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위원장.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국정원은 지난 달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10월 말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어로와 염전 금지 조치와 함께 북한이 코로나19 등 경제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비이성적 조치"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북한의 환전상 처형은 기본적으로 환율 변동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됐으나 자세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환전상 처형 지시는 북한과 중국의 무역중단에 따른 외화난 속에 북한이 달러 등 시장 외화를 최대한 재정으로 흡수해 자체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더 나아가 중앙집권적 무역시스템의 복원을 기도하다가 발생한 '본보기 처형'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북한 환율 변동의 배경과 전망'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의 추론을 제시했다.
이번 사태는 일단 북한 당국의 외화사용 금지조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이 언제 이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인되지는 않지만 지난 10월의 환율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원 달러 환율은 10월 23일 8170원에서 10월 30일 6900원, 11월 12일 6500원으로 급락한 뒤, 12월 11일 현재에도 7150원으로 급락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 위안 환율도 10월 23일 1225원에서 10월 30일 830원으로 급락한 뒤 12월 11일 현재 860원으로 하락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자국 내에서 달러와 위안 등 외화를 사용하지 못하고 북한 돈만 쓰도록 하니, 원화 값이 급격히 오른 것이다.
북한 당국의 외화사용 금지조치와 이에 따른 환율 급락은 사실 북한 당국이 시장의 외화를 싼 값에 흡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와 대북제재로 수출 길이 끊겨 외화를 제대로 조달할 수 없는 북한으로서는 국내 민간에 산재해 있는 외화를 끌어 모으는 것이 무척 긴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 당국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환전상이다.
임수호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외화사용 금지조치를 통해 시장 외화가 재정으로 흡수되기를 바랐겠지만, 거물 환전상이 개입하여 이 의도가 좌절하자 '본보기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민간의 장롱에 숨겨진 달러 등 외화가 재정이 아니라 환전상으로 몰리면서 차질을 빚자, 달러 유통이 제일 빈번한 도시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한 것으로 관측된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흔히 '돈주'라고 불리는 환전상은 한명 당 보통 10만 달러 정도를 움직인다고 한다. 장마당이 북한 전역에 800여개에 이르고, 또 장마당 한 곳마다 한 명의 환전상은 있다고 하니 적지 않은 유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환전상 처형 등 사적환전에 대한 북한 당국의 압박은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환전상을 처형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적 환전을 철저히 봉쇄하면, 즉 사적 환전에 따르는 리스크를 극단적으로 높이면, 자연스럽게 주민이나 소매상, 도매상 등이 외화 환전을 위해 공식 환전소를 찾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외화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의 외화를 의도적으로 흡수하는 조치를 강구한 정황은 북한의 공식 매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학술지인 '경제연구' 10월 발간호에서 금융전문가로 추정되는 리룡일은 "국가가 기업체들과 개인들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유휴 외화자금'을 최대한 국가 수중에 동원하기 위한 사업을 목적의식적으로 진행해나갈 것을 목표로 한 국가의 작전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의 인위적인 환율 급락 조치가 성공적일지는 불투명하다.
임 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은 오랜 경험으로부터 외화사용 금지조치가 결국 시장의 힘 앞에 좌절되고 결국 외화 사용이 허용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며, "인위적인 환율 급락은 환율의 급등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임 연구위원은 "당국의 외화사용 금지조치에 따라 사적환전의 리스크는 크게 올라가겠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원리에 따라 암시장을 통한 사적 환전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 공식부문의 외화가 암시장으로 유출되고 당국은 외화 사용을 허용한다. 이는 사회주의사회의 공통된 현상이었고, 북한 역시 7.1조치 이후, 그리고 화폐개혁 이후 겪었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인위적인 환율하락 조치의 부작용을 과거에 이미 경험한 북한이 다시 외화 흡수를 시도한 것은 북중무역 중단에 따른 외화난이 그만큼 심각하고, 아울러 코로나19에 따른 정세의 불투명성으로 자력갱생 및 정면돌파전의 기조가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는 상황를 대비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