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의 코치진과 일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 견디다 못해 23살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씨가 마지막 남긴 말은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사건에 온 국민이 공분을 느끼고 있다.
지인들의 전언과 운동일지 등에 의하면 최씨는 슬리퍼로 뺨을 맞는 등 수시로 폭행을 당했고, 체중 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사흘간 밥을 먹지 못했다.
회식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빵 20만원어치를 강제로 먹게 했고, 최씨는 새벽 1시까지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이른바 '식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가혹행위일 뿐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인권살인이다.
조폭집단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야만적인 학대가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자행될 수 있을까? 믿고 싶지 않지만 이번 일은 체육계의 이런 비인간적 행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공분을 사는 것은 극단적 선택에 앞서 최씨가 여러 경로를 통해 구조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신고했지만 시간만 끌었고,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 호소도 해봤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없었다.
이들이 고작 한 것은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가해자들이 부인한다'거나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한다더라', '증거가 더 없느냐' 등의 말을 건네며 피해자에게 오히려 정신적 압박과 부담감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숨지는 날에도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로부터 전화를 받고 무척 힘들어하다 그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23세의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 씨가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 (사진=고 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자기편이 돼줄 것으로 믿었지만 도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압박으로 다가오는데 대한 무력감과 심리적 압박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최 씨 지인들의 전언이다.
경북체육회와 경주시는 최씨의 부친에게 가해자와 합의를 종용하며 사건무마에 급급했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할 경찰수사도 최 씨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사건을 폭로한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은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의 진정을 관련기관이 좀 더 신속하게 처리하고 피해자 보호와 구제에 적극적이었다면, 그리고 경찰조사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조금만 적극성을 보였다면 한 젊은 운동선수의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번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가해자 엄벌과 실효성 없는 재발방지 약속을 녹음기처럼 되뇌고 있다. 지난해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성폭행 사건 때도 똑 같은 말을 했지만 최 씨의 비극을 막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젊은 선수들의 억울한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반드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체육계의 인권유린에 대해 선수보호 의무가 있는 문화체육부와 대한체육회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되 대책은 체육계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위계가 엄격한 선후배의 인맥으로 연결된 체육계 특성상 스스로 자신의 폐부를 도려내는 데 한계가 있고, 또 그런 문화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자라온 인사들인 만큼 문제를 인식하는 공감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폭언과 폭력을 근절하고, 고통 받는 젊고 유능한 선수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호소에 우리 사회가 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