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월 8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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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노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대만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큽니다."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한 말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지난 4일 담화를 시작으로 연일 계속된 북한의 공격인 담화에도 직접적 대응을 삼가했던 문 대통령이 열하루만에 공개석상에서 메시지를 발표했다.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공감'의 기조가 메시지 전반에 흘렀다. 한반도 평화 기조를 지켜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절박함도 곳곳에 녹아들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직접 메시지를 던지면서 설득에 나선 점이 눈에 띈다.
◇'노력 잘 알고 있다'·'아쉬움 크다' 며 인지상정의 공감 표출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나와 김정은 위원장'을 주어로 삼으며 상호 신뢰 관계를 강조한 부분이 단연 눈에 띄었다. 문 대통령은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천 만 겨레 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두 정상이 함께 어렵게 이뤄온 성과가 한 순간에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호소한 것이다.
이어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북한과 김 위원장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먼저, 김 위원장의 과감한 행보를 치켜세운 문 대통령은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간 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크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는 사실상 협상에 손을 놓고 북한 문제를 방치해온 미국 정부를 향한 유감을 에둘러 표출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 화법'은 어떻게든 북한을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 다시 끌어오기 위한 문 대통령의 절박함이 반영됐다는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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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주인의식'으로 北 대화 설득 나서…남북 독자적 협력 필요성 강조최소한 두 정상이 이뤄놓은 '평화의 약속'을 깨서는 안된다는 대전제 하에 문 대통령은 한반도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본격적인 설득에 나섰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찾고 실천하자"는 것.
대북 제재 속에서도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제안은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부터 꾸준히 했던 말이다.
다만, 문 대통령이 올해 초만 해도 "남북간 협력이 북미 대화에 좋은 효과를 미치는 선순환적 관계를 맺게 될 것"(신년기자회견)이라고 기대했던 반면, 이번에는 북미 관계에 대한 언급 없이 '한반도 주인의식'을 내세우며 자주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스무돌을 맞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새기며 정상간 만남의 실질적 효과를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두 정상이 직접 만나 대화함으로써 비로소 실질적인 남북 협력이 시작됐다"며 남북 정상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상기했다. 꼬인 상황을 풀기 위해 정상회담을 통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 철거와 군사행동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공감' 화법으로 김 위원장을 향해 직접 설득에 나섰다. 두 정상의 신뢰관계가 어느정도 형성돼 있고, 김 위원장이 이번에 직접 대남 비난전에 나선적이 없는 것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은 다시 북으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어떤 답을 내릴지에 따라 정부 운신의 폭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