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후 탈의실도 없어"…열악한 환경 속 해녀들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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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동해안 해녀들의 이야기②]
해녀 등 여성어업인 '쉼터' 전무한 실정
충남 태안에는 해녀 전용 휴게 공간도 있어
강원도 여성어업인 정책 타지역 비해 부족

해녀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 올해로 3년째다. 해녀들의 삶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지방도시 인구소멸 위기까지 나오는 강원 지역에서 해녀들의 고령화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해녀들이 고령화하면서 매년 안타까운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원영동CBS는 해녀들의 삶을 조명해 보고, 보존·계승 움직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짚어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르포]"청춘아, 내 청춘아"…오늘도 물질 나가는 해녀
②"물질 후 탈의실도 없어"…열악한 환경 속 해녀들 '한숨'
(계속)
"이제는 우리도 모두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게 힘들지... 물에서 나왔을 때 무거운 장비를 보관하거나 탈의실 같은 해녀들을 위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지난 8일 오전 물질을 마치고 나온 강원 강릉 영진해변 해녀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장비를 옮기고 있었다. 이날 작업에 나선 해녀 4명의 평균 나이는 70세 이상. 예전만큼 성치 않은 몸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무거운 장비를 수레에 싣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3~4시간 동안 물질을 하고 나왔지만,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탓이다. 해녀들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40년 가까이 물질을 하는 박복례(70) 해녀는 "이제는 다들 나이 들고 하다 보니 15kg나 되는 납과 같은 무거운 장비 등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지. 장비를 보관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해녀들을 위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누구 하나 해주는 사람도 없다"며 푸념했다.

탈의실이 없어 제대로 환복도 하지 못한 채 장비를 수레에 싣고 집으로 이동하고 있는 해녀들.(사진=유선희 기자)

 

식사를 마친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해녀들은 또다시 바다로 향했다. 이날 잡은 성게의 알을 발라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장은 해변에서 불과 5~6m 떨어진 백사장에 천막을 깔고 파라솔을 꽂은 게 전부였다. 뙤약볕이 뜨거웠지만, 파라솔 밑 그늘에 의존해 땀을 흘리며 작업을 이어갔다. 이 작업은 보통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다.

이날 작업에 나선 해녀들은 "수십 년 동안 물질을 하다 보니 그냥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익숙해졌다"며 무뎌진 모습을 보였지만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물질해서 잡은 해산물을 보관하고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훨씬 수월할 텐데..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아. 그냥 컨테이너같은 공간 하나라도 놓았으면... 다른 지역에는 해녀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 여기만 없는 것 같아."

성게알을 분리하기 위해 백사장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사진=전영래 기자)

 

고성군 대진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50여 명의 해녀들이 현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번듯한 '쉼터' 개념의 공간조차 없는 실정이다.

대진 나잠연합회 오용분 회장(72)은 "수년 전 해녀들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려고 했는데 어촌계와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무산됐다"며 "탈의실이라던가 따뜻한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당연히 작업을 하는 데 좋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어 "요즘에는 무엇보다 바다에 물건(성게, 미역, 다시마, 전복 등의 해산물)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며 "백화현상 등으로 해조류가 줄면서 자원이 고갈되는 추세로, 올해는 정말 성게에 알이 하나도 없다. 6월과 7월에 평균 3~4천만 원 정도는 올렸는데 올해는 수입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관하다"고 하소연했다.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강원 동해안에서는 해녀를 포함한 여성 어업인들의 편의를 위한 '쉼터' 같은 시설이 전무한 실정이다. 다만 일부 어촌계에서는 해녀들이 자구책으로 공간을 마련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달리 충남지역에는 여성 어업인들을 위한 시설은 물론, 해녀'만'을 위한 지자체 지원의 시설도 갖춰져 있다.


충남도는 해녀를 비롯해 여성 어업인들이 비교적 많이 몰려있는 보령시에 사업비 4억 원을 들여 여성 어업인 쉼터를 조성, 지난 5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쉼터에는 북카페와 운동시설, 샤워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충남도는 앞으로 연안 6개 시군 거점지역에도 여성 어업인들을 위한 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보다 앞서 태안 신진항과 모항항에는 해녀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5년부터 해녀들만 사용하는 휴게 공간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고성 대진지역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들어온 모습. 탈의실이 없어 일부 해녀는 배안에서 환복하기도 하고, 일부는 그냥 잠수복을 입은채 들어오기도 한다.(사진=유선희 기자)

 

이에 강원 동해안 해녀들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해녀가 경험하고 있는 '잠수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잠수병은 물속 깊은 곳에 들어간 이들이 별도의 감압 조치 없이 뭍 밖으로 나왔을 때 발생한다. 고압의 물속에서 체내에 축적된 질소가 완전히 배출되지 않고 혈관이나 몸속에 기포를 만들어 몸의 통증을 유발해 '해녀들의 직업병'으로도 불린다.

오용분 회장은 "다수의 해녀가 귀가 잘 안 들리고, 무거운 납을 허리에 차다 보니 허리 통증에 다리도 절뚝이고 한다. 현재 잠수병 치료에 대한 지원은 받고 있지만, 직업병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며 "진폐증 환자와 같이 해녀들의 잠수병도 직업병으로 인정받아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물론 강원도에서는 해녀들을 위해 나잠어업인 안전보험과 진료비 지원, 잠수복 지원, 여성 어업인 복지바우처 지원 등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다. 앞서 지난 2017년 '해녀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보존·계승의 움직임도 있지만, 정작 해녀들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고성 거진 나잠연합회 김영옥(62) 회장은 "물건도 없고, 환경도 열악해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데 계승이 되겠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금어기와 기상악화 등으로 수개월씩 물질을 못 할 경우 지원금 등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강원연구원 김충재 박사는 "해녀를 포함한 여성 어업인 정책에 있어 강원도는 타지역에 비해 많이 열악한 실정"이라며 "전반적인 어업인 감소화와 고령화, 저출산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 어업인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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