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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일하다 숨진 한진택배 노동자…"한진·정부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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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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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자택서 발견된 30대 김모씨…"생전 지병 없었어"
사망 나흘 전 동료에게 하소연 문자…사측 "배송물량 적었다"
유족 "200개는 적은 물량인가…사측에 분노" 현장에서 울컥
"심야배송은 살인행위"…실사점검 없이 '생색' 고용부도 지적
시민들도 자체모임 결성…산재보험 적용제외 등 전수조사 요구

19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2일 숨진 김모씨와 관련해 사측을 규탄하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되면서, 배송량 폭증에 따른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또다른 30대 택배노동자가 새벽까지 이어진 과로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노조는 "심야배송은 살인행위로, 이는 사회적 타살"이라며 해당업체인 한진택배와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를 강력 규탄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지난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36)씨의 죽음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안이한 대처를 비판했다.

앞서 1년 넘게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신정릉대리점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숨지기 나흘 전인 이달 8일 새벽 4시 28분 회사 동료에게 "저 16번지 (물량) 안 받으면 안될까요. 오늘(7일) 420개를 들고 나와 지금 집에 들어가고 있다"며 "오늘 280개 들고 와서 다 치치도(처리하지도) 못하고 가고 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저 (지금) 집에 가면 (새벽) 5시.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물건 정리해야 한다. 어제도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더라"며 "형들이 저 '돈 벌어라' 하는 건 알겠는데, 장담하는데 있다가도 또 똑같이 된다. 저 너무 힘들다"라고 하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기사의 과로사 관련 공식 사과와 보상,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대책위 진경호 집행위원장은 김씨의 사망이 알려지게 된 배경에 대해 "지난 15일 택배 관련기사에 (작성자가) 어떤 분인지 확인은 안됐지만, 한진에서도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댓글이 달렸다"며 "이에 기초해 대책위가 국회의원 몇 분을 통해 한진택배 본사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진택배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고인이 평소 지병이 있어서 그로 인한 사망이라는 점, 고인이 평소 배달물량 200개 미만으로 동료보다 현저히 적은 물량을 배달했다는 점 등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지병에 의한 죽음'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유가족이 제보한 김씨의 문자메시지와 김씨가 생전에 휴대전화에 남긴 메모 등을 종합할 때 한진택배 측의 설명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택배기사의 일과를 고려할 때, 김씨는 지난 7일부터 이튿날인 8일 새벽 4시 반까지 21시간을 내내 일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지난 6일에도 301개의 택배물품을 배송했을 뿐 아니라, 추석연휴 직전에는 △22일 323개 △23일 301개 △24일 318개 △25일 249개 △26일 220개 등 사측이 주장하는 '200개 내외'를 훨씬 상회하는 물량을 배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법정 공휴일로 휴무가 보장돼야 했던 지난 9일 한글날에도 출근해 배송업무를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김태완 공동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사진=이은지 기자)

 

특히 대책위는 한진택배의 경우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보다 배송물량 자체는 적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배송구역은 넓어 한진택배 기사가 200개 물품을 배송하는 시간이 CJ대한통운의 300~400개에 맞먹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병원에서 진단한 김씨의 사인인 '허혈성 심장질환' 역시 심근경색, 뇌출혈 등과 함께 대표적인 '과로사' 증상이라는 것이 대책위의 설명이다.

현장에 참석한 김씨의 친동생은 고인의 전쟁 같았던 일상을 전하며,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사측의 해명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김씨가 따로 복용하는 약이 없었고, 체격도 신장 193cm에 이르는 '거구'였다고도 전했다.

김씨의 동생은 "형의 죽음의 원인이 지병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소 복용하는 약이 있고 병원에 간 기록이 있다 하면 저도 조금이나마 인정을 할 텐데 정말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말했다.

이어 "생전에 (형이) 돌아가시기 전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단 한 번도 형의 (끼니 등) 안부를 물은 적이 없다. 아침에 통화하면 '바쁘다. 교대하고 있다', 오후에 통화하면 '배송 중이다', 저녁에 통화하면 '아직 집에도 못 갔다. 나중에 얘기하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동생은 한진 측이 고인의 업무량이 과하지 않았다고 내세운 '200개'라는 배송수치에 대해서도 "이게 정말 적은 물량인가"라고 반문하며, "(카톡 메시지 중) 마지막 문구에 보시면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이 있는데, 저 또한 많이 슬프고 (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란 생각이 든다"고 눈물을 보였다.

대책위는 한진택배 측이 '분류인력 추가투입'에 대해 정부와 합의했음에도 단 한 명의 인력 확충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 박석운 공동대표는 "고인의 비참한 죽음은 구조적 살인행위라 생각한다. 자칫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억울한 죽음이 최근 연이어 사망한 택배기사들이 보도되면서 댓글을 통해 (사건이) 드러나게 된 것이니 기가 막힐 지경"이라며 "이 과정 속에서 한진택배는 사인을 은폐, 조작하려 했는데 완전히 고인을 우롱한 것으로,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석을 앞두고 택배사들과 손을 맞잡고 인력 확충 등을 공언했던 고용부가 사후 점검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점 역시 지적됐다.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숨진 택배노동자의 마지막 문자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박 공동대표는 "고용부는 노동자가 심야배송을 안하도록 하겠다 해놓고 사측하고 같이 모여 사진도 찍었는데, 그걸로 끝이다. '보여주기'식으로 말만으로 국민들과 택배기사, 그 가족들을 농락한 태도"라며 "정부 당국이 나서고 택배사들이 국민 앞에 약속한 대로 심야노동이 중단됐다면 고인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 이제는 이 죽음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얼마나 더 많은 택배노동자가 죽어야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겠나"라고 되물으며 "한진택배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지금이라도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은 물론 더 이상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즉각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택배사들과 공동선언을 발표한 노동부도 고인의 책임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택배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도록 일일점검하겠다고 했던 국토교통부는 과연 할 말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노동부와 국토부에 진정성 어린 대국민 사과,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한편,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인 시민들도 택배업계 환경의 개선을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과 참여연대·민생경제연구소·청년유니온 등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에 대한 진상규명 및 CJ대한통운 등에서 드러난 산재보험 적용제외 등에 대한 업계 전수조사를 요청했다.

이들은 "(한진택배 사망노동자인) 김씨의 뒤늦은 사망소식에 대해 국토부가 한 것은 사측인 한진택배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고 그 내용을 국토부 답변으로 전달한 것이 전부"라며 "현재 분류작업 인력투입에 대해서 정부는 실태조사도, 사측이 전달하는 거짓정보를 취합해 전달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악용하고 있는 택배사와 이를 방조하고 있는 노동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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