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33년 만에 고개숙인 대통령, '국가폭력' 특진은 왜 놔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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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민갑룡 경찰청장, 6·10 33주년 기념식 참석
불법고문 사죄·참회 뜻 밝혔지만, 피해자들 고통 현재진행형
'간첩 조작'으로 특진한 공안 경찰들 통계조차 없는 게 현실
청룡봉사상 충상 수상 명단조차 없어…"경찰 특진 취소는 0건"
정부, 이제라도 수사 경찰들 조사해 특진·서훈 취소 나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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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33년 만에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고(故)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고 숨진 방(대공분실 509호)에도 올라갔다. 김정숙 여사는 박 열사 사진 앞에 직접 만든 꽃다발을 놓고 눈시울을 붉혔다.


민주화 억압의 상징이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오는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과 민주 인사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그 전날 고 이한열 열사의 33주기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를 만났다. 민 청장은 "죄스러움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지난날 과오를 참회한다. 늦게나마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6월 항쟁 33주년을 맞은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사진=연합뉴스)
◇참혹한 삶 이어온 피해자, 특진하며 승승장구한 수사관

대통령과 경찰 수장이 뒤늦게나마 공식 석상에서 국가권력의 참상에 대해 고백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말뿐인 사과'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그 시절 '독재와 폭력'의 결과들은 오늘날에도 도처에 흩어져 숨쉬고 있다. 수많은 '조작' 간첩 피해자들은 여전히 누명을 벗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억울함을 풀지도 못하고 이미 숨을 거둔 이들도 적지 않다.

반대로 당시 '애국'과 '충성'이란 이름으로 불법 구금과 고문을 자행했던 이들은 특진(특별승진)과 훈장 수상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사진=자료사진)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간첩 검거 공로로 순경에서 경감까지 총 4번이나 특진했다. 그의 손에 의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둔갑해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했다. 과거사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와 법원의 재심으로 이근안이 잡아들인 간첩 상당수가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그의 특진은 취소되지 않았다.

◇공안 경찰 받던 청룡봉사상, 수상자 명단조차 없는 현실

이근안 외에 다른 많은 공안 경찰이 간첩 검거 공로로 특진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표적인 공안 경찰들의 '특진 코스'가 청룡봉사상이다.

청룡봉사상은 지난 1967년부터 조선일보와 경찰청(옛 치안본부)이 공동 주최해 왔다. 고 김근태 의원을 고문한 이근안(1979년), 박종철 고문치사 관련자 유정방(1972년), 부림사건 가담자 송성부(1983년)를 비롯해 민주화운동가와 학생, 시민을 때려잡은 경찰들이 이 상 '충상(忠賞)'을 받아 특진했다.


제 46회 청룡봉사상 시상식 현장 (사진=자료사진)
지난해 CBS노컷뉴스 보도로 청룡봉사상의 특진 제도는 폐지됐지만, 잘못된 수상자들에 대한 조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50년 동안 누가 충상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다. 경찰청은 1967년부터 2005년까지의 충상 수상자 명단은 없다고 밝혔다. 특진이나 서훈을 취소하기 전에 누가, 왜 이 상을 받았는지 따져볼 방법조차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 경찰 조직 전체에서 특진을 취소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정부, 이제라도 무죄 사건 수사관들 파악해 특진 취소해야

북한에 납북됐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어부는 보안수사대에 체포돼 수십년간 옥살이를 했고, 평생을 '간첩 자식'으로 산 그의 아들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서울 구로구에서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는 남산분실로 끌려가 21일 동안 알몸으로 구타, 고문을 당했다. 출소 후 일용직, 노점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고문 후유증과 암을 앓다가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의 얼굴을 자세히 그릴 정도로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고(故)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가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오른쪽 건물 꽃 달린 곳)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피해자들의 눈물은 현재 진행형이다. '간첩' 낙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들의 삶을 옭아맸고, 고통은 그들뿐 아니라 주변이 함께 짊어져야 했다.

그 고통 앞에 정부가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최소한 재심 끝에 무죄로 밝혀진 사건만이라도 수사 기록을 뒤져야 한다. 이제라도 수사 관련자들이 받은 특진과 훈장을 찾아 취소하고 피해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공권력에 처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진정성을 다해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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