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번화가 행진하는 혐한단체 회원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일본에서 혐한(嫌韓)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마이니치 신문에서다.
혐한의 뿌리는 개화기 일본 우익에 있다.
일본 우익의 사상적 원조인 요시다 쇼인과 그 문하생들이 정한론(征韓論)으로 혐한을 구체화했다.
조선은 미개하기 때문에 일본이 강제로 근대화시켜야 한다며 군국주의와 조선침략을 합리화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인이 방화했다"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유언비어로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현대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불과 9년 전인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조센진을 죽이자" "학살하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최근 후지주택이라는 회사에서 수 년간 차별을 받아온 재일 한국인 여성이 5년 간의 법정투쟁 끝에 일부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후지주택은 "자이니치(在日, 재일한국·조선인을 의미)는 죽어라"(화면 위쪽 붉은 선), "종군 위안부 강제연행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며 실제는 종군위안부라는 것은 급여가 높은 전시 매춘부다"(화면 아래쪽 붉은 선)는 등의 내용이 담긴 문서를 사내에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연합뉴스)
이 회사는 혐한 문서를 공공연히 만들어 "한국인은 야생동물, 죽어라"라는 차별을 넘어 "위안부는 사치스럽게 생활했다" "한일갈등은 배상금을 노린 것"이라는 등의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정서는 몰지각한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혐한 서적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혐한류'는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지금 일본의 서점에 가면 혐한을 부추기는 만화와 책이 넘쳐난다.
일본 언론들은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한국은 유교 사상이 강해 상사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성추행 사건이 빈번하다"고 왜곡하고 있다.
헤이트스피치라고 불리는 혐한 시위는 지금도 일본 곳곳에서 벌어진다.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43%가 한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20%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거꾸로 한국인이 싫어하는 나라로 일본이 44% 정도로 비슷하게 나온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일본정부를 싫어할지언정 일본인 개인을 혐오하는 길거리 시위 따위는 하지 않는다.
홍대 앞 일본인 여성 폭행사건.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지난해 홍대앞 일본인 여성 폭행사건 때는 구속수사와 엄정한 징역형의 판결로 일본 언론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의 혐한이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한다.
수천 년 역사에서 일본이 한국을 앞선 적이 없었으며 개화기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앞서면서 일본 우익들이 한국은 미개한 나라, 일본은 우월한 나라라는 인식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경제와 외교, 문화, 스포츠가 급성장하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 극우세력의 견제가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극우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도 "일본에 혐한이 퍼지는 것은 한국의 약진에 대한 일본인의 질투심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이 바로 극우적 세계관을 가진 아베 정권이라는 지적이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고 그의 문하생인 태평양전쟁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아베의 할아버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아베정권은 위기 때마다 한국 때리기로 혐한을 은근히 조장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 능력을 부러워하면서도 한국을 비난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아베정권이 한국의 G7 확대 참여를 반대하고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낙선운동을 하는 이유를 알만 하다.
우리의 답은 여기에 있다. 혐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우리 국력과 국격을 높이는 것 뿐이다.
혐한시위에 혐일시위로 맞대응할 이유가 없고 역사왜곡을 한다고 해서 이른바 국뽕(국수적 민족주의)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개화기 이후 일본 극우는 좀비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일본역사에 상처만 남겼을 뿐 한번도 성공의 역사로 기록된 적이 없다.
결국, 우리의 힘으로 혐한을 굴복시킬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