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나몰라라…방송사들, 침묵의 동조자됐나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노컷 딥이슈]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2차 가해' 논란 진행자들 수수방관
외부 채널서 발생한 문제라며 선긋기…무책임한 '2차 가해' 방관 지적
전문가들 "보도 기능있는 방송사 진행자는 공정성과 객관성 담보돼야"
"문제 없다고 생각하니 대응도 미온적…낮은 성인지 감수성 그대로"

방송인 박지희와 이동형 작가. (사진=박지희 SNS 캡처, YTN 홈페이지 캡처)

 

"하차 등 출연자 거취에 대해 (내부) 논의는 없다."

지난 16일 라디오 방송 진행자들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 피해자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이자 방송사들이 내놓은 입장이다.

앞서 TBS 뉴스공장 외전 '더 룸' 진행자인 방송인 박지희와 YTN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진행자인 작가 이동형은 15일 각기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에서 피해자를 향해 막말로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입을 모아 피해자가 고소한 사안의 '진실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4년 동안 침묵하다가 왜 이제야 고소를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박지희는 "대체 무엇을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너무 궁금하다"며 "본인이 '서울시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신고를 했어야 했다'고 말하면서도 왜 그러면 그 당시에 신고를 하지 못했나"라고 되물었다.

이동형은 더 나아가 "피고소인(박 전 시장)은 인생이 끝났는데 (고소인은) 뒤에 숨어서 뭐하는 짓인가"라며 "무슨 말만 하면 2차 가해라고 한다.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말 못해서 밝힌다는 취지로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다. 4년씩 어떻게 참았는지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피해자의 자발적 신상 공개까지 촉구했다.

그는 성추행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반발심을 드러냈다. 보통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 구도로 이뤄진 성폭력 사건들에서 이들이 '2차 가해'를 빌미 삼아 입막음을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폭력 고발 여성들에게 흔히 씌워지는 '무고'와 '검증' 프레임 역시 작동했다. 이동형은 '법적 추행 여부'가 아닌 '여성이 추행이라고 느낀 것'에 대한 적절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동형은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다 추행이 되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은 이상하다고 말하면 2차 가해니 말하지 말라는 것"이라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세상은 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취자들이 의견을 쓸 수 있는 각 방송사 게시판에는 박지희와 이동형에 대한 하차 요구가 빗발쳤다. 청취자들은 이들이 증언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 뜨리는 방식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를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지점은 여기에 대처하는 방송국들의 태도다. TBS는 이번 논란을 통해 박민희가 소속 아나운서로 잘못 알려지자 이를 바로잡는 데는 힘썼지만, 진행자의 '2차 가해' 논란에는 사실상 '침묵'이나 다름없는 입장을 내놨다. YTN도 선긋기에 동참했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방송 프로그램이 아닌 외부의 다른 채널에서 발생한 문제라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진행자들을 방송국이 계속 기용한다면 결국 무책임하게 2차 가해를 방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이하 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관계자는 "방송국들이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발언과 생각을 하는 진행자가 방송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느냐"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먹구구식 대처를 할 게 아니라 내부 규정을 만들어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방송 미디어 업계 관계자 역시 "둘 다 공공기관이 지원하거나, 주식을 갖고 있는 방송사인데다 보도 기능을 가진 채널"이라며 "공영성에 있어 사회적 책임이 적다고 볼 수 없다. 외부 발언이라고 해서 문제 없다는 논리는 결국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인물도 자사 안에서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기용이 된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들 방송사의 진행자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특히 보도 기능을 가진 방송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라면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된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대응도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태도는 방송사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심각하게 대응을 고민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대다수 사람들이 있어 방법을 마련하지 않는 것"이라며 "오히려 그 '막말'을 화제성으로 역이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방송사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인권 감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