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부산시청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는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 직후 터진 오거돈 부산시장의 강제추행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총선 압승 기세를 몰아 일하는 국회법과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한 추경, 계류된 각종 민생 법안을 처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려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격인 데다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 등 젠더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처리하기가 민망해진 상황이다.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필두로 당내 인사들에 대한 미투 고발이 거듭되면서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입게 됐다.
◇오거돈 제명 논의 연기…은폐 의혹도 여전
민주당은 사건이 터지자 당일 윤호중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수습에 나서는 등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오 시장의 사퇴 시점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오 시장이 총선 후 물러나겠다는 공증을 받는 등 사퇴 시기를 피해자와 협상해 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어떻게 민주당이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오 시장이 사직서를 부산시의회에 제출하면서 상의 과정에서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이 강제추행 사태를 당일 인지하게 됐고,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이 그 직후 전해듣고 윤호중 사무총장을 찾아가면서 중앙당 지도부가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이 지난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퇴 파문과 관련 당의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사진=윤창원 기자)
윤 총장도 이날 오 시장 성추행 사실을 선거 전에 알지 못한 게 확실하냐는 질문에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에선 공권력을 동원해 은폐하고 민주당이 이를 묵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통합당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회의에 참석해 "오 전 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 해놓고 주변 사람을 동원해 회유한 것도 모자라 사퇴 시점을 총선 이후로 미뤄달라고 공증까지 받았다고 한다"며 "피해자의 신고를 받았던 부산 성폭력상담소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총선 이후 (오 전 시장의) 사퇴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데다 당초 이날 열기로 한 윤리심판원 회의가 연기된 것도 비판을 가중시키고 있다.
윤 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리심판원 소집이 27일로 옮겨진 이유에 대해 "윤리심판원 위원들의 소집과 관련해 성원이 잘 되지 않아 월요일로 옮겼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초 이날 윤리심판원을 소집해 오 시장의 제명 논의에 착수할 방침이었다.
◇오거돈 사태는 민주당의 오래된 미래…TF로 조직 문화 바꿀 수 있을까당내에선 '오거돈 사태'를 두고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과 정봉주 전 의원의 대학생 성추행 사건 이후 총선 과정에서도 민병두 의원과 영입인재였던 원종건씨에 대한 미투 고발, 김남국·홍성국·양기대 당선인의 성희롱 발언 논란까지 연이어 불거진 데엔 민주당 내 성인지 감수성이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민주당 남인순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민주당은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동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과를 반복해 왔다"라며 "사과라고 하는 건 재발방지가 이뤄졌을 때 진정한 사과"라고 지적했다.
남 최고위원의 이같은 지적은 여성 비하 방송으로 논란이 일었던 김남국 당선자나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홍성국 당선인의 과거 성희롱 발언에 대해 "출연 횟수가 적었다", "실수였다"는 등 설득력 없는 해명으로 사안을 축소시켰던 민주당의 행태와 맞닿아있다.
이에 민주당에선 젠더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방침이다.
한 재선의원은 "TF에서 교육계획을 세운 뒤 선출직 공직자, 지역위원장, 당직자 등 다 포함해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실효적인 예방교육을 우선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주요 당직에 여성 의원 30%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방안도 제안된 상태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 부의장이나 사무총장도 여성에서 나와야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여성 3·4선 의원들이 많아지긴 했는데 솔직히 핵심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