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환경부 선배에 "사표내달라"…고개 떨군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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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임명직도 靑 재가 없인 진행 불가"
"내정자에게만 환경부 직원이 자료·절차 안내"
블랙·화이트리스트 파동 이후에도 여전했던 관행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20.6.29. '환경부 블랙리스트' 공판 중 김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 증인신문
검사 "증인이 사표 제출을 직접 요구한 남○○, 이○○은 환경부 출신들로 선배에 해당하지 않나요? 특히 남○○는 온실가스TF 팀장이어서 증인과 (함께 일했던) 특별한 관계죠?


증인 "네"

검사 "선배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는데 그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증인 "하…." (크게 한숨)

검사 "난감하다거나 억지로 한다거나 이런 느낌이셨습니까?"

증인 "뭐….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고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이었습니다."


환경부 청사.(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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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실행자였던 환경부 중간 간부급 공무원은 법정에서 한참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체제에서 산하기관 임원 인사 실무를 해온 인물입니다. 자신이 전임자에게 넘겨받은 일은 과거부터 관례적으로 해오던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딱히 바람직하거나 유쾌한 일이라고 여기진 않은 듯 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 전 장관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환경부 김모 전 운영지원과장은 산하 공공기관 임원 인사 업무가 자신의 '통상적인 업무'였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통상적인 업무는 단순히 산하 공공기관 임원 인사의 절차를 챙기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청와대와 환경부, 산하기관 사이에서 연락창구 역할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김 전 과장의 전임인 정모 전 과장은 일을 넘기면서 가장 중요한 업무가 산하 공공기관 임원 교체라고 못 박았고, 김은경 전 장관도 김 전 과장에게 '최우선 과제'라는 취지로 당부했습니다.

2017년 김 전 장관이 부임하자마자 (산하기관) 인사 교체가 진행됐어야 하는데, 그간 여러 사정으로 늦어진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김 전 과장은 자신에게 '해당 기관장 및 임원들을 접촉하는 미션'이 주어졌다고 표현했습니다.

김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 제1회 검찰 진술조서
검사 "'해당 기관장 및 임원들을 접촉하는 미션'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김 전 과장 "쉽게 말해서 교체대상자에 대해서는 '당신은 교체대상자라는 것이 장관님 뜻입니다'라는 통보를, 연임여부가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당신은 비연임 대상이라는 것이 장관님 뜻입니다'라는 것을 통보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표를 낼지 안낼지는 상대방 뜻이지만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입장이나 이를 받는 입장 모두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김 전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습니다. 그 중 13명이 실제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다만 피고인들은 상당수 인사의 임기가 이미 지났거나 임기 만료를 앞둔 상황에서 의사를 조율한 것일 뿐이어서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연임이 가능한 상황이었던 임원들에게 사표제출을 종용하고 물러나지 않을 경우 표적감사를 하는 식으로 직권을 남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느 산하기관 인사가 교체 대상으로 지목되면 장관이 아닌 김 전 과장 등 실무진이 직접 찾아가 완곡하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알아서 응한 사람도 있었지만 몇몇 인사는 "나갈테니 다른 자리를 알아봐 달라"며 거래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한국환경공단, 국립공원공단 등 평범한 구직자들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른바 '신이 숨겨둔 직장'에 전직 환경부 인사들이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로자들이 채용됐습니다.

해당 공공기관의 보직들은 엄연히 공개채용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청와대가 내정한 인사에게는 미리 김 전 과장 같은 환경부 직원들이 직접 연락을 해 채용과정을 안내하고 차질이 없도록 챙겼습니다.


2020.6.29. '환경부 블랙리스트' 공판 중 김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 증인신문
(검사가 김 전 과장의 제8회 검찰 신문조서 제시하며 아래 진술이 정확하냐고 질문)
'BH(청와대)에서 잘 지원해주라는 의미로 추천 후보자 연락처를 주는 것입니다. 통상 저희가 (산하기관 임원) 공모 일정이 잡히면 BH에 일정을 정리한 서면을 보냅니다. 그러면 공모 무렵에 (청와대에서) 저나 다른 팀장에게 전화를 해 후보자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우리 후보자 잘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증인 "거의 매번 반복되는 일이고요. 프로세스입니다. (청와대 추천자) 개인별로 다 매번 연락처를 전달받았고 (청와대에서) 잘 지원해드리라고 (저에게) 당부했습니다."


청와대(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이후 환경부에서는 청와대에서 받은 번호로 해당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서류접수를 돕고 면접 질문자료를 사전에 챙겨주는 등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해당 보직에 지원한 '평범한' 다른 후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사항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통령 임명 보직 뿐 아니라 장관 임명 보직에 대해서도 청와대 승인 없이는 절대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김 전 과장은 거듭 증언했습니다.

이날 김 전 과장의 증언 내용은 이러한 행위가 형법상의 죄가 되는지 여부를 떠나 새 정권이 들어선 후 정부 기관들의 '물갈이'가 진행되는 방식을 세세하게 보여줍니다. 김 전 과장 증인신문 이후 이달 계속된 공판에서도 김 전 과장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한 환경부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와 그러한 관행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광범위한 민간인 그룹을 상대로 불이익을 계획·실행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비교하면, 검찰이 이번 사안에 무리하게 '블랙리스트' 딱지를 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청와대를 주축으로 정부부처가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의 인사를 하겠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김 전 과장은 증인신문을 마치며 깊은 한숨과 약간의 눈물로 그 답을 대신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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