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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20살의 1월 1일과 생일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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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채무자들-왜 그들은 빚을 지게 됐나④]'불법'에 빠져드는 아이들, 노리는 어른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자립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후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자립은 적지 않은 빚으로, 또 그 빚을 갚기 위한 불법행위와 범죄로 이어지곤 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이들의 일상은 사회에서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와 맞물려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전CBS는 위기에 놓인 '어린 채무자'들의 현재부터 구조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밀히 살펴보고 대책을 찾아보고자 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코로나 1년, 집이 사라졌다…쉼터에 머무는 청소년들
②20살 주아의 80만 원 빚은 어떻게 1000만 원이 됐나
③사회로 던져진 청소년들이 말했다…"빚이 있다"
④"'그들'은 20살의 1월 1일과 생일을 노린다"
(계속)

'내 구제(내구제) 대출'이라는 말이 있다. 휴대전화나 가전제품 등을 할부로 산 뒤 업자에게 넘기고 기기값의 일부를 현금으로 받는 것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나를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로 통용된다.

대출의 문이 가로막힌 20대의 어린 채무자들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내 구제'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 늪은 깊었다.

 

◇아무도 구제해주지 않아 '내 구제'를 했다

휴대폰을 개통하자마자 이를 되팔고 현금을 일부 받는 이른바 '가개통'. 기자가 만난 많은 아이들은 평균 3대의 휴대폰을 개통했다고 말했고 본인 이름으로 된 휴대폰이 5대까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주현(가명·22)이는 100만 원이 넘는 최신 휴대폰 3대를 팔아 대당 50만 원씩을 받았다고 했다. "돈이 급하면 알려주겠다"던 친구의 소개로 또래 남자아이 3명을 만났고, 그 아이들과 함께 매장에 가서 시키는 대로 했다. 새 휴대폰을 넘긴 대가로 50만 원은 적다고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동행한 3명과 나눠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예 못 받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주현이는 또 가개통을 했다.

휴대폰으로 치킨이나 피자 기프티콘을 사서 3~4천 원 저렴하게 팔아 생활비로 쓰기도 했다. 휴대폰 소액결제로 산 기프티콘이나 게임 아이템 등을 현금화하는 방식 역시 가개통만큼 널리 쓰인다고 했다.

일부는 이른바 '작업대출', 한 회사에 소속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한다.

가개통에서 작업대출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에서 멈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아이들은 말했다. 한 청소년은 "보통 가장 먼저 하는 게 가개통이고 그 다음에는 작업대출을 한다"며 이 세계에도 일종의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단계의 종착역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하게 되니까 결국은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설명이다.

민준(가명·20)이가 이 세계에서 찾은 또 하나의 방법은 도박이었다. 너무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온라인 도박에, 몇백만 원을 벌고 잃는 일상을 반복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 원, 이만 원으로 시작된' 도박빚은 '백만 원, 이백만 원'이 됐고 그 해 '천만 원'을 넘어섰다. 액수가 커지면서 "도박빚을 갚기 위해 도박을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민준이는 그 시절이 끔찍했다고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방법을 택할 수 있을지 물었다. 민준이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또 다른 어린 채무자도 "돈을 빌려준다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왔나' 싶다가도 진짜 돈이 필요하다 보니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에 연락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노렸다

자기 자신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발을 들이는 저 방법들은 엄연한 '불법'이다.

궁지에 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 같은 상황을 노리는 집단과 어른들이 있다고 아이들은 말했다.

철민(가명·20)이는 이른바 '내 구제 대출'이 특히 많이 이뤄지는 시기가 있다고 말한다. 20살이 되는 1월, 그리고 생일날이다.

"1월이 되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늘고 성인으로 여겨지고, 생일이 지나면 '만'이 붙으니까요. '생일 지나셨습니까'라고 먼저 물어보죠. 그쪽에서."

철민이가 말하는 '그쪽'이란 대출을 알선하는 업자들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이 시기가 되길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한 것은 철민이뿐만이 아니었다.

"'1월달만 보자. 1월달만, 1월달만 기다리자'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왜?'라고 물으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뭐가 왜야. 1월달 되면 내 눈에 보이는 게 다 돈인데'..."(주현)

성희(가명·21)와 유나(가명·21)는 개인의 선택으로만 여겨지는 이 세계에는 사실 타깃이 있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으며, 그 위에는 어른들이 있다고 털어놨다. 성희는 작업대출의 대상에게 접근하는 일을 했고 유나는 일자리를 못 구하는 아이들을 조건만남으로 이끌고, '관리'하며 가개통과 작업대출, 자동차 캐피탈 등을 받게 했다고 했다.

"한 30대 정도 나이의 사람들이 제일 위에 있고, 그 30대 사람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서류를 조작하는 거예요. 그 밑에는 사람들을 구해오는 사람들이 있고요."

"은행에도 같이 가요. 은행원들이 물어보는 것을 대신 답하거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려주는 거죠. 돈은 본인 명의로만 받을 수 있으니까 일주일 내내 같이 있어야 돼요. 1000만 원이 대출되면 300만 원을 가져가는데... 일주일 동안 같이 있으면서 쓴 금액을 다 계산해서 그것도 받아요. 그럼 거의 50대 50이 되죠."(성희)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자취방에 데려와서 주거를 제공해주고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가져가요. 그리고 차를 렌트해 아이들을 일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고 대기하며 거의 24시간 동안 같이 있어요. 렌트비부터 기름값, 같이 지내며 쓰이는 돈도 다 아이들에게 부담하게 하죠. '이 차는 너희들을 위해 빌린 거고 너희는 수고비를 줘야 한다'고 설명해요."

"그 아이들이 성인의 나이가 되면 휴대폰부터 시작해서 작업대출, 운전면허를 따게 한 뒤 자동차 캐피탈까지... 그렇게 한 아이에게 돈을 좀 많이 뺄 수가 있어요."(유나)

때문에 곧 20살이 되는 청소년을 '일할 아이'로 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유나는 덧붙였다.

주된 대상은 돈이 필요한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사람이었다.

성희는 "피해를 입더라도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신고한다고 해도 겁주면 신고 안 할 만한 아이들을 많이 고른다"고 했다.

'쉽게 돈 벌려는 아이들'. 사회의 시선은 이렇지만 유나는 실제 쉽게 돈 벌려고 오는 아이들은 드물다고 했다.

홀로서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친근하게 다가가 같이 시간을 보내다, 심적으로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 권유를 하는 등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도 이용하곤 했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이건 진짜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느껴서 그만두게 됐다"며 깊이 후회하는 유나. 하지만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고 했다.

온라인 도박을 했던 민준이는 도박빚이 쌓이자 주변에서 선뜻 돈을 빌려줬다고 했다. 실은 뒤에 다른 집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친함을 이용해 몇 프로를 떼는지도 모르고 젖어들어가는 거죠."

스마트이미지 제공

 

지켜보는 이 없는 가운데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작업대출 알선에 가담한 성희는 사실 불법 대출의 피해자였다.

주현이는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보이스피싱을 했느냐"며 조사를 받으러 와야 된다고 했다. 가개통해 넘긴 휴대전화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것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해자였던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이유는 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멈추지 않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라며 "불법적인 시장에서 자신을 이용한 사람들이 처벌되지 않는 것을 보고, 또 '이렇게 해도 잡히지 않는구나', '이런 식으로도 돈을 벌 수 있구나'라는 보상을 목격했기 때문에 또 다른 공급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실태의 뒤에는, 현재의 노동시장이 청소년에게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며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도 건강한 시장,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던 청소년 노동 착취 등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추위 속에 있는 이에게 찬바람을 다 맞으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기 걸리지 말라'는 말 한마디와 대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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