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결과가 정의롭지 않을 때, 법원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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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질문 남긴 전교조 전원합의체 판결
'적극적 법해석' 별개의견에 판사들 '술렁'
"아주 가끔만 나와야 할 판결" 비판도
"국회·정부가 법원에 책임 미루는 게 원인"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과 조합원 등이 3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지=연합뉴스)

 


2020.9.3. 전교조 전원합의체 판결 중 김재형 대법관 별개의견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에 해고 근로자가 한 사람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더 이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법률이 정당한가?
-조합원으로 활동하던 중에 교원의 지위를 잃은 이들을 교원 노동조합 구성원에서 배제하지 않았다고 해서 원고를 교원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해직교원의 조합원 활동을 묵인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규약에 이를 명시했기 때문에 '법외노조 통보' 조치는 타당하다고 봐야 하나?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국회 입법은 수년째 답보 상태이고 정부는 전교조가 법외노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문제는 법원의 판단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도 법원으로서는 구제 방법이 없다고 해야 하는가?

지난 3일 대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가 부당하다고 판결한 후 해직교사들의 복직이 추진되고 있다. 약 7년간 끌어온 문제가 대법원 판결로 일순간에 해결된 모양새지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은 법조계 내에서 더욱 묵직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법에서 권한을 위임한 적 없는 시행령 조항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고 선언했다. 무효인 시행령을 근거로 처분을 내린 절차적 위법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이에 해직자나 기타 자격 미달자가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있는지 여부 등 핵심 논쟁거리는 직접 다루지 않고 입법의 역할로 미뤘다.

그러나 김재형·안철상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마찬가지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잘못됐다고 파기환송에 표를 던지면서도 다수의견이 진짜 문제의 핵심을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관은 '법외노조'라는 결론에 대한 타당성에, 안 대법관은 법외노조 통보 '철회'의 정당성에 주목한다.

법원 내에서는 다수의견보다 이들 별개의견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이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다수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판사들의 다수의견일 것"이라며 "특히 법문언을 상당히 확장해석 한 김 대법관 논지에 대해선 파격적이라는 반응도 많다"고 말했다.

안 대법관이 이 사건의 '법외노조 통보'는 전교조의 위법 사항(6만명 중 해직교원 9명)에 비하면 과도하다는 점을 위주로 주장했다면, 김 대법관은 법외노조 판단 자체가 틀렸다고 봤다. 다수의견과 달리 문제의 법조항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도 그 법률의 결과가 합리적이고 정의롭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 위법한 조치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흔드는 다소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어떤 법조항이든 판사가 입법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법원은 개인 대 개인의 민사 영역이 아닌 국가와 개인 사이 형법·행정법 등의 영역에서 판사의 적극적인 법해석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법관은 법적용의 결과가 명백히 불합리하거나 터무니없는 경우, 입법이 불충분했거나 오류가 있는 경우에도 판사가 문자 그대로의 법률 해석에서 갇혀야 하는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판결문에서 김 대법관은 "(미국 법·정치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의 표현대로 이른바 '어려운 사건(hard case)'"이라며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여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사건이 있고, 이 사건이 바로 그러한 사건"이라고 고심한 흔적을 드러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동의여부를 떠나 일선 판사들에게도 굉장히 숙고할만한 질문을 던졌다"며 "입법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실체적 정의와 괴리가 생겼을 때 판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2020.9.3. 전교조 전원합의체 판결 중 김재형 대법관 별개의견
"법률은 법률규정의 문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 명문규정의 엄격한 적용만을 고집한다면 법적 안정성이 유지될 수는 있어도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대한 적응성이 떨어질 수 있다."(1978·199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법규범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을 완벽하게 규율할 수는 없다. 법은 그 일반적·추상적 성격 때문에 본질적으로 흠결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률의 해석은 단순히 존재하는 법률을 인식·발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경우 유추나 목적론적 축소를 통하여 법률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법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실질적 법치주의의 요청이다."


김 대법관은 "법원은 '법률'이 아닌 '법'을 선언해야 한다"며 "만일 법 해석의 결과 심히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그러한 해석을 배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문언을 해석할 때 논리적·체계적·역사적·목적론적 해석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불합리와 부당함이 교정되지 않는다면, 법원은 때로는 법의 문언을 넘어서고 문언에 반하는 해석까지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러한 해석을 두고 "아주 가끔 나와야 할 판결"이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하다. 한 지방법원의 판사는 "이번 사건은 국가 대 개인의 사건에서 다행히 개인에게 유리한 방향의 해석이 나왔지만, 이러한 해석론이 반대로 쓰인다면 굉장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주요 일지 (그래픽=연합뉴스)

 

민사사건에서는 이 같은 적극적 법해석 방법이 보다 쉽게 적용될 수 있지만, 국가와 개인 간의 규율은 법문언대로 촘촘하게 해석해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개별 사례마다, 심리하는 판사마다 법률의 해석이 달라질 경우 법적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법률이 이처럼 위헌적인 결과를 나타낸다면 법원에서 개별 사건을 다룰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서 판단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법원이 기존에도 '다수결의 논리'에 맞서 사회적 소수자·약자의 기본권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듯, 이번 사안 같은 기본권 문제에서는 적극적 법해석이 허용될 여지가 크다는 의견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에 법률 해석의 막강한 권한을 넘기고 있는 것은 국회와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며 "해직자 관련 노조법 입법은 수년째 답보 상태이고 정부는 스스로 법외노조 철회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인권의 보루인 법원의 선택지는 정해진 것 아니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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