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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이한열 어머니 훈장 수여, 늦었지만 좋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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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6월 9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연자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정관용> 내일이면 6.10 항쟁 33년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87년 6월 9일 바로 오늘 당시 연세대 2학년 이한열 학생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날이죠. 그 사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이야기 좀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우상호> 안녕하세요.

◇ 정관용> 그 당시에 연세대 학생회장이었죠?

◆ 우상호> 그렇습니다.

◇ 정관용> 6월 9일날 어떤 집회가 있었어요?

◆ 우상호> 6월 10일날 민정당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었는데요.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고 하던 전두환 정권이 그 약속을 어기고 당시 민정당 대표이던 노태우 씨에게 대통령 후보직을 지명하는 그런 행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이것을 막기 위해서 총궐기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 정관용> 6.10 국민대 이런 거였죠?

◆ 우상호> 그렇죠. 6.10 총궐기. 그리고 6월 9일날은 그 다음 날 있을 거리시위를 홍보하기 위한 학내 집회가 있었죠. 그래서 연세대학교 학생들한테 내일 6월 10일날 시청 앞에 모여서 항의하자 이런 내용의 소위 말하는 결의대회를 하는 그런 날이었고 그 결의대회를 마치고 교문으로 행진하고 나서 교문 앞에서 그 당시 경찰들과 격돌을 하면서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피격된 그런 상황이 발생했죠.

◇ 정관용> 그게 몇 시쯤이었죠?

◆ 우상호> 그게 오후 한 4시 반에서 5시 사이였습니다.

◇ 정관용> 우상호 의원은 그 당시에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서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갔다는 그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들으시게 됐어요?

◆ 우상호>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보통 그런 집회를 하면 보통 전경이 던진 돌 이런 것들에 맞아서 학생들이 한 10명 정도씩 늘 병원을 갔어요. 그래서 그때도 한 대여섯 명 병원에 갔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이제 총학생회실에 가서 다음 날 있을 시청 앞 집회 계획을 짜고 점검하고 있는데 누가 학생이 한 명 막 뛰어들어오더니 회장님 지금 병원 응급실 가봐야겠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학생 1명이 굉장히 중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 놀라서 급히 달려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응급실 의사선생님이죠. 상당히 위중하니까 부모님을 부르셔야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때 아주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처럼 이거 어떻게 해야, 부모님한테 어떻게 연락하나. 그렇게 암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 정관용> 최루탄을 거의 직사로 맞았죠?

◆ 우상호> 그때 그날은 사실 그 다음 날이 진짜 중요한 날이어서 아무런 장비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평화적으로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바로 최루탄을 쏘고 직격탄을 쏴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도망다니고. 최루탄이 워낙 뿌얘서요, 연기가. 그 와중에 이한열 군이 그렇게 쓰러졌을 거라는 걸 우리가 몰랐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학생들이 얼른 일으켜세워서 업고서 병원으로 갔는데 사실은 집회 중간에는 그런 일이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 정관용> 직사로 쏜 최루탄에 맞고 피를 흘리다가 병원 응급실에 갔고 응급실 의사로부터 위중하다, 부모께 연락해라. 그 연락을 누가 어떻게 했어요?

◆ 우상호> 그건 그 동아리 친구한테, 이한열 군의 동아리 친구한테 연락처 아냐 하니까 모른다고 해서 그러면 경영학과 사무실을 가서 거기 인적사항을 좀 알려달라고 해서 집전화로 전화를 해라 그래서 동아리 친구가 전화를 한 거죠. 그래서 그날 밤에 한 11시 다 돼서 고속버스 타고 올라오신 거예요. 그래서 황급히 응급실에 뛰어갔는데 차마 따라들어갈 수가 없어서 밖에 서 있었죠.

◇ 정관용> 그때 그러니까 어머님, 아버님 다 오셨어요? 어떻게...

◆ 우상호> 일단 어머니하고 언니, 누나, 누나하고. 아버님은 직장생활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올라오지 못하시고 첫날은 어머니하고 누나들이 왔습니다.

◇ 정관용> 응급실에서 그 다음에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었어요, 어떻게 됐어요?

◆ 우상호> 아니요,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 정관용> 중환자실로.

◆ 우상호> 그래서 어머님이 올라오실 때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상황이었고요. 산소호흡기 끼고 온갖 장비를 꼈는데 이미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사실상은 뇌사판정을 의사들끼리는 아마 뇌사 상태다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저희들은 소생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믿고 계속 기도하고 이한열 군을 지키고 그렇게 있었죠.

◇ 정관용> 공식사망 판정이 어떻게 됐죠?

◆ 우상호> 그렇게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6. 29선언 나고 나서 7월 5일날 새벽 2시에 숨을 거뒀습니다.

◇ 정관용> 그러나 이미 6월 9일 그날 밤부터 소생 가능성은 없다, 의사들은 그렇게 판단을 했다.

◆ 우상호>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기적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밤마다 학생들 수백 명이 병실을 지키면서 울면서 기도 많이 했죠. 그런데 참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돌아오던데 이한열 군은 참 불행하게 그렇게 인생을 마감한 것 같습니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서 열린 '고(故)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 에서 '한열이를 살려내라' 란 문구가 적힌 조형물이 공개되고 있다. 황진환기자

 


◇ 정관용> 국내 언론에는 제대로 보도도 그 다음 날 안 됐었죠?

◆ 우상호> 아니요, 다음 날 신문에 이한열 군 사진하고 아주 간단한 기사예요. 그러니까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 군 시위 과정에서 중태.

◇ 정관용> 중태.

◆ 우상호> 이렇게 딱 한 2줄 그 정도 사실 보도만 했고요.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됐는지 이런 것들은 전혀 보도가 안 됐죠. 그건 보도가 통제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냥 일종의 사진 보도. 기사는 거의 없고.

◆ 우상호> 그렇죠. 과정이나 이런 것 없이 집회시위 과정에서 연세대학교 2학년 학생이 중퇴에 빠졌다 이렇게만 딱 3줄 정도 되는 기사가 나왔었죠.

◇ 정관용> 그리고 그 다음 날 시청 앞 전국민대회는 연세대 학생들이 더 많이 함께 동참했을 것 같아요.

◆ 우상호> 그렇죠. 아무래도 그 사실이 알려지고 다음 날 오후 6시에 거리집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낮시간 동안에 그날 밤부터 빠르게 전 학교로 전파가 돼서 출정식 때는 굉장히 많은 한 2~30명 학생들이 모였는데 너무 걱정들, 괜찮다냐, 어떻냐 이런 얘기들 나누면서 웅성웅성하는 분위기였죠.

◇ 정관용> 그렇죠. 민갑룡 경찰청장이 배은심 여사, 이한열 군 어머님 찾아뵙고 현직 경찰청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너무 늦었다, 참회한다 사죄했어요, 오늘. 그렇죠?

◆ 우상호> 오늘 2시 추도식에 저도 갔는데 저는 오시는 줄 모르고 갔는데 앉아계시길래 여기 어떻게 오셨냐고 내가 인사를 했는데 어머님한테 사과, 사죄를 드렸는데 어머니는 사실 마음이 아직 안 열리셔서 민갑룡 청장 개인에 대한 게 아니라 아들 사망하게 만든 경찰이 제대로 그때 진상조사 안 하고 책임자 처벌도 안 한 것에 대한 아픔이 아직도 남아계셔서 그렇게 인사를 썩 유쾌하게 받아주시지는 않으셨는데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경찰청장이 그 자리에 그렇게 와주신 게 그나마 또 감사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나저나 오늘 말씀하신 2시 추모제가 바로 지난해부터 연세대학교 공식행사로 치러졌다면서요?

◆ 우상호> 그게 참 감사한 일인데요. 그동안은 이한열 기념상 앞에 연세민주동문회 총학생회, 상대학생회 이렇게 주로 단체끼리 연합을 해서 그냥 했었죠. 그런데 작년에 정식으로 연세대학교 안에 이한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정식으로 만들어주시고 작년에는 총장님도 직접 참석하셨고요. 올해 이어서 연속으로 연세대학교의 공식행사로 그렇게 개최가 돼서 참 감회가 무량했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지난해 이전에는 누가 주최하는 추모식을 계속해 왔던 겁니까?

◆ 우상호> 그러니까 이한열 추모사업회 하고 연세민주동문회 그리고 학생단체들이 연합을 해서 그냥 우리끼리 앰프 갖다놓고 우리끼리 축가 부르고 그냥 조촐하게 했죠 그런데 공식 학교행사는 아니니까 학교 관계자는 거의 안 오시고.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우리 이한열 그 다음에 박종철, 전태일 열사 이런 부모들께 훈장 수여를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우상호> 저는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 자녀들은 어떻게 보면 짧게는 1~2년, 길게는 2~3년 사회운동을 한 분들인데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식을 묻고 30년, 40년을 소위 말하면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분들의 운동. 그러니까 자녀들의 아버지,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이분들이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가 표창을 해 주신다 그러면 정말 저는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어찌 보면 너무 늦었어요. 그렇죠?

◆ 우상호> 그렇죠. 그런데 또 이 부모들은 본인들이 상을 타는 것보다는.

◇ 정관용> 그런 거 바라지는 않으시죠, 사실.

◆ 우상호> 그때 희생된 자들을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 하는 법률제정을 더 강하게 원하셔요. 그래서 살아계시면서도 여전히 아들, 딸들의 명예회복을 더 존중하시는 분들이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렇게...

◇ 정관용> 해야죠.

◆ 우상호> 국가 포상을 하면 저는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오늘 여기까지 고맙습니다.

◆ 우상호> 감사합니다.

◇ 정관용>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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