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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비닐하우스, 조립식 패널…"또 다른 이름의 '전태일'" (계속) |
지난 10일 경기 포천시 소재 한 비닐하우스 내부.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조립식 패널이 보인다. (사진=차민지 기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고(故) 전태일 열사가 숨진 지 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적 3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는 노동자들의 근로 실태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척도다. 이 중 적정한 주거는 노동자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필요조건이다.
이 시대 '전태일'이라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다수가 고용주들이 제공한 열악한 간이식 거주지에 거처하며 근무와 휴식의 경계가 모호한 일상을 살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용도인 비닐하우스를 피난처 삼아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역대급 장마'가 지나간 올 여름, 집중호우 피해가 컸던 경기도 이천의 이재민 80% 이상이 이주노동자로 집계되기도 했다.
◇'가로세로 다섯 걸음'이면 끝나는 집…"월 기숙사비 20만 원 '커팅'"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들의 비닐하우스 숙소 외관. 바깥에 달아놓은 통신 안테나와 창문이 보인다. (사진=이은지 기자)
입동(立冬)을 맞은 지 사흘이 지난 10일, CBS노컷뉴스는 농촌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비닐하우스가 대거 밀집한 경기도 포천을 직접 찾았다. 3년 전부터 이주민 노동자들을 지원해온 온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가 방문에 동행했다.
오후 5시 40분쯤 짧아진 해가 서서히 질 무렵 찾은 포천 소재 비닐하우스 단지는 주변에 가로등 하나 없이 황량했다. 많게는 한곳에 50개씩도 모여 있는 하우스 틈틈이로 얼기설기 널어놓은 빨래와 통신 안테나로 그나마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검은 차양막으로 둘러놓은 비닐하우스 한 채에 들어가니 불빛이 새어나오는 조립식 패널 건물이 눈에 띄었다. 8년 전 한국에 처음 왔다는 캄보디아 국적의 쏭(50·여)씨가 쑥쓰러운 웃음을 지으며 숙소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입구 측면에는 포장용 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휘발유가 담긴 기름통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가운데 낡은 자전거 한 대와 달력도 보였다.
숙소 내부는 한눈에 봐도 비좁았다. 바닥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냉기가 돌았다. 주방이 들어선 세로 방면이 약간 더 길어 보였지만, 육안으로 가늠해도 실평수는 '8평'에도 훨씬 못 미쳐보였다. 쏭씨는 성인 여성의 보폭으로 가로·세로 '다섯 걸음'이면 끝나는 이 공간에서 캄보디아 출신 20대 여성 2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방 한 귀퉁이에는 선풍기형 전기 난로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마저도 난방용도가 아닌 빨래를 말리기 위해서였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요즘은 빨래를 밖에 널면 얼어버린다. 쏭씨는 "아침에는 좀 많이 춥다"면서도, 밤에는 화재가 두려워 유일한 난방기구인 난로도 끄고 잔다고 말했다.
움푹 파인 논밭 한가운데 있는 쏭씨의 숙소는 저지대라 수해에 약하다. 1시간에 150㎜ 강수량을 기록할 정도로 장대비가 퍼붓던 지난해 여름, 쏭씨는 집 안으로 들어찬 빗물을 직접 퍼내야 했다. 쏭씨는 "지금도 비가 오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출신 쏭(50)씨가 지내고 있는 기숙사 내부 세면장의 모습(왼쪽)과 쏭씨를 포함해 캄보디아 여성 3명이 기거하고 있는 숙소 내부의 잠금장치로 사용되고 있는 숟가락(오른쪽). 8평에도 훨씬 못 미치는 공간 내부엔 화장실조차 없었고, '기숙사의 침실, 화장실 및 목욕시설 등에 적절한 잠금장치를 설치할 것'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시행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사진=이은지 기자, 차민지 기자)
실질적인 안전도 문제다. 방 안에 '세면장'은 있지만, '화장실'은 없어서다. 야밤에 볼일을 보고 싶으면 비닐하우스 밖 길가에 있는 화장실까지 나서야 한다. 잠금장치도 부실해 숟가락을 고리에 끼워 넣어 이중잠금 장치로 삼고 있었다.
8년 전 한 달 임금으로 100만 원을 받았던 쏭씨는 이제 170만 원을 받고 있다. 다만, 건강보험료를 제외하고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 남짓. 점심시간은 '30분'으로 고정돼 있어 요리는 고사하고 삶은 달걀을 끼니로 때우기 일쑤다. 한 달에 토요일 이틀을 쉰다는 그는 "매주 하루씩 쉬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다른 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한국 생활 4년차인 미누(28·남)씨는 처음 숙소를 보고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싶어 놀랐다고 했다. 그가 지내고 있는 비닐하우스 내 숙소는 고시원을 연상케 했다. 공용 세면장, 공용 주방 맞은편으로 옷가지가 걸려 있는 빨랫줄이 보였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 또한 누군가에는 몸을 뉘일 '집'이다. 미누씨는 "숙소를 보여주기 창피하다"며 "힘들어도 참는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는 내년이면 본국으로 돌아가 결혼할 꿈을 꾸고 있다.
같은 농장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제이(24·남)씨는 매달 빠져나가는 숙소비가 많이 부담스럽다. 최저임금으로 보수를 산정 받는 이들은 여기서 20만 원을 기숙사비로 '커팅'(지급)하고 있다. 돈을 보다 많이 벌 수 있는 축산 농장 등으로 옮기고 싶지만, "마음 있어도 못 가요. 사장님이 보내줘야 해요"라고 머리를 저었다. 일을 최대한 빨리, 많이 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며 "욕도 많이 먹는다"고 했다.
◇"업장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전태일보다 더해"
비닐하우스 안 이주노동자들이 빨래 후 널어둔 옷가지가 들여다 보인다. (사진=이은지 기자)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그 이면에는 제도의 사각지대가 있다.
고용노동부(노동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이주노동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때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정하는 12가지 기준을 준수하도록 규정했다. 대표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같은 방에 거주해서는 안 되고 △방의 넓이는 1인당 2.5㎡ 이상이어야 하며 △한방에 15명 이하의 인원이 거주해야 하고 △침실·화장실·목욕 시설에는 적절한 잠금장치가 설치되어야 한다.
만약 이를 위반한 기숙사를 제공할 경우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고용허가 점수제에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사업주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하거나 휴·폐업한 경우, 사업주가 근로조건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한 경우 등에 한해 고용센터의 심사를 통해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가 아니라면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즉,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업장을 변경할 선택권을 넓혀주고 사업주에게는 일종의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이 역시 실효성을 띠기 어렵다고 말한다. 먼저 '열악한 기숙사'를 이유로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직업안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시정할 것을 요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시정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노동부가 제시한 기준에 기숙사가 미달한다는 것을 이주노동자가 증명해야 한다. 이후 직업안정기관(고용센터)이 이를 확인해 사업주에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사업주가 기관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에야 비로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민주노총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확보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현황.(사진=민주노총 제공)
실제로 민주노총이 노동부를 통해 확보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현황에 따르면 올 1월부터 6월까지 사업장 변경을 한 2만 1681건 중 기숙사 제공을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지난해 사업장 변경을 한 5만 1911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근로계약 해지 및 계약만료'가 전체 변경 건수의 80% 가량을 차지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난해 7월 16일 노동부가 고시 개정을 통해 사업장 변경 사유에 기숙사 문제를 넣었다. 하지만 기숙사 문제로 사업장 변경이 된 건수가 하나도 없다"며 "기숙사 문제를 사업장 변경 사유로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고용허가 점수제를 통해 '사업주'를 간접 규제하는 방식도 제한적이다. 노동부는 특정 기준을 설정해 사업장에 점수를 부여하고 점수가 높은 사업장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배점표의 가점 항목에는 '우수 기숙사 설치 및 운영 사업장(일정일로부터 최대 2년간 2.5점)'이 포함됐다. 또 감점 항목에는 '기숙사 시설기준을 미달한 사업장(1건당 -1점, 최대 -10점)'이 들어갔다.
다만, 해당 항목 자체가 고용 허가의 당락을 결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숙사 제공이 사업주의 의무사항이 아니고, 실태조사를 해보면 60% 가량이 무료로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숙사 부분을 엄격하게 강제조항으로 넣어 사업주의 진입을 막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일단은 점수제에 감점 항목을 둠으로써 정부 차원에서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며 "고용 허가 당시 사전 확인을 강화하는 방식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현실성 있는 숙소기준 내놔야" "現기준이라도 충족 필요"
지난 2017년부터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해온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 그는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전태일들"이라고 말한다. (사진=이은지 기자)
전문가들은 기존에 정부가 제시한 숙소기준을 좀 더 다듬는 노력과 함께 그 기준을 채우지 못할 경우 고용허가 자체를 불허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현재 노동부가 제시한 기준만이라도 엄격히 지킬 수 있도록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은 "적어도 정부와 (외국) 정부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데려오는 노동자면 현실성 있는 숙소 기준을 제공하고, 거기에 미달하면 고용허가를 내주면 안 된다"며 "법적 어려움이 있으니 법을 고치려는 노력, 지자체와 농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농촌의 경우,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농사를 짓는 사업주는 땅을 임대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임대한 땅에 집이나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로 고용노동부의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 폐지를 들었다. 그는 "숙소비는 숙소의 질에 따라서 공제해야지 급여에서 몇 퍼센트를 뺀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노동부가 그런 지침을 내려놓고 수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지침은 서면동의를 받은 사업주가 숙식을 제공하고, 이주노동자의 임금에서 일정 비유의 금액을 징수할 수 있게 했다. 식사 제공 여부, 주거시설의 형태 등에 따라서 통상 임금의 8∼20%까지 징수가 가능하다.
김 목사는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잠금장치도 허술한 등 사람 살 집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에게 '나 도저히 여기 못 살겠다. 집을 수리해주던지, 다른 데 갈 수 있도록 사인을 해 달라' 했을 때 사업주가 사인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이 지역에서 3년 동안 기숙사 문제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한 사례를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아울러 "적어도 기숙사 관련한 12가지 기준이라도 철저하게 지킬 수 있도록 노동부가 단속과 정비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이주노동자의 기숙사라고 만들어 놓은 곳들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