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영화톡]'승리호' 할리우드급 CG에 K-감성 버무렸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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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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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한국 영화가 드디어 우주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할리우드가 독식한 우주 SF 장르에서 한국 영화의 기술적·서사적 확장을 당당히 알렸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직후 세계 1위에 오르며 저력을 확인했다. '승리호'를 통해 무엇을 이뤄냈는지,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어떤 점을 돌아봐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VFX가 창조한 韓 최초 2092년 우주 SF

유원정 기자(이하 유) : 우주 공간, 위성 궤도, 노동자들 구역, 상업 구역, 공장, UTS, 우주 쓰레기 하치 위성 등 진부하지 않게 구성된 다양한 공간들이 좋았다. 솔직히 VFX(Visual Effects·시각적 특수효과)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우주 공간 자체를 그런 식으로 섬세하게 연출한 적이 없지 않았나. SF는 배경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면 안 되는 게 관건인데 그걸 최대한 극복하려 한 노력이 보였다.

최영주 기자(이하 최) : 덱스터 스튜디오가 긴 세월 쌓아 온 기술력을 '승리호'로 폭발시킨 느낌이다. 우주나 다양한 배경, 우주선 추격전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훌륭했고, 흥미로웠다.

유 : 놀랐던 건, 라그랑주 포인트에 들어갔을 때 붉은 나노봇이 승리호에 붙었다 해체되는 장면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승리호 선원들의 생사가 달린 심각한 장면에서 CG가 이상하면 웃길 수 있는데 그런 위화감 없이 잘 구현됐다. 또 인상 깊은 건 정비창 공장 내부 도주로 등 공간 구조 자체를 엉성하지 않게 꼼꼼히 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소위 할리우드 영화 같았다.

최 : 정말 제대로 된 VFX 비주얼 영화가 완성됐다. 2092년의 우주와 광활한 공간을 누비는 우주선들, 승리호 선원이자 로봇인 업동이(유해진), 그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할리우드 못지않은 기술력을 눈으로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속도감이 느껴지는 우주선 추격 액션신이 멋지다고 느꼈는데, 문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주가 아닌 우주로 가져와 리메이크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추격전이 오락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유 : 극장에서 오락적으로 소비되는 영화의 90%는 할리우드 영화가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영화를 보면 사실 크게 다른 플롯을 취하거나 서사 구조 자체가 특이하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CG로 구현되는 재미과 쾌감을 소비하는 건데,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그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기승전'신파 가족애'의 과유불급

최 : '승리호'는 조성희 감독이 생각하는 어떤 희망과 믿음들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어린아이를 통해 만나는 희망적인 미래, 대안 가족의 탄생,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환경문제, 노동 문제 등 사회적인 면까지 봤다는 점에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메시지가 담기면서 스토리가 이어지는 사이사이, 캐릭터 서사에 구멍이 생긴 느낌이다.

유 : 그냥 '우리가 세계를 구한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캐릭터 서사를 보강해서 매력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는데 연출이 넘쳤다.

최 : 맞다. 넘치는 과정에서 많은 시청자에게 지적받았듯이 부성애가 지나치게 신파적인 코드로 흘렀다. 주인공 태호(송중기)와 영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부성애 코드가 예전 '부산행'처럼 신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태호가 과거와 상처를 극복하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부성애는 필요한 장면이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그런 느낌이 났던 것 같다.

유 : 태호와 딸 순이의 과거 상황을 더 불쌍하게 만들어서 태호 불행 서사를 너무 쌓으려 했다. 회상 부분은 건조하게 가고 후반부에 순이가 쓴 일기를 보고 마음을 돌리는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된다고 본다. 애초에 한국 정서상 혈연이 아닌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가족애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 관객들 성향도 그렇고, 특히 OTT 이용자가 이런 신파를 별로 좋아하는 소비층이 아니다.

최 : 많은 주제 의식을 담고자 했지만 이야기와 캐릭터의 흐름은 부성애로 귀결되는 느낌이다.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좋지 않았나 싶다.

유 : 과유불급이었다. 영화가 너무 많은 걸 담다 보면 캐릭터는 메시지를 위한 도구로 변질돼 매력을 잃을 수 있고, 묵직하게 던지는 주제 의식 자체도 희석된다.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송중기 서사 '몰빵'이 낳은 의문점

유 : 인터넷에 그런 글이 있더라. 만약 장 선장(김태리)한테 서사를 몰아줬으면 어떨까 하는 거다. 장 선장은 제임스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체제에 반역을 일으킨 인물이다. 태호나 장 선장이나 함께 발탁돼 UTS로 갔지만 태호는 애초에 설리반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미 그곳의 기득권층이었던 장 선장이 어떤 계기로 설리반 체제에 반감을 가졌는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UTS 체제 안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러 의문점들이 남는다. 부성애를 빼고 계급, 노동, 미래 우주사회 착취 문제 등을 보여주고 대안 가족의 탄생은 도로시(꽃님이)가 승리호 선원들과 가족이 되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최 : 맞다. 부성애, 가족애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려 하면서 그것이 다른 의문점들, 그러니까 설리반이 가진 비밀이나 UTS의 체제, 장 선장이 왜 체제 전복을 노렸는지, 도로시는 왜 설리반에게 위협인지 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메시지로 가기 위한 소재들이 꾸깃꾸깃 넣어지면서 물 흐르듯 엮이지 않았다. 방식의 문제인 것 같다. 설리반이 꿈꾸는 소수만을 위한 세상과, 꽃님이(박예린)의 대사로도 나오지만, 승리호 선원같은 오합지졸, 낙오자, 사회적 약자, 노동계급 등 95%가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의 대립에 초점을 맞춰서 의문점들을 풀어내고 이야기를 이끌어 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유 : 도로시도 설리반의 악행을 증명하는, 그의 이기심과 인류의 위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해법이 되는 중요한 캐릭터였다. 인류의 위기이자 해법을 물체가 아닌 생명을 가진 아이 모습으로 구현한 것도 좋았다. 그래서 더 다루기 까다로웠겠지만, 승리호 공동체의 가치 변화와 성장 같은 정서 부분을 도로시가 연결고리로서 매끄럽게 이끌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도로시의 서사를 검은 여우단의 설명으로 끝내 버린다. 굉장히 중요한 키 캐릭터로 사용한 건 맞으나 방향성이 설리반과 똑같다. 캐릭터가 각자 주체적으로 존재해야 그 리얼리티와 몰입도가 높아지는데 주연의 서사를 보강하기 위한 촉진제로 사용됐다는 게 아쉽다.

최 : 도로시를 중심 소재로 사용해서 영화의 극적 재미도 높일 수 있었고, 여러 의문점을 설명해 가면서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었는데 결국 부성애, 가족애로 흐르기 위한 수단처럼 사용된 면이 있다. 순이로부터 태호의 부성애를 이어받아 각성시키는데 이용된 것 같다고 할까. 물론 아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더 덜어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유 : 설리반도 악인이 아니라 도로시처럼 각성제로 작용했다. 설리반이 계속 승리호 선원들을 방해하지만 설리반이라는 악인 자체를 존재감 있게, 선명하게 가져가지 못했다. 왜 검은 혈관의 괴물이 되는 부작용이 생겼는지, 왜 나노봇에 욕심을 냈는지 등 두텁게 쌓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서사가 있었을 텐데 빠진 느낌이다. 너무 많은 걸 넣다보니 제대로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행을 선택한 '승리호'

유 : 넷플릭스 선택은 오히려 득이지 않았을까. 해외 인지도가 높은 리처드 아미티지를 기용하면서도 한국적 요소가 들어간 연출 포인트 등이 보편성과 특수성 모두를 잘 살렸다. 충분히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다고 본다. 할리우드 SF 영화를 닮아가려 하지 않고 한국식 위트, 로컬 문화까지 재밌게 보여주려 시도한 지점이 있다. 한글이 쓰인 우주선이나 기동대를 피해 도망치는 포대기 어부바 장면, 화투 치는 장면 등 '사이버펑크'스러운 신들이 기억난다.

최 : SF 장르라는 게 해외 진출에 유리한 콘텐츠인 것 같다. 물론 할리우드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지만, SF에 익숙한 해외 팬들까지 포섭할 수 있는 콘텐츠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보지 못한 한국식 가족 감성이 들어간 데다 비주얼도 할리우드에 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커다란 스크린에서 빵빵한 사운드로 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유 : 말한 대로 이 영화를 큰 데서 봤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상업화를 노려서 이런 영화를 만든 게 처음이다시피 한데 그걸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 안타깝다. 그리고 가족애라는 부분이, 우리는 한국 영화에서 이미 많이 봤으니까, 신파고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 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 보기엔 한국만의 매력적인 서사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최 : 외국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방탄소년단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한다고 들은 것 같다. 기존 팝과 달리 성적이지 않고 욕설이 들어가지 않은 착한 가사라고 할까. '승리호'도 그런 것 같다. 착한 영화다.

유 : 주로 SF영화라고 하면 굉장히 산뜻하게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할리우드식 영화가 선호된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딱 오락과 쾌감만을 주겠다는 목표 말이다. '승리호'는 소위 말해서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문화 가치에 부합하게 만들어진 영화랄까. 다소 외국과 양상이 다른, 건강한 느낌의 공동체 의식이 SF와 접목해 해외 영화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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