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차별·혐오' 이주노동자들의 아픈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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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노동에서 고용허가제까지
노동권 인정받으려 저항하고 쟁취

(사진=노순택 사진작가 제공)

 

50년 전 전태일이 품에 안았던 근로기준법,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 이주노동자 또한 긴 시간 아픈 노력을 기울여왔다. 무거운 걸음 속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느리게 확장됐는데, 믿기 어렵게도 가장 먼저 '노동자'임을 인정받은 것은 미등록노동자(유효한 체류자격이 없는 이주노동자)였다.

1993년 필리핀인 노동자가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미등록노동자도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라고 결정했다. 이에 힘입어 1994년 1월, 산재를 당한 미등록노동자들이 산재보험 적용 요구 농성을 벌여 근 한 달에 걸친 싸움으로 이를 관철했다.

이후로도 미등록노동자들은 끊임없는 소송과 투쟁으로 1997년 퇴직금, 1998년 근로기준법 적용을 끌어냈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온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이하 연수생)'은 한국 정부의 악의적인 계획에 따라 '노동자' 신분을 빼앗기고 노동법의 보호 밖으로 밀려났다. 노예와 같은 삶에 부닥친 13명의 네팔인 연수생들은 1995년 1월 '명동성당 농성'을 벌이며 아픈 외침을 쏟아냈다.

'때리지 마세요', '월급 주세요'라는 근원적 구호는 한국사회를 정면으로 찔렀다. 이 투쟁으로 연수생들은 산재·의료보험 적용, 여권 본인 소지, 최저임금과 폭행금지 등 근로기준법 8개 조항을 확보했다. 2000년에는 퇴직금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노동자' 신분은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들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간 줄기차게 '연수제도 철폐, 노동허가제 쟁취 운동'을 이어갔다. 그 결과 연수제도가 폐지되고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었으나, 역시 한국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있으므로 고용허가제는 다시 철폐 요구를 받고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설립을 위해 무려 11년을 싸웠다. 2005년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했으나 '불법체류외국인'은 노동3권의 주체가 아니라며 반려되었고, 이후 오랜 소송과 버팀 끝에 2015년 인정받았다.

이주노동자가 확보한 권리 어느 것 하나도 거저받은 것은 없다. 크든 작든 저항하고 싸우고 울부짖어 움켜쥔 것이다. 그것이 쌓여 현재에 이르렀으나 이주노동자들은 지금도 차별과 혐오가 얽힌 가혹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볼펜과 자동차를 만들며, 아파트와 공장을 지으며, 상추를 따고 돼지를 키우며, 멸치를 잡으며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사회의 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대가로 받는 것은 오로지 몇 푼의 임금과 무시뿐이다.

시민권이 거세된 이주노동자가 이를 거역하고 보편적 인권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받으려면 부단히 싸울 수밖에 없다. '기계'가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자라고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는 투쟁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티끌 같은 저항부터 태산 같은 투쟁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대의 힘이다.

지금껏 앞장서 외쳤던 이주노동자들은 어김없이 나라 밖으로 내쳐졌다.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했던 농성을 시작으로 27년,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헌신했던 거의 모든 이들이 강제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잊혔다.

오래 부르지 못했던 그 이름을, '전태일 50'에 기대어 다시 불러본다. 미처 부르지 못한 이름은 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힘차게 불러주기를.

먼주타파, 다네소르반자데, 묵다지엠, 카데물이슬람비두, 서머르타파, 아느와르후세인, 까지만 까풍, 토르너 림부, 쉬디버랄, 어르준파우델, 미노드목탄, 뚜라, 미셸카투이라, 그리고 이름도 없이 싸우고 떠났던 수많은 이들….

이들의 헌신과 열정에 빚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이만큼이나마 전진했다. 더 가야 하는 걸음은 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다시 벼리고 전진!

※이 기사(글)은 11월 9일 나온 <전태일50> 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전태일50> 신문은 전태일 서거 50주년을 맞아 오늘날 전태일들의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현직 언론사 기자들과 사진가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 이제그만, 직장갑질119의 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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