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 씨 사망 2주기를 앞두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지난 2일 오후 서울 구로구 재단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2018년 12월 10일, 24살 김용균씨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의 컴컴한 작업장에서 홀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그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아들을 차가운 영안실에 둔 채 슬픔에 젖어있던 어머니에게 원·하청업체는 "용균이가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하지 말라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어딘가 이상했다. '내 아들은 왜 위험한 곳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까.' 어머니는 아들이 스러진 노동 현장을 바로 보게 됐다. 아들의 죽음 이전에도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었고, 쉽게 묻혔다. "우리 아들은 못 살리지만, 용균이처럼 일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되잖아요." 그의 시선은 곳곳에 있는 '용균이들'에게 향한다.
CBS노컷뉴스는 1년째 김용균재단을 이끌고 있는 故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을 지난 2일 만났다.
◇한해 2400명이 일하다가 숨져…"전쟁이랑 뭐가 다른가요?"
고 김용균 씨 사망 2주기를 앞두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지난 2일 오후 서울 구로구 재단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위험의 외주화' 하나도 철회를 안 했어요. 사람이 계속 일하다가, 똑같이 죽고 있어요. 처벌조항이나 안전 대책을 못 세웠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그런 허술한 법 용납 못 합니다."
용균씨가 숨진 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28년 만에 개정돼 지난 1월 시행됐다. '28년'이라는 숫자에 묻혀 당시 이 법이 내포한 한계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정작 용균씨가 했던 연료환경 설비 운전 업무는 도급 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업주에게 부여하는 징역형에 대한 하한선도 없었다.
산안법 개정안이 시행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깔려서, 끼여서, 떨어져서, 부딪혀서 갖은 이유로 숨졌다. 그때마다 기업들은 평균 450만원의 벌금을 내는 데 그쳤다. 23년째 '산재 사망' OECD 1위 국가. 매년 2천명 넘는 노동자가 일하러 나갔다가 목숨을 잃고 있다.
김 이사장은 "하루에 6~7명이 죽는다. 매년 나라에 전쟁이 일어난 것과 똑같다. 아니, 전쟁이 일어난 것보다 더 많이 죽고 있다고 한다"며 "사람이 있고 기업이 있는 것이지, 기업이 있고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이윤만 챙기면 된다는 이윤 논리는 우리나라에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인천 영흥화력발전소에서 하도급 업체 소속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고 심장선씨가 석탄회를 45톤짜리 화물차의 적재함에 싣는 작업을 혼자 하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해 숨졌다.
심씨의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발전소에 "이번 사고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라"고 촉구했다. 김 이사장도 회견에 참석해 힘을 보탰다.
심씨의 죽음을 대하는 원·하청의 태도는 2년 전 용균씨 사고 때 접한 회사의 논리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는 "심씨의 죽음을 회사에서는 용균이 때처럼 개인의 잘못으로 몰고 가고 있더라고요. 똑같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심씨의 아들에게서 용균씨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용균이랑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더라고요. 차라리 내가 죽고, 우리 용균이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심씨 아들에게는) '정말 잘하고 있다. 아버지의 잘못이 없다는 걸 밝히기 위해선 밥도 잘 먹어야 한다. 가족들 의지해서 열심히 싸워보라'고 말했습니다."
◇책임자들, 사고 후 2년여 만에 재판行…책임 회피 급급
지난 6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2주기 추모제에서 피켓이 묘소 옆에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3일 태안화력발전소의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사장,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백남호 사장 등 12명과 법인 2곳이 산안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대부분 현장관리소장 등의 책임만 물어 '꼬리 자르기식' 처벌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용균씨 사건을 수사한 태안경찰서도 하청 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실질적 책임자인 원·하청 대표이사 등을 '혐의 없음' 처분했다.
검찰이 보다 전향적인 수사 결론을 내놓은 데에는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한 김 이사장의 역할도 컸다.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아서 검찰을 찾아갔어요. '이 사건이 용균이 잘못이 아니라는 건 특조위 조사를 통해 분명하게 나왔다. 예전처럼 본인 잘못이나 꼬리 자르기 하지 말아달라'고, '검찰만큼은 돈이 먼저가 아닌 사람이 중심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현재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서 공판 준비기일이 진행 중이다. 지난 3일에는 2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원청 측은 "하청을 줬으니 우리 책임이 없다", 하청 측은 "산안법 위반으로 벌금을 냈으니, 사장 등이 처벌받는 것은 다퉈봐야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文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김용균이 든 피켓에 대한 답은용균씨는 사고가 나기 열흘 전,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조 캠페인에 참가해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이제는 이 역할을 어머니인 김 이사장이 하고 있다. 그는 기업들의 '산재 가해'를 끊어내기 위해선 결국 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부와 국회에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현장 안전값보다 사람 목숨값을 하찮게 여긴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원·하청 구조는 국가나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편한 구조다.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부당하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해고 두려움에 알아서 길 수밖에 없다"며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8월에는 김 이사장 이름으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올렸다. 한 달도 안 돼 목표인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9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그가 낸 법안은 사업주·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사업주나 법인·기관이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 등을 한 경우 이들이 공동으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했다. 법인과 담당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그는 "아는 사람들에겐 다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국회 앞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피켓을 들고 나갔다"며 "걱정했는데 (기한을) 며칠 남기고 법안 발의가 됐다. 함께 한 사람들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제정은 답보 상태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정부와 여당 등은 법 제정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안은 공수처법 개정안 등 다른 현안에 밀려 전날 종료된 정기국회 내 처리가 무산됐다.
김 이사장은 "사실 이 법은 다들 필요성을 느낀다. 많은 의원도 느끼고 있는데, 나중에 기업들에 몰매 맞는 거 아닌가 싶어 눈치만 보고 앞장서서 하고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4년간 법 시행을 유예한다'는 내용을 담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중대재해법과 과징금 강화·경영자 과태료 부과 등을 넣은 장철민 의원의 산안법 개정안도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 회부돼 있다. 국민의힘도 지난 1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김 이사장은 여·야가 낸 법안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산안법으로는 공무원 처벌도 못 하고, 세월호·가습기 등의 문제도 포함하지 못한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엄청 많이 난다. 유예되면 나중에 또 다루기 힘들고, (적용)못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안만 택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안, 정의당안, 우리(노동계) 안 등 전체를 종합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10만이 발의했다. 국회의원 1명이 발의한 것보다 훨씬 효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나하나 바꾸면, 다음 세대는 좀더 나은 환경에서 살지 않을까요"
(사진=연합뉴스)
2년여째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이쯤 되면 활동을 그만해도 되겠다'는 기준이 있는지 물었다. 김 이사장은 "제 앞날을 장담 안 한다"면서 "중대재해법이 제정된다고 활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 그는 "결국 다 '일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나. 일하면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을 권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낮은 노조 가입률도 올라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산재 피해 가족들이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을 향한 악성댓글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한 생각도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신경 안 쓴다.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니까 오만 글이 다 올라오는 건 당연한 거고, 다만 그분들이 저처럼 피해를 봤을 때는 그런 말을 썼던 것을 정말 가슴 아파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올 연말까지 중대재해법 제정에 온 힘을 쏟을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워낙 구조적으로 뿌리박혀 있어서 한꺼번에 확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나하나 바꾸면 우리 다음 세대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들의 이름을 딴 재단을 꾸리고 현장 곳곳을 찾아 노동자들과 산재 피해 가족들의 손을 잡게 된 원동력은 아들 용균씨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용균이를 통해 많은 걸 깨우쳤다. 우리나라가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하수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돌이켜보면 저도 (과거에)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였다. 변화된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 죽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