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확산한 코로나19가 연말까지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3차 대유행에 따라 이동에는 더욱 제약이 걸렸고, 각종 실내 공공시설은 운영이 중단됐다. 경제가 움츠러들면서 일자리에 타격을 받은 이들, 얼어붙은 취업난에 더 힘겨웠던 취준생들, 감염 확산 우려로 대면 돌봄을 온전히 받지 못한 아동·청소년 등 사회 곳곳에서 고통이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시국 속 비대면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에 속도가 붙었다. 강원영동CBS는 몸이 불편한 데다 면역력도 취약해 하루하루가 유난히 더 가혹했던 노인들의 삶을 조명해 본다. 또 비대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디지털 격차로 소외된 노인들의 현실과 과제도 들여다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속초지역의 한 요양병원 입구에서 한 어르신이 출입 전 위생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유선희 기자)
강원 강릉에서 10년째 요양원을 운영 중인 김모(61) 원장은 요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전국적으로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만 노인 요양시설에서 확진자가 550명 이상 발생했다. 코로나19는 가장 취약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고령사회에서 노인 요양시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강릉지역에서만 최근 3년(2018년~2020년) 동안 노인 요양원이 63개소에서 82개소로, 노인 장기요양시설은 70개소에서 82개소로 늘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한 것은 '감염 취약시설'이라는 뼈아픈 오명이다.
"어르신들은 면역력이 약하니까 한 번 코로나에 감염되면 퍼지는 건 순식간이어서 걱정이 크죠. 요즘 타 지자체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직원들에게 출퇴근 외에 최대한 외출 자제를 권고하고, 스스로도 조심하고 있습니다."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김 원장은 코로나 확산세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이 운영하는 요양원은 30인 미만 규모로, 원장을 포함해 사회복지사 3명, 요양보호사 12명, 간호조무사 1명, 조리원 2명 등이 일하고 있다.
속초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난달 12일 종사자가 확진된 이후 한 달 넘게 감염 확산세가 이어졌다. (사진=유선희 기자)
엄밀히 구분하면 요양원은 사회복지시설로, 병원처럼 의료장비가 구비돼 있지 않다. 감염관리 지식을 갖춘 의료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간호조무사가 있지만, 1인당 돌봐야 하는 환자들은 최소 30여 명으로 너무 많다. 또 감염과 관련해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요양원에서 2년째 근무 중인 간호조무사 김모(43)씨는 "밀집 공간이다 보니 감염 우려가 큰 것은 사실로, 아무래도 고령인 데다 모두 지병을 앓고 계셔서 돌보는데 부담이 크다"며 "감염과 관련해 보건소에서 내려오는 공문뿐 별다른 매뉴얼이 없어 관련 지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원도에서는 속초와 홍천에서 요양시설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모두 33명 발생했다. 속초 요양병원 29명, 홍천 노인 요양원 4명 등이다. 한 달 넘게 확산세가 지속했던 속초지역에서는 지난달 12일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A(60대)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확진자가 잇따랐다. 코호트 격리된 입원 병동 내에서 환자들의 감염이 속출했다. 요양병원에서만 입원환자 22명, 종사자 5명 등 모두 27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밀폐된 공간에서 고령 중증환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취재진이 코로나19에 확진된 입원환자들의 연령대를 분석해 본 결과 80대가 가장 많았다. 80대 8명, 60대 4명, 70대 3명, 90대와 50대 각 2명, 100대와 30대, 10대에서 각 1명 등이었다. 이 중 60대 이상은 81.8%를 차지한다. 확진자 중 입원 치료를 받던 4명은 끝내 숨졌다. 모두 고령층으로 80대 2명, 60대~70대 각 1명 등이다.
속초지역에서 발생한 요양병원발 입원환자들의 코로나19 확진 현황으로, 확진자 22명 중 81.8%에 해당하는 18명이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그래픽=유선희 기자)
전국적으로 노인 요양병원·요양원에서 속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전북 김제시의 한 요양원에서 밤사이 환자 등 62명이 무더기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충북 청주시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는 47명이 한꺼번에 감염됐다. 서울 구로구 요양병원·요양원에서도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등 노인 요양시설발 코로나19 확산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은 다인실 위주로 운영돼 밀집도가 높다. 감염에 취약한 환경인 데다 대부분 면역력도 떨어지는 중증환자들이 많아 한번 감염되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도 요양시설을 코로나에 취약한 대표적인 '3밀(밀폐·밀집·밀접)' 기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임숙영 상황총괄단장은 지난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을 '주의 시설'로 꼽으며 감염 취약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1일부터 12월 10일 사이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1만 6286명으로 이중 국내 집단감염은 7547명이었다. 집단 발생자들의 주요 감염경로를 분석한 결과 요양병원·시설 발생은 모두 934명(12.4%)으로, 3번째로 높았다. 가족·지인 모임 감염 비율이 가장 높았던 다른 연령층과 달리, 60세 이상은 요양병원·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많이 나왔다.
60세 이상은 요양병원·시설에서 657명(28.5%)이 집단감염됐으며, 가족·지인 모임 439명(19%), 의료기관 248명(10.7%), 일반 음식점·카페 214명(9.3%), 직장 210명(9.1%) 등이 뒤를 이었다.
(자료=질병관리청 제공)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 노인 돌봄을 위한 시설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감염 취약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양대학교 간호대학 간호학과 이미향 교수는 "메르스라는 큰 경험 덕분에 방역체계나 감염관리가 강화된 부분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주로 종합병원 이상 병원을 위주로 변화가 적용됐다"며 "앞으로 노인환자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고령 계층에 대한 감염관리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특히 요양원은 의료진들이 필수인력이 아니고 간호조무사나 사회복지사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감염 전담 인력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재정·법적 지원과 함께 감염 관리를 위한 인력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한림대학교 예방의학과 김동현 교수는 "가정과 지역사회, 정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오래 머물면서 요양병원은 '장기 수용시설화' 되고 있는데, 그게 일종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며 "요양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만큼 그에 맞게 기준을 강화하고, 의료·간호 인력을 투입해 감염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과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한번 확진자가 발생하면 위험한 상황일 수밖에 없어 코호트 격리를 하는데, 정작 그 안에서 n차 감염이 확산하고 있다"며 "일괄적으로 코호트 격리 등으로만 관리하지 말고 보다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검사 주기 간격을 좁혀 보다 빠르게 확진자를 찾아내는 선제적 대응도 시급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