후 퀵 서비스 기사인 척 위장해 피해자들 자택에 침입했다. 혼자 집에 있던 A씨의 여동생을 살해하고, 뒤이어 귀가한 어머니와 A씨를 차례로 살해했다.
심지어 김씨는 피해자들 자택에 침입하면서 갈아 입을 옷도 미리 준비해 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직후 피가 묻은 옷을 벗고 준비해간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를 살해하는 데 필요하다면 가족들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만24세)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서울북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경찰은 이날 오전 9시쯤 살인·절도·주거침입·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정보통신망 침해 등 5개 혐의로 김씨를 구속한 채 검찰에 송치했다.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이렇게 뻔뻔하게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죄책감이 많이 든다"며 "살아있다는 것도 정말 제 자신이 뻔뻔하게 생각이 들고, 유가족분들과 저로 인해 피해 입은 모든 분들께 사죄의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씨의 범행 동기와 범죄 심리 등 싸이코패스 성향 검사를 진행한 경찰은 자료 분석을 토대로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사건 당일인 지난달 23일 서울 노원구의 한 PC방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