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딱 하루, 차려입고 꽃 보고 노래도 하는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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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연극 '화전가'…힘겨운 삶 버텨낸 모두를 위한 헌사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23일까지

화전놀이를 떠난 아홉 여자들(사진=국립극단 제공)

 

"요맘때 봄, 차려입고 나가가 꽃도 보고 노래도 하는 기다. 일 년에 딱 하루. 화전놀이."(극중 '김 씨' 대사)

6.25전쟁을 목전에 둔 1950년 4월. 김 씨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고향으로 모여든다. 하지만 김 씨는 잔치 대신 화전놀이를 제안한다. 고모와 세 딸(금실이·박실이·봉아), 두 며느리(장림댁·영주댁), 집안일을 봐주는 독골할매, 그가 거둬 키운 홍다리댁이 화전놀이에 동참한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연극 '화전가'는 아홉 여인이 하룻동안 화전놀이를 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 분위기는 쓸쓸함과 흥겨움이 공존한다. 집안 남자들은 무대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여인들의 대사를 통해 이들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거나 해방 후 월북하고 좌익활동으로 감옥살이 중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국립극단 제공)

 

남북 이념 대립이 절정으로 치닫던 때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여인들은 불안감을 드러내는 대신 전 부치고 예쁜 옷 입고 수다를 늘어놓으며 힘겨운 삶을 버틴다. 이성열(국립극단 예술감독) 연출은 "극중 여인들의 대화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하다. 화전놀이를 즐기는 지금이 태풍 전의 고요일지라도 결국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건 작은 것들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화전가'는 크고 작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 온 모두를 위한 헌사다.

'화전가'는 청각을 깨운다. 배우들은 작품의 공간적 배경(안동)에 맞춰 안동 사투리를 구사한다. 생경하게 들리던 사투리는 극이 무르익을수록 귀에 착 붙는다. 무대 뒤편 개울물이 차오르는 소리는 김 씨 집안을 감싼 불안한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관람 내내 여인들이 입은 한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폭풍전야 같은 현실과 달리 이들의 한복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김영진 의상 디자이너는 "환갑잔치 대신 가는 화전놀이인데 화려해도 괜찮지 않을까. 각각의 캐릭터를 복사꽃, 사과꽃, 산벗낭구, 제비꽃, 버드낭구 같은 꽃과 연계시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화룡점정은 내공 깊은 배우들의 연기다. 극을 이끄는 예수정(김 씨)을 축으로 전국향(고모), 김정은(독골할매), 문예주(금실이) 등 배우들의 합이 좋다.

김 씨와 첫째 며느리가 부둥켜 안은 장면(사진=국립극단 제공)

 

'화전가'는 주체적인 여성을 내세워 여성 중심 서사를 펼치는 최신 연극계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 자체로 매력이 충분하다. 김 씨가, 4년 전 남편과 사별한 큰며느리(장림댁)를 친정으로 놓아주는 장면에서 객석은 눈물로 젖었다.

'시간이 앗아간 그 모든 것을, 나 여기 다시 새기네. 그대를 위하여.' 극중 봉아(이다혜)가 암송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중 일부다. 화전놀이를 하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두에게 바치는 싯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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