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에 판치는 디지털성범죄…개인사진 유출에 성적 모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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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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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이후에도 여전…해외 SNS라 수사도 쉽지 않아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이 성적인 목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여성들의 일상이 망가지는 일인데, 'n번방'만큼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3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10일 자신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텀블러'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자신의 SNS에 올린 적도 없고 클라우드에만 저장해 둔 사진들이었다. 아이디를 도용당했는지, 계정이 해킹됐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었다.

게시물에는 A씨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뿐 아니라 얼굴이 보이지 않는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도 있었다. A씨의 운전면허증 사진까지 공개됐다. 사진 아래에는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모욕적인 거짓 정보가 적혔다. 지난해 11월 올라온 이 게시물은 공유된 횟수만 500회 이상이었다.

A씨는 "범인을 잡자는 생각으로 텀블러를 뒤져보기 시작했는데, 미성년자를 포함해 수많은 평범한 여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며 "최근 n번방으로 사회가 온통 난리 났는데 텀블러에선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6일 구글 사이트에서 간단한 성인인증을 하고 '몰카' 등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텀블러에는 불법촬영물이나 허위정보가 담긴 성적 모욕글 등 디지털 성범죄 게시물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영상, '지인 제보'라며 주변 지인의 일상 사진을 허위 정보와 함께 올린 게시물, 이들의 사진을 성적인 목적으로 합성한 '지인 능욕' 사진 등 디지털 성범죄물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텀블러는 2018년 음란물 규제 미비로 애플 앱스토어에서 한 차례 삭제된 전력이 있다. 이후 자체적으로 음란물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과 사진이 유통되는 주요 매체 중 하나다.

A씨는 텀블러 게시물을 확인하고 곧장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그러나 경찰은 약 2주 후 "수사 진척이 어려워 종결해야 할 것 같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범인을 검거하려면 가입자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이 필요한데, 단순 모욕 사건에서는 텀블러 측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사진들이 국내 모 포털사이트 클라우드에서 빠져나간 것 같다고 경찰에 설명했지만, 로그인 기록 보존 기간이 90일뿐이라 이전에 발생한 아이디 도용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취재를 위해 문의하자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마친다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은 수사 협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피해자에게 설명한 것"이라며 "피해자의 심리적 피해가 큰 점을 고려해 국제 사법공조를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고소 이후 A씨가 처음 발견한 게시물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구글 등에서는 일부가 검색되고 있다. A씨는 사건 이후 대인기피증과 유사한 증상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뒀다. 그는 텀블러의 수사 협조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렸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해외 SNS 사업자들은 한국을 상대로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도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며 "온라인 공간에선 국경이 없는 만큼, SNS 기업들은 자신들이 사업을 하는 국가에 법적·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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