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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프리랜서', 일은 정규직처럼"…노동청은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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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프리랜서' 두고 정규직과 같은 일 시키는 사업주들
근로계약서 거부하며 최저임금, 각종 수당 등 보장 안해
"고용노동부, 계약서만 보고 '근로자 인정 어렵다' 단정"
"시대에 맞게 노동자성 판단 기준 바꿔야…해외는 이미 관련법 제정"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회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했습니다. 회사가 지정해준 근무 장소에서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고, 월차는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오시면 20분 일찍 와서 대기하기도 했어요. 회사 정규직들과 함께 개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보안서약서, 이메일과 메신저 등도 모두 회사 이름으로 등록했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서는 더는 할 업무가 없다며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을 냈지만, 근로감독관은 제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민사소송을 하라고 하네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IT업계 개발자 A씨)

#. 호텔에서 프리랜서로 수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계약서와 말만 프리랜서이지, 회사에선 의무적으로 정해진 출근을 요구하고 출퇴근 시간도 정해줬습니다. 휴무도 허락을 받아야 쓸 수 있습니다. 정규직보다 더 많이 근무했지만, 기본급은 한 푼 받지 못했고 인센티브로만 월급을 받아왔습니다. 사측은 연말마다 '재계약'을 이야기하며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같이 일하지 못한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호텔리어 B씨)

노동청의 안이한 관리·감독하에, 다수의 사업장이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할 노동자들에게 '프리랜서 계약'을 맺도록 해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피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장 프리랜서' 세워두고 의무 회피하는 사업주들

직장갑질119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위장 프리랜서'는 특정한 업종에 국한되지 않고 전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사업주들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해 3.3% 소득세를 떼면서 근로기준법의 각종 의무는 피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 노동자들은 형식만 프리랜서일 뿐, 실상은 일반 사무직 노동자와 같은 근무 형태·업무 강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이들은 △회사의 지휘 통제를 받으며 △회사의 통상적인 업무에 속하는 일들을 하고 △겸업을 절대 할 수 없는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사업주들은 근로계약서 작성·4대 보험 가입을 거부하며 최저임금, 각종 수당, 연차휴가, 퇴직금 등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할 디자이너, 판매사원과 같은 직종도 법망을 피해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원 강사, 트레이너, 미용사, 방송 제작 업무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C씨는 3개월 인턴 후 정직원 전환을 조건으로 한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지만, 회사는 사실상 말을 바꾸고 C씨를 프리랜서처럼 사용했다. 수없이 야근했지만, 야근 수당은 받아본 적 없다.

방송 제작업에서 일한 D씨는 제작사로부터 "계약관계가 위탁관계라 체불임금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앞서 제작사는 방송 제작지원을 받아 사업을 하는데 근로계약서를 쓸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며 D씨에게 위탁계약서를 내밀었다. 사측은 현재 이를 근거로 프리랜서 계약이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계약서만 보고 "근로자 아니다" 단정 짓는 노동청

감시기구인 고용노동부가 형식적인 계약서만을 근거로 근로자성을 따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프리랜서 계약을 한 IT 노동자는 노동청을 찾아가 체불임금을 진정했으나, 근로감독관은 계약서만 보고 "근로자가 아니다.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체불임금 진정을 낸 스마트폰 판매 노동자 역시 "계약 건당 인센티브를 받기로 했기 때문에 근로자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답을 받았다.

이를 두고 단체는 "근로자임을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근로자성 판단 기준도 매우 엄격하게 정하고 있어 외근직 노동자들은 점점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추세"라며 "회사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여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하는 경우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같은 직종에 근무하더라도 구체적 사정에 따라 근로자인 경우와 자영업자인 경우가 있는데, 우리 법원과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사례가 하나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으레 자영업자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2020년 7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 출범식에서 기자회견이 끝난 후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시대에 맞게 '근로자성' 판단하는 기준 바꿔야"

결국 시대에 맞게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체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제정한 AB5법을 예로 들었다.

AB5법은 입증책임의 부담을 '사용자'에게 뒀다. 근로자성의 판단 기준은 완화했다. △사용자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로울 것(a) △하는 일이 사용자의 통상적인 업무에 해당하지 않을 것(b) △사용자와 동종 분야에서 본인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별개의 영업, 직업 또는 사업을 영위할 것(c) 등 위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사용자'가 입증한 때에만 독립사업자로 보고,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간주하도록 했다.

해외에서는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캘리포니아 주 법원은 "차량 공유업체 우버, 리피트의 기사는 고용된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프랑스 대법원은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했다. 파기원은 회사가 노동자들의 실시간 위치와 이동 거리를 모니터 할 수 있는 장비를 구비하도록 한 점을 들어 "고용관계 존재를 인정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지시 및 통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직장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AB5법의 ABC 요건과 같은 현실에 부합하는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당장 법률을 바꾸지 않고도 정립할 수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성 판단 지침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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