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판사님 직권은 언제 남용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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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재판 약 2년…7건 중 4건 선고
직권남용 사실관계·법리 등 "무죄" 결론
양승태·임종헌 등 내년 상반기 1심 선고될 듯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20.9.18. 서울중앙지법 이태종 선고
"피고인에게 '수사확대 저지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앞서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영장청구서 사본을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만약 지시가 있었더라도 법원장인 피의자의 정당한 업무에 해당하므로 직권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없습니다."


법원 내부 비리에 대한 수사 확대를 저지하려 수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사태로 검찰이 기소한 7개의 사건(피고인 총 14명) 중 4번째 사건의 판결이 지난달 18일 선고됐습니다. 기밀인 영장자료와 검찰 진술 내용 등에 대한 유출 혐의를 받은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현 수원고법 부장판사) 사건이었습니다. 결과는 '무죄'. 앞서 선고된 3개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직권남용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11월 검찰이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을 시작으로 기소한 14명 중 현재까지 6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법농단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상황에서 당시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잘못은 '처벌할게 아니다'라는게 법원의 중간 결론인 셈입니다.

직권남용죄 적용에 앞서 사실관계나 증거인정·판단에 있어서 범죄가 성립되지 않거나, 문제가 있는 행위이긴 하지만 법리상 직권남용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근거였습니다.

2020.1.13. 서울중앙지법 유해용 선고(무죄)
재판장 "피고인에 대한 비난성 보도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다수의 취재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포토라인을 통과해 공개소환에 응했기 때문에 조사 당시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위축된 상태였을 겁니다. …(중략)… 피고인이 이미 '청와대 관심사건에 관한 대법원 내부자료가 청와대에 유출됐다'는 다수의 언론보도를 접한 상태에서 자신이 그 과정에 관여돼 있다는 것을 거의 기정사실로 착각한 상태에서 진술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중략)… 결국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유해용)이 연구관에게 사안요약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해 이를 임종헌에게 전달했다거나 임종헌이 곽병훈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 외부에 유출했다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사진=연합뉴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에 관여한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 등이 받고 있던 재판 경과를 대법원 연구관을 시켜 파악하게 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임 전 차장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연구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는 내용입니다.

유 전 연구관은 검찰에서 피의자신문을 받을 당시 그러한 혐의를 일부 인정하는 듯한 답변을 했지만 이 진술조서는 증거에서 배척됐습니다.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에서 나온 진술이 아니라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법상 특신상태에서 이뤄진 피의자신문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법원이 검찰 피신조서를 무비판적으로 증거로 써온 관행이 문제로 지적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기도 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유 전 연구관 사건의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피의자가 조사 당시 '심리적 위축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해 당시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정했습니다. (25년 법관 경력자의 궁핍한 상황을 깊게 헤아린 법원의 태도를 다른 일반 형사재판에서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임 전 차장의 USB에서 발견된 문제의 '사안요약' 문건 파일명에 유 전 연구관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물적 증거를 뒷받침할 진술들이 탈락되면서 유죄를 확정하기엔 부족한 수준에 그쳤습니다.

한편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애초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 그 권한을 남용했다는 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상의 문제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2020.2.14. 서울중앙지법 임성근 선고(무죄)
재판장 "만약 검사의 주장처럼 사법행정권자의 재판업무에 대한 직무감독을 허용하면, 개별 법관이 조직법상 상관인 사법행정권자의 재판에 대한 지시·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부담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한 해석론은 사법행정권자에게 법관의 재판권에 합법적으로 개입할 통로를 줘 법관의 독립을 형해화하기 때문에 헌법상 법관의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법관의 재판권 행사에 절차상 또는 실체상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사전에 그 오류의 시정을 구할 수 없고, 사후에 심급제도를 통해서만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심급제도와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근본정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사진=연합뉴스)

 

임 부장판사 사건은 사법농단 의혹 중에서도 핵심인 '재판개입' 혐의에 관한 것입니다.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입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의혹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임 부장판사는 가토 전 지국장 사건 재판장에게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관련 보도들이 허위라는 '중간판단'을 밝히도록 했는데, 실제 그대로 진행됐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간섭한 것으로서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비판하면서도 직권남용죄는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에 개입할 직무감독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오히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임 부장판사의 행위는 단순히 지위나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월권'으로 해석됐습니다.

더 나아가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와 (가토 사건) 재판장의 중간판단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재판장이 임 전 부장판사의 요청을 무조건 따른 것이 아니라 재판장으로서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합의부 내부 논의를 거쳐 독립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겁니다. 직권남용의 법리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재판개입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분명히 발생한 '사실'이었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법정에선 '없던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직권남용죄의 법리적 어려움을 따지기도 전에 구체적 사실관계나 증거에 대한 인정·판단에서부터 피고인의 무죄가 짐작되는 흐름을 보면, 판사 피고인을 대하는 판사들에 대한 불신도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최근 이태종 전 법원장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기획법관과 법원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기밀정보를 법원행정처로 넘긴 일에 법원장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봤으니까요.

애초부터 형사처벌로 다루긴 힘든 문제였고, 법원 내부의 징계나 국회의 법관탄핵이 제대로 진행됐어야 한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습니다. 검찰이 너무 광범위하게 수사하고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재판개입을 포함한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행위의 무게를 생각하면, 지금 1심 재판 외에 다른 어떤 문책이나 예방적인 수단이 추진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형사재판 1심 선고를 받은 23만7699명의 피고인 중 무죄는 7496명입니다. 전체의 3.5%인데 과거사 재심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으로 관련 범죄들에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 등을 제하면 실제로는 1% 미만에 그친다고 합니다. 그 어려운 결과를 전·현직 고위법관 6명이 받아냈고 앞으로 8명(3개 사건) 남았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사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규진 전 양형위원 상임위원·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사건입니다. 세 개 재판의 결론은 이르면 올해 말, 길어지면 내년 상반기 중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법원행정처의 핵심 인사들에게도 직권이 없었다거나, 아랫사람이 한 일이라 알 수 없었다는 무심한 논리가 반복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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