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분양이 지연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샤르망오피스텔(사진=주영민 기자)
"그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지 16년이 지났습니다. 언젠가는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거란 희망에 여전히 오피스텔 주변을 맴돌며 전세살이 중입니다. 언제 이 희망고문이 끝날까요?"공정률 95%에서 16년째 공사가 멈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샤르망 오피스텔의 한 분양 계약자의 말이다.
서울 역세권에서 공사 중인 아파트형 오피스텔이 시행사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16년째 분양계약자들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높은 이자를 떠안아 고통을 받고 있다.
◇시행사 부도로 16년째 멈춘 공사로 빚더미에 오른 분양계약자들
9일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예보는 최근 파산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산 일괄공매에서 낙찰받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샤르망 오피스텔의 새로운 시행업체가 잔금을 지불하지 않아 독촉장을 발송할 예정이다.
지하 2층, 지상 15층에 105~135㎡(옛32~41평형) 112가구 규모의 이 오피스텔은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었던 2004년 분양한 곳이다. 당시 주요 업무지역을 지난는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의 역세권으로 직장인들의 수요가 많아 각광 받았다.
당시 시행사는 국내 정상급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고 홈 네트워크, 개별 정수시설, 자동 환기시스템 등 첨단 시설과 빌트인 가구 등 세련된 인테리어를 내세워 입주예정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계획대로였다면 2006년부터 7월부터 입주가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분양 이후 시행사가 부도처리되면서 공사를 멈췄다. 현재 이 오피스텔은 공정률 95%에서 공사가 멈췄다.
지금은 파산한 진흥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시행된 이 오피스텔은 아파트보다는 비교적 저렴하고 분양받기가 수월해 젊은 예비부부나 청년 사업가 등 30~40대 청‧장년층 분양자가 많았다. 집이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을 받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힌 것은 이 때문이었다.
분양가 평당 800만 원대였던 이 오피스텔의 분양을 받기 위해 2억~3억 원의 대출은 받은 분양계약자들 대부분은 대출 원금 상환과 이자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양자들 입장에서는 은행대출을 받아 분양대금을 모두 납부했는데 시행사가 5%의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16년째 떠돌이 생활을 하는 셈이다.
40살 늦깎이 결혼 직후 분양계약을 맺은 프리랜서 A씨는 현재 이 오피스텔 주변의 전셋집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 은행의 대출을 받아 분양대금을 납부한 A씨의 가족이 매달 대출이자를 갚으면서 또다시 전세자금을 구하는 과정은 한 마디로 '가시밭길'이었다.
분양지연으로 한동안 월셋집에서 지냈고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다던 A씨는 "그동안 고생한 가족들과 억대의 대출 원금을 생각하면 아직 단 한순간도 살지 못한 이 집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매달 대출이자를 내고 있다.
멈춰 선 공사 현장은 신혼의 단꿈과 직장인들의 미래도 멈춰 세웠다. 사태 초반 분양계약자들이 만든 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B씨는 100여 가구에 달하는 분양자들의 여론을 모으고 PF를 일으킨 저축은행 등과 입장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직장의 해고통보였다.
당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할 정도로 수많은 전화가 몰리고 회사로 찾아오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입이 정해진 직장인 분양자들은 이자를 제때 내지 않으면 곧바로 신용불량 위기에 몰린다. 신혼부부 분양자였던 B씨는 주거 불안과 해고, 신용불량의 위기가 동시에 닥치자 결국 서울을 떠났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분양 피해 해결 부담 큰 후속 시행사들…긴 시간 고통받는 분양자들분양계약자들이 16년간 오피스텔에 묶이면서 위기상황도 여러번 있었다. 특히 진흥저축은행이 파산 직전 새로 섭외된 시행사에 분양계약자들에 대한 채권까지 넘기면서 후속 시행사와 분양자간 법적공방도 수년간 지속됐다.
후속 시행사가 진흥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대출의 원금을 갚으라고 독촉하면서 시행사와 분양자 간 민사소송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법원이 분양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로 인해 지불한 소송비용도 적지 않았다. 이후 이 오피스텔의 공사를 마치겠다며 여러 업체가 뛰어들었지만 이미 많은 분양자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법적공방과 거듭된 분양 지연으로 대출이자 갚기를 포기한 가구도 속출했고 그 사이 홧병과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오피스텔 부지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공사가 시작되면서 분양권을 받은 C(66‧여)씨는 최근 함께 분양 받은 여동생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분양계약자들은 C씨의 동생이 분양 지연 이후 내내 생계곤란으로 고생한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종종 주변에 내비쳤다고 전했다.
◇15년 만에 나타난 시행사…아직 멀리 있는 희망지난해 10년 넘게 고통받던 분양계약자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진흥저축은행의 채권을 넘겨받은 예금보험공사가 지난해 9월 해당 오피스텔의 PF 자산에 대한 일괄공매를 실시해 매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낙찰받은 업체가 나머지 5%의 공사를 마무리하면 분양자들은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업체도 결국 매각 잔금기일인 지난 6일까지 잔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공매에 낙찰돼 계약금을 냈다고 하더라도 기일 내에 잔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낙찰업체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은 건 기한내 잔금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계약금을 손해보더라도 사업을 포기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 해당 업체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예보 관계자는 "해당 오피스텔은 십년 넘게 분양계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점을 감안해 가급적 분양이 이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 분양계약자는 "그동안 성실히 분양자의 의무를 다했지만 매달 돌아오는 건 이자 독촉 뿐"이라며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니었는데 이러다 평생 이 오피스텔 주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