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및 완화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병들어 죽기 전에 굶어 죽는다'는 아우성이 일고 있습니다"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과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편 지급이 옳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 지사는 20일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 도민에게 10만원씩 2차 재난기본소득을 3개월 시한부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지급시기는 방역상황을 고려해 달라는 더불어민주당의 권고를 존중해 방역 추이를 봐서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별 지급'보다 '보편 지급'에 방점을 찍은 것은 크게 4가지 이유에서다.
◇"생활고에 참혹한 현장 많아"…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피해자
박종민 기자
첫째,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보건방역과 경제악화를 막는 경제방역은 선후·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조화롭게 해결해야 할 중요과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건방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 경제방역에 나설 것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코로나19가 해를 넘겨 계속되면서 '국민 대다수가 피해자'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이 지사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우리사회에 재난지원금이 간절한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여름, 수원에서 구운 계란 5천 원어치를 훔쳤다가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고, 아무에게나 먹을거리를 그냥 드리는 '경기 그냥드림코너' 앞에는 강추위에도 줄이 길다"고 말했다.
이어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일용직 일자리마저 구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굶어 죽을 수 없어 생기는 참혹한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거리두기 3단계 요건이 갖추어졌음에도 2.5단계를 계속 유지하며 위험을 감수한 것 역시 경제방역 필요 때문이다.
이 지사는 특히 이낙연 대표의 '빵집 한 끼 포장' 인증샷을 거론하며 "이낙연 대표님께서도 '소비 많이 하라'고 빵집 가셔서 싸 가는 인증샷도 하시는 걸 보면 소비하는 것 그 자체를 막는 것 같지는 않다"고 뼈 잇는 말을 던졌다.
이낙연 대표는 전날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지금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소비를 하라고 말하는 것이 마치 왼쪽 깜박이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며 소비 진작을 위한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정세균 총리도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은 피해를 많이 본 쪽부터 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 이 지사의 '보편 지급 방침'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보편 지급이 방역 혼선 초래?…"근거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및 완화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둘째,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보편 지급과 민주당 지도부가 우려하는 '방역 혼선 초래'와의 인과 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일상적 소비활동을 한다면 며칠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소액(1인당 1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하여 방역에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 지사의 시각이다.
이 지사는 "현재도 수 조 원 대 선별지원금이 풀리는 중이지만, 지원금 때문에 방역이 악화된다는 정황은 어디에도 없고, 선별적 현금지급과 달리 그보다 소액인 보편적 지역화폐 지급이 방역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신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해 큰 신뢰를 보였다.
이 지사는 "KDI(한국개발연구원) 발표를 보면, 재난지원금의 약 70%는 기존 소비를 대체하고 추가 소비는 약 30% 정도만 이뤄진다"면서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이건 재난지원금이니까 마스크 벗고 쓰자' 혹은 '이건 우리가 모여서 쓰자' 이렇게 할 리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K-방역을 성공시킨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도민들께서 소액의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지금까지처럼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주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방정부간 형평성 문제? "결국 철학의 차이 때문"셋째, 경기도의 보편지급이 타 시도와의 '형평성 문제'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결국 재난지원금은 지방정부 사이의 재정여력 문제라기보다는 정책결정과 예산편성의 우선순위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정자립도 20%는 전체재정 중 20%만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체조달 재원이 20%라는 뜻이다. 이는 지방정부가 실제 쓰는 예산 중에 자체조달 재원이 얼마냐일 뿐 예산총액은 중앙정부 지원금(교부세 등)을 더하면 큰 차이가 없다.
가난한 지방도시라 하여 그 지방정부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형평성 문제는 '1인당 예산액'의 차이가 아닌 그 지방정부의 철학에 따른 예산편성의 우선순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이 지사의 설명이다.
그는 "경기도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포천시가 작년에 가장 많은 1인당 40만 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님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중앙정부의 지원정책과는 별도로 지방정부가 자체로 지원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유행은 계속 반복될 것…선제적 경제방역 중요"
박종민 기자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위기는 3차 유행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선 방역, 후 경제'라는 전략의 효율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앞으로 4차, 5차, N차 유행이 계속될 것이며 유행이 반복될 때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강도는 더 크고 길고 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하루 발생 코로나19 확진자 저점은 300~500명 사이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처럼 코로나19 유행이 반복된다면 경제적 어려움 역시 심화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만큼 선제적 경제방역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는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는 상황이 되면 재정지원을 하지 않아도 경제는 회복된다"면서 "그 시기의 재정 지원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이유를 근거로 "경기도의 2차 재난기본소득은 신속한 지급이 필요하고, 또 지급에도 무리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당초 계획했던 대로 설 명절 이전에 1인당 10만 원씩의 2차 재난기본소득을 소멸성 지역화폐 형태로 전 도민에게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는 "지급시기는 방역 진행추이를 면밀히 점검한 후 추후 결정하겠다"면서 도민들의 양해를 구했다.
이는 '지급시기는 방역상황에 맞춰 달라'고 경기도에 권고한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배려로 풀이된다.
하지만,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현 상황을 보는 민주당 지도부와 이 지사의 시각차는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