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종훈. YK미디어플러스, SBS 제공
'하박사'라는 호칭에 맞게 유약한 느낌에 어딘가 2%모자란 신분상승욕. 아내 천서진(김소연 분)과는 애증 그 자체이지만, 유일하게 평범한 부성애를 지닌 인물. '펜트하우스' 하윤철은 배우 윤종훈이 없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 캐릭터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컴퓨터 공학과 '킹카' 과대표 김기태 역은 윤종훈이 대중적으로 눈도장을 찍은 첫 캐릭터다. 이후 tvN '미생'에서 얄미운 매력의 인턴 이상현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고, 서서히 비중 있게 활약을 시작했다. 그러다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될 '펜트하우스'를 만났다.
유독 의사 역을 자주 연기한 윤종훈은 이제 '병약 섹시'로 통한다. '펜트하우스' 하윤철 캐릭터가 그에게 안긴 또 다른 선물이다. 강렬한 김소연 연기에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케미'만 봐도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 기본기를 다져왔는지 느껴진다. 어쩌면 38세에 맞이한 뒤늦은 전성기는 이만한 준비 없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삶에서 늘 '중용'을 지키고 싶다는 윤종훈은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길 준비를 모두 마쳤다. 다음은 윤종훈과 서면으로 진행한 일문일답.
▷ 최고 시청률 28.8%로 '펜트하우스' 시즌1이 막을 내렸다. '펜트하우스'는 배우 윤종훈에게 어떤 작품이었을까- 무사히 모든 촬영을 잘 마쳐서 감사한 마음이다. '펜트하우스'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매회 상승하는 놀라운 시청률을 보며 가슴이 벅찼고 또 이런 시청률을 보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해봤다. 인간으로서나 배우로서 모든 면에서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이고, 그리울 것 같다. 아직 시즌 2·3이 남아 있으니까 더욱 더 기대 부탁드린다.
▷ 하윤철은 헤라팰리스 인물들 가운데 자식에 대한 걱정은 가장 정상적인 아버지에 가깝다. 또 욕망은 넘치지만 이를 완벽히 이루기에는 2%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자주 화를 내도 어딘가 별로 무섭지 않은 캐릭터이기도 한데 실제 본인과 싱크로율은 어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면도 있고 없는 면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윤철이처럼 치열하게 어느 사람과도 싸우고 싶진 않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 윤철이처럼 산다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다. (웃음)
배우 윤종훈. YK미디어플러스, SBS 제공
▷ 싸울수록 '케미'가 산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천서진 역의 김소연과 극강의 호흡을 자랑했다. 워낙 상대 연기가 강해서 인상이 약해질 위험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 강렬한 캐릭터들 사이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인물인 하윤철 역을 어떻게 그렇게 살릴 수 있었는지
- 배우들과의 호흡이 감히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신)은경 선배님을 선두로 본인들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앵글에서도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들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호흡이 좋아서 같이 연기하면서도 신났다.
하윤철 캐릭터는 현장에서 (주)동민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다. 하윤철이 태생이 금수저는 아니었기에 어딘가 촌티가 나 보였으면 했었고 윤철의 특유의 신경질적인 면과 쫌생이 같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기하면서 예민하게 모든 것에 반응하려 노력했다. 씬마다 동민 감독님 축복의 디렉션이 있었기에 잘 연기할 수 있었다. 또 모르는 게 있으면 (김)순옥 작가님께 여쭤봤다. 그 때마다 너무 따뜻하게 설명해주셨다. 연기는 제가 하는 거지만 그 감정을 모든 기술팀에서 잘 담아주셔서 감사했다.
▷ 하윤철 러브라인도 주단태(엄기준 분) 못지 않다. 오윤희(유진 분)와는 애틋한 첫사랑, 천서진과는 애증의 부부관계에 얽혀 있는 인물이다. 이 삼각관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나갔는지 궁금하다- 하윤철을 연기함에 있어 각 씬에 집중하고 진심을 다 하겠다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널 죽도록 미워하겠다'라던지 이 순간만큼은 다음 씬이 어떻든 '죽도록 사랑하겠다'라고. 뒤에 완전히 반대되는 감정이 나와도 '어제는 널 미워했지만 지금은 널 죽도록 사랑한다'라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잘 안 풀리고 집에 돌아와 극도로 우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음 씬은 다시 잘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독거리기도 했다.
▷ '쫌생이' 같다는 캐릭터 해석처럼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에 성공한 하윤철이 자격지심을 통해 흑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한 인상과 달리 액션스쿨 출신이기도 한데, 앞으로 본인 캐릭터 활약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나
- 액션스쿨은 오디션 보고 들어갔다. 사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과한 멘트로 들어갔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저는 지금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액션스쿨은 살아남기가 더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고 졸업하지 못한다면 저는 어디가서도 잘 하지 못할 겁니다"라고 젊은 호기로 말해버렸는데 합격 시켜주셔서 이를 악물고 졸업을 했다. 정말 많이 배웠다. 전체 무료교습이기 때문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기회가 된다면 액션물도 많이 해보고 싶다. 시즌2는 앞으로 모든 제작진, 배우분들과 잘 준비해보겠다.
배우 윤종훈. YK미디어플러스, SBS 제공
▷ '응답하라 1994'나 '미생' 연기를 생각해보면 하얀 도화지처럼 다양한 색을 입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모그래피상 의사 역할을 맡기도 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연기에 대한 본인 스타일이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도화지 같은 배우라니 너무 감사한 칭찬이다. 사실 제가 꿈꾸는 배우상이기도 하다. 여러 역할에 도전하며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배우들이라면 모두 꿈꾸는 지점이라고 생각하고, 사실 작품의 연기를 준비할 때, 항상 잘 풀린 적이 없다. 미친듯이 좌절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어떤 레퍼런스를 찾고, 책들과 여러 가지 것들을 봐도 안되는 때에는 그렇다.
▷ 첫 연기 시작이 굉장히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고, 뜻대로 풀리지 않아 힘든 시기도 있었겠다. 앞선 대답처럼 정말 뭘해도 안될 때도 연기는 해야 될텐데 어떻게 돌파구를 찾나- 신기한 건 깊은 늪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미세한 빛이 보인다. 밥 먹다가 느닷없이 대사와 역할을 곱씹고 있는데 보이기도 하고…. 그럴 때 밥 먹다가 '유레카'를 외치며 '정말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불특정 누군가에게. (웃음) 그 미세한 빛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이 끝나가는 거다. 그럼 또 조금의 안도를 하다가 다음 작품은 또 어쩌지 좌절하고…무한반복이다. 물론 진짜 그 빛이 안보일 때도 있다. 극도로 우울해지는 상황인 거다. 다른 일들에는 중용을 지키는 게 조금은 되는 것 같은데 연기만큼은 더 잘 안된다.
▷ 방금 '중용을 지키려 한다'고 했듯이 과거 인터뷰를 살펴보면 '진인사대천명', '새옹지마' 등 삶에 있어 다소 초연한 관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인생관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아무래도 인생을 살면서 데이터베이스가 생기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또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분명히 안 되는 일이 있고 물론 후회 없이 노력을 하겠지만 나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하는 거다. 새옹지마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이 생겼더라도 지나고 보면 그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구나 느껴지고 나쁜 일도 그렇다. 그래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중용을 지키려고 하는 거다. 근데 또 인생에 여러 가지 일이 생겨야 재밌지 않을까? '덤벼라 세상아' 이런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