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과 관련해 6개월 만에 다시 한 번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에 나섰다.
입법을 통한 재발방지와 피해자 지원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했지만,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정의당 사태의 여파를 최소화하려는 '뒷북 조치' 아니냐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대표는 27일 "피해자와 가족들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이와 함께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재발방지책 마련, 권력형 성범죄 관련 법률 개정, 당내 성평등 교육 강화 등도 함께 약속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이 대표의 사과는 처음이 아니지만,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비위 사건에 대한 대표의 사과와 관련 대응책 마련 약속은 언제라도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사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 발표에 따른 것이다.
또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민주당이 어떠한 조치를 취해왔는지에 대한 경과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의당 김윤기 당대표 직무대행, 이은주, 배진교, 류호정 의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략협의회에서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게다가 민주당의 대처는 김종철 전 대표 사건 공개 직후 2차 가해 확산 방지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정의당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정의당은 가해자인 김 전 대표가 사건 직후 피해자에게 사과에 나섰고, 구체적인 사건 내용과 당내 조사를 비공개에 부쳤으며, 당 여성위원회를 통해 2차 가해 제보를 수집하는 등 다방면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 대표 본인은 물론 여성운동권 출신인 여성 의원들마저 '피해 호소인', '피해 고소인' 등의 표현을 만들어가며 가해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피해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그사이 2차 가해가 여러차례 가해졌다.
뒷북 대처 논란과 함께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과는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지 이틀 만에 나왔다.
정의당과 함께 '범진보'로 분류됐던 민주당 입장에서, 같은 당 소속 지자체장의 성비위로 인해 치러지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성범죄 사건이 계속해서 이슈가 될 경우 유리할 것이 없다.
정의당은 아직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오는 4월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반면 민주당은 당 소속 인사의 잘못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도록 한 당헌을 고쳐가면서까지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냈다.
민주당과의 단일화는 없다고 선을 그은 정의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 민주당의 진보진영 표 확보가 늘어날 수 있지만, '정의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는데 원죄가 있는 민주당은 왜 선거에 참여했느냐'는 비판의 꼬리표가 선거 내내 붙어 다니게 되는 점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김 전 대표 사건의 불똥이 민주당으로 옮겨붙기 전에 이 대표가 조기 진화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6석의 소수정당은 선거까지 건너뛰며 사활을 걸고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데 180석 여당은 왜 미적댔느냐고 지적한다면 사실 해명할 거리가 많지 않다"면서도 "이 대표가 사과와 함께 강력하게 2차 피해 최소화와 재발방지책을 약속한 만큼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성범죄 사건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