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스토리]카리브海에서 75일 표류, 英 거쳐 입국…어느 코로나 생존기

美크루즈 한인 승무원, 코로나19로 카리브해 국가들 전전하다 75일만에 귀국한 사연

※이 기사는 미국 크루즈선 승무원으로 일한 박한별(29)씨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편집자주]
미국 크루즈선 승무원으로 일하던 박한별(앞)씨가 첫 2주간의 격리를 마쳤을 때의 모습. 뒤에는 다른 외국인 동료. (사진=박한별씨 제공)

 

3월 14일 내가 작년 가을부터 승무원으로 일하던 크루즈선(셀레브리티社 이퀴녹스號)이 일주일만에 출항지인 플로리다주의 포트 로더데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카리브해와 멕시코 여행 일정을 중단하고 급거 귀항한 것이다.
수천명의 승객들이 황급히 하선했다.
하지만 1200여명에 이르는 승무원들은 하선하지 못했다.
승무원들은 일반 여객기가 아닌 별도의 전세기로 귀국시켜야 한다는 미국 CDC의 명령에 따라 전세기 편 확보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배에서 승무원들이 처음 내린 것은 4월 5일. 국적별로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 승무원 300명은 하선에 가장 먼저 성공했다.
숫자가 적은 국적의 승무원들은 별도로 대기해야했다.
특히 한국 국적의 승무원들은 나를 포함해 2명 뿐이었다.
곧 귀국용 항공기 티켓이 곧 나올 거라고 했지만 다음 날 발급된 것은 항공편 1장 뿐이었다.
2주 격리당시 에퀴녹스호에서 나왔던 점심과 박한별씨의 방 풍경. (사진=박한별씨 제공)

 

이제 나만 홀로 남게 됐다.
회사 임원에게 따졌지만 돌아온 답은 마이애미 본사에서 내려온 결정이라는 말 뿐이었다.
남은 승무원들은 4월 8일부터 2주 간의 격리에 들어갔다.
다행히 승무원들 가운데서도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4월 23일 모두 격리해제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하선은 허가되지 않았다.
배는 다시 바하마 근처 해상으로 이동했다.
10여 척의 크루즈호가 집결해 있었다.
바하마 근처 해상에 떠있는 크루즈선들. (사진=박한별씨 제공)

 

그곳에서 다른 크루즈호로 갈아타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승무원들을 국적별로 분류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아놓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셀레브리티사(社)의 다른 크루즈선인 엣지호(號)로 환승한 것이 5월 6일.
하지만 하선 계획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2주가 다시 흘렀다.
그 사이에 별의별 계획이 나왔지만 얼마 뒤 곧바로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한 가지는 영국으로 이동한 뒤 그 곳에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때 유력하게 나온 시나리오가 베네주엘라 앞바다의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로 간 다음 그 곳에서 전세기를 타고 영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5월 19일 또 다른 배(Freedom of Sea)로 갈아탔다.
타보니 14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이퀴녹스호에서 한국인 동료를 마지막으로 보낸 뒤 44일만에 처음 한국 사람들을 만나니 그나마 안도가 됐다.
그렇게 해서 5월 22일 드디어 바베이도스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바베이도스에서 전세기 항공기 대신 크루즈를 타고 영국으로 이동해야한다는 막막한 이야기도 나왔다.
서울에서 시드니까지의 거리를 배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는 말에 모두들 허탈해했다.
바로 다음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좋은 소식은 다행스럽게 배편 대신 항공편이 나왔다는 것, 나쁜 소식은 한국인 15명 가운데 12명만 그 항공기에 올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12명은 5월 24일 결국 영국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나를 포함해 3명이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 앞에 놓였다.
그런데 머지않아 3장의 항공기 티켓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5월 28일 드디어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한별씨가 두달 반 동안의 '표류'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올라탔던 영국행 항공기.(사진=박한별씨 제공)

 

영국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인 5월 29일이었다. 우리는 이날 오후 1시 45분 카타르의 도하행 비행기에 오르게 돼 있었다. 도하를 거쳐 인천에 가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도하행 비행편에 결함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공항 인근 호텔로 이동했다.
다음날 5월 30일 불행중 다행히도 대한항공 직항편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5월 31일 꿈에도 그리던 한국 땅을 밟게 됐다. 3월 14일 하선 금지령이 내려진 뒤 75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금은 서울 집에서 자가 격리중이다.
75일간의 표류기간을 되돌아보니 고마운 사람들도 어른거린다.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아틀란타 총영사관 강형철 영사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퀴녹스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2주간 격리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나의 존재를 파악하고 먼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강 영사님이다.
배 안에서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 무수한 뜬소문들이 난무할 때마다 그 나마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안심 시켜준 분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크루즈선박에 승선해 있던 나 같은 한국인 승무원 20여명도 모두 무사히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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