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자료사진. 이한형 기자
서울에서 노래연습장을 하는 A씨는 지난해 절반 가까이를 영업하지 못했다. 노래연습장이 고위험시설 또는 집합금지 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장기간 영업금지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영업은 못했지만 월세는 보증금에서 제하는 방식으로 꼬박꼬박 나갔다.
"노래방 월세는 보통 300~700만원입니다. 장사를 못해도 이 돈은 매달 나가야 하는거죠. 낮에는 막노동으로,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뛰어 월세를 내는 사람이 많아요"
인건비야 사람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정이 가능했지만 임대료는 고정 불변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임대료를 깎아준 건물주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아주 극소수입니다"
임대료를 아낀다고 폐업을 할 수도 없다. 방방마다 구성되는 노래방 업종의 특성상 인테리어 비용과 냉난방 시설 설치 비용, 반주기계 설치 비용 등 투자 비용이 매우 큰데, 폐업을 하게 되면 이 비용을 제대로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직장인을 상대로 호프집을 하는 B씨. 늦은 저녁에 오는 '2차 술자리' 손님들이 주고객이다.
월세는 700만원인데, 대목이었던 지난달 매출은 고작 160여만원. 밤 9시까지로 영업이 제한돼 손님들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B씨의 지난해 매출은 반토막 났다. 하지만 월세는 역시 '고정'이다.
"폐업하고 싶어도 못해요. 임대계약이 7개월이나 남아 있어요"
코로나19 사태가 1년을 넘기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임대료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매출이 줄면 원재료비와 인건비 등은 영업시간이나 고용인원 등을 조정해 낮출 수 있지만 임대료는 자영업자 맘대로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의 한 상가에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한형 기자
특히 임대료는 고정비용 가운데 가장 큰 부담인데 정부의 방역 조치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더욱 옥죄고 있다.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1월 전국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소상공인의 95.6%가 사업장을 임차해 쓰고 있었고, 이들의 89.4%가 '월세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장사가 멈추면 임대료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염병 차단을 위한 영업제한이라는 공익적 부담을 왜 임차인에게만 지우느냐'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방기홍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공정 임대료 토론회'에서 "방역조치로 모든 일상이 멈추는데, 두가지는 멈추지 않는다"며 "바로 임대료와 은행 이자"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적대국의 채무는 소멸된다고 하는데, 코로나19 사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나 마찬가지"라며 "임대료 등은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민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지난 5일 헌법재판소 앞 집회에서 "재난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영업제한은 당연시하면서 임대인의 재산권은 하늘이 준 치외법권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임대료를 줄여야 우리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들도 상가 임대료를 감면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은 '감염법예방법에 따라 집합금지 업종 임차인에게는 임차료 청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했고, 같은 당 이성만 의원은 임대료를 절반으로 줄이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임대료 부담을 경감하는 여러 제도들이 일부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4월부터 코로나19 확산 기간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임대료를 50%이상 인하하거나 유예해야 하는 의무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는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정부가 임대료의 50%를 지원하고 임대인은 최소 25%, 임차인은 최대 25%씩을 부담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 뒤부터 올해 6월까지는 매출이 크게 감소한 기업에게 정부가 임대료 등 지출비용의 65%까지를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중이다.
독일은 2020년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이상 감소한 소상공인 등에게 올해 6월까지 고정비용의 90%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밖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도 매출이 감소한 자영업자나 기업들에게 각각 '소득대체보상금'이나 '고정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해외 사례와 국내 입법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임대료 인하나 지원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임대료의 직접적 인하는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 주장에 부딪히고 있다.
정부도 개인간의 계약인 임대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해 지난해에는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해 주는 '착한임대인운동'으로 임대료 부담을 풀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6천명 정도의 임대인만 이 운동에 참여한데다 이 임대인들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임대료를 이전 수준으로 올리면서 실적이 저조한 상태다.
결국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지급되고 있는 상공인, 자영업자 2차 재난지원금인 '버팀목자금'에서는 임대료 등 고정비 충당 명목으로 100~2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자금 지원 역시 일회성인데다 명목상으로만 임대료 지원으로 구분해 실제 임대료 부담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성호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임대인에게 반대급부 없이 임대료를 감면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사적 자치 원칙'을 제한하고 임대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며 "따라서 임대료를 감면한 임대인에게 재정 지원 또는 세제 혜택 등 경제적 부담을 낮춰 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재원 마련에 한계가 있겠지만 임대료 문제를 '부의 불평등' 해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양창영 변호사는 집합금지나 영업제한으로 임차인은 '사업'소득에 제한을 받지만 임대인은
'자산'소득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임대료 문제는 사회적 위기에 따른 부담을 모두 공평하게 지는 것이 공평하다는 공정의 논리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