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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LH 이사회…도 넘은 제식구 감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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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2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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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이사회 회의록 분석…부실한 기록에 논의·결의 과정 '깜깜이'
작년 10차례 이사회 중 절반이 '서면'…일부 이사 전문성 놓고도 논란

그래픽=김성기 기자

 

NOCUTBIZ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강도 높은 개혁이 예고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요 경영사항을 논의하는 이사회마저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투명하게 운영돼야 할 이사회가 '깜깜이·거수기'로 운영되고 있고 내부 비리에도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보이고 있어 이사 선임과 이사회 운영에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연합뉴스가 LH의 이사회 회의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사회에 상정된 35개 안건 중 31건이 원안 그대로 의결(보고)됐다.

나머지 4건 중 1건은 문구를 일부 수정한 뒤 의결됐고, 1건은 조건부 의결됐으며 2건은 부결됐다.

부결된 2건을 살펴보면 제1차(1월17일)·제7차(6월16일)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으로, 두 건 모두 '계약사무 조달청 위탁안'이었다.

두 안건은 LH 직원들의 계약사무 관련 비리 및 계약사무 관련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해 상정됐다.

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7조는 공기업 임직원이 계약과 관련한 혐의로 기소되거나 감사원·내부 감사에서 중징계를 요구받은 경우 소관 계약사무를 조달청에 위탁하는 방안을 마련해 이사회 심의를 거쳐 위탁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1년에 두 차례나 계약 관련 비위가 이사회에까지 보고된 점으로 볼 때 LH의 공직기강이 얼마나 해이하고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비위 재발을 막고 조직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이사회가 정부가 마련한 조달청 위탁안 등 보완 장치를 거부하며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보여 결과적으로 비위 재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사회 운영도 투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LH 이사회는 지난해 35건의 안건을 논의하면서 원안 그대로 의결된 경우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논의 과정이나 이사들의 발언 등 구체적인 내용을 회의록에 남기지 않았다.

이사회 회의록에는 안건에 대한 결론과 함께 참석자 발언 요지를 남겨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결의했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앞서 지적한 '계약사무 조달청 위탁안'의 경우 두 차례 모두 참석자 발언 요지란에는 "위탁 불찬성"이라는 다섯 글자만 적혀 있고, 논의 결론란에는 "부결"이라는 기록만 남겼다.

어떤 이사가 위탁안에 찬성하고 혹은 반대했는지, 찬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

문구를 일부 수정하고 의결한 3차 이사회의 '인사규정 일부개정안'도 참석자 발언 요지에는 '안 8조 1항 및 48조 1항 문구 일부수정'이라고 기록돼 있고, 어떤 문구를 왜 어떻게 수정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6차 이사회에 올라온 '인사규정 일부개정안'의 경우도 참석자 발언 요지는 '안 9조 및 35조 기간 적정성 재검토'라고 쓰여 있을 뿐 어떤 기간의 적정성을 재검토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LH는 "이사들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위해 녹취록 형태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으며 관련 지침에 기재해야 할 사항을 반영해 작성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61조)은 "공기업 이사회 회의의 개최일시, 장소, 참석자 명단, 회의에서의 참석자 발언내용, 회의결과 등을 기록한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돼 있다.

LH는 이 규정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것인데, '참석자 발언내용'을 기록하도록 한 해당 규정을 지극히 좁게 해석해 자의적으로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LH처럼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이사회 회의록에 참석자 발언요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해 공개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참석자의 주요 발언을 별도로 발췌해 소개하기도 한다.

인천공항공사의 올해 제2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안건으로 올라온 8건 중 '참석자 발언요지'에 "없음"으로 기록된 것은 '2020년 종합감사 결과보고' 단 한 건에 불과하고 나머지 7건은 모두 이사들의 발언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있다.

'21년 인천공항에너지 자금차입에 따른 지급보증안'과 '폴란드 바르샤바 해외지사 설립계획안'의 경우 이사회 회의록 마지막 부분에 '참석자 주요 발언 발췌'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해 총 10차례 열린 LH 이사회 가운데 5번이 서면으로 대체된 것도 부실한 운영 사례로 꼽힌다.

공기업 경영에 관한 지침 제57조는 "이사회 회의는 대면회의(영상회의 포함)를 원칙으로 하며, 서면에 의한 이사회 회의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도로 운영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해 이사회의 절반을 서면으로 대체한 것은 책임 있는 이사회 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이사들의 전문성을 놓고도 논란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LH는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으로부터 당시 8명의 비상임이사 중 6명이 문재인 정권의 이른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 사태가 터지고 보니 이사회 운영이나 구성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 같다"며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이사회에 참가하는 경우 이사회가 사장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책임경영에 문제가 생기는 만큼 이사회가 투명하게 운영되고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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