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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보냉백서 나온 꼬깃한 만원 한 장…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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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2600가구에 우유 전달…매일유업 5년째 '동행'
한국야쿠르트, 전국 1만여명 프레시 매니저 네트워크로 홀몸노인 건강·안전 '확인'

아직은 어두컴컴한 새벽, 여정녀(88)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문고리를 더듬었다.

손잡이에 걸려있는 보라색 보냉백을 열자 180㎖ 우유 세 개가 들어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배달오는 우유는 할머니에게 식사이고 간식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살아있다는 '신호'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유 한 컵 먹어요. 얼마나 보람 있는지 몰라요. 아유 너무 고마워. 내 돈 주고는 먹지도 못 해요."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은 18년 전인 2003년 옥수동 달동네에서 처음 시작됐다.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배달원이 보냉백에 우유를 넣고 있다. 매일유업 제공

 


'우유배달'을 이끄는 서울 옥수중앙교회 호용한(64) 목사는 처음엔 '뼈가 약한 노인들을 위한 영양보충'을 목적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2007년 노인의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고독사 방지'로 방향을 틀었다.

배달된 우유가 두 번 이상 쌓여있을 경우, 대리점이 구청과 교회에 연락해 집 안을 살핀다. 홀로 사는 노인이 사망했을 경우를 염두한 대책이다. 실제 지난해 2월 성동구 금호4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에게 배달된 우유가 보냉백에 그대로 있을 것을 본 배달원이 구청에 알렸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호 목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안타깝지만 그 죽음이 3일 이상 방치되지 않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고독사가 꼭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죽은 이후에 방치되지 않고 가족과 주변에 알려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돕는 게 의미 있죠."

노인 1명에게 한 달 동안 우유를 배달하는 비용은 3만원. 처음엔 교회 교인과 호 목사의 가족이 후원금을 모아 비용을 댔다. 시간이 지나 우유 배달 봉사가 알려지면서 후원하겠다는 기업들도 늘었다.

2012년 우아한형제들이 정기 후원에 동참했고, 우아한형제들에 투자하던 골드만삭스도 후원사업에 참여했다.

2016년에는 매일유업이 후원에 동참하면서 현재 일반 우유 대신 유당을 제거한 '소화가 잘되는 우유'가 서울시 20개 구 2천 600가구에 전달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소잘우유 캠페인을 진행한 매일유업은 기부금 3억원을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에 기부했다. 현재는 소잘우유 연 매출의 1%를 사단법인에 기부하고 있다.

동대문과 종로, 성동, 광진 지역 어르신 200여명에게 우유를 배달하는 매일유업 성동광진 대리점 김태용 점장(53)은 "우유배달 대상자에 선정된 어르신은 대체로 형편이 어려워 파지를 줍거나 쪽방, 원룸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밤 10시에 배달 업무를 시작해 새벽 6시에 끝나다보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지만, 1천200원짜리 작은 우유가 어르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배달일을 그만둘 수 없다.

"우유 받으시는 분이 거의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본인 돈으로 시켜먹을 수도 없는데 덕분에 우유를 먹는다면서 손편지도 주시고 장갑도 넣어주세요. 용돈 하라고 만원도 받은 적도 있어요."

매일유업 성동광진 대리점 김태용 점장(53)이 어르신에게 받은 용돈. 쌍화차와 장갑을 보냉가방에 넣어놓은 어르신도 있다. 김태용 점장 제공

 

NOCUTBIZ

◇ "할머니가 안 보여요" 부엌에 쓰러진 80대 노인 구한 한국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

영하의 맹추위가 몰아쳤던 지난해 12월. 프레시 매니저 문영자(55)씨는 자택에 쓰러져 있던 홀몸노인을 구조했다.

17년 동안 전남 벌교천 인근을 담당하며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매일 제품을 전달하던 문씨는 주방에 쓰러진 할머니 김모(81)씨를 발견해 구조할 수 있었다.

평소 고객과의 유대관계가 깊었던 문씨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거실문턱을 넘는 것조차 힘들까봐 매일 제품을 집안까지 전달해드리곤 했다. 덕분에 그날도 주방에 쓰러진 홀몸노인을 찾아 구조할 수 있었다.

서울 관악구에 홀로 살고 있는 최복례씨는 다리 건강이 악화돼 장보는 것조차 버겁지만 매일 찾아와 안부를 물어주는 프레시 매니저 전덕순씨가 있어 외롭지 않다.

프레시 매니저 전덕순씨와 최복례 할머니. 한국야쿠르트 제공

 


1994년부터 홀몸노인 돌봄활동을 해 온 한국야쿠르트는 전국 1만 1000여명의 프레시 매니저 네트워크를 활용해 홀로 지내는 노인의 건강과 안전을 확인한다.

홀몸노인의 건강이나 생활에 이상을 발견하는 즉시 주민센터와 119 긴급신고를 통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27만5천명이던 홀몸노인은 2017년 134만6천명, 2018년 143만1천명, 2019년 150만명으로 매년 7만명 이상 가파르게 늘고 있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도 함께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65세 이상 무연고 사망자는 206년 735명이었지만 지난해 1145명으로 늘었다.

김준걸 한국야쿠르트 고객중심팀장은 "1994년 시작한 홀몸노인돌봄활동은 수혜인원만 3만명에 이르는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라며 "앞으로 활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홀몸 어르신들에게 정서적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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