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의원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현대판 음서제'로 규정하고, 제도 폐지와 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안 전 의원은 13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부모의 사회경제적 부와 지위가 불공정 입학으로 이어지고, 다시 그것이 자녀들의 경제사회적 부와 지위로 이어지는 불공정한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현대판 음서제 (로스쿨을) 폐지하고 사법시험을 부활하겠다"고 말했다.
2009년 도입된 로스쿨 제도는 1963년 시작돼 2017년 폐지된 사법시험을 대체한 국내 유일의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다. 법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학생선발 과정이 불투명하고 고액 등록금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안 전 의원의 '로스쿨 폐지·사법시험 부활' 주장을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로스쿨 자체는 나쁘지 않은 제도인데 우리 사회가 워낙 불공정하니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거나 "안 위원장이 모처럼 좋은 정책을 제안했다. 로스쿨을 되돌리는 것은 힘들겠지만 찬성한다"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반면 "로스쿨이 법률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쁘진 않다. 변호사 문턱이 훨씬 낮아진다"라거나 "로스쿨도 특별전형이나 장학금 지원 등 장점이 많다. 10년이 넘은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제안"이라는 등의 지적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로스쿨 제도는 안 전 의원의 주장처럼 공직 세습제도인 '음서제'로 불릴 만큼 부당한 입학 사례가 빈번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불공정한 제도일까?
사법시험은 좀 더 '흙수저'에 친화적이고, 로스쿨은 '금수저'에 친화적이라는게 사회 통념이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우선 '진입 장벽'과 관련, 연합뉴스가 전국 25개 로스쿨의 '2020학년도 입학전형'을 전수조사한 결과 신입생 선발에서 자의적인 결정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로스쿨들은 법학 수학능력과 법조인의 기본적 자질 및 적성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 성적과 대학성적, 어학성적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특히 '로스쿨 수능시험'으로도 불리는 LEET 점수가 선발과정에 가장 높은 비중으로 활용된다. 로스쿨 대부분이 1/3 이상의 비중을 두고 있었고, 제주대 로스쿨의 경우 LEET 점수가 총점 60점 중 35점을 차지했다. 국가가 공인한 시험의 성적이 로스쿨 당락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LEET 점수와 대학성적, 어학성적 등 객관적 평가지표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 주관적 평가지표 등도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활용되지만 '부당한 개입'이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모든 로스쿨이 선발 과정에 교수 전원을 관여시킴으로써 교수들 간에 상호 견제를 할 수 있게 했고, 응시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 형식을 채택했다.
김명기 로스쿨협의회 사무국장은 1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응시자가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자신의 신원을 알리는 어떠한 표현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어길 경우 패널티(벌칙)가 부여된다"며 "2009년 로스쿨 개원 후 단 한 차례도 부당 입학으로 문제가 된 사건이 없었던 것도 철저한 선발 과정 관리·감독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입학 특혜를 주는 제도도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2학년도부터 실시된 특별전형제도로 국가유공자와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농어촌 출신,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을 꾸준히 선발하고 있다. 특별전형 선발 비중은 2012년 6.41%를 시작으로 매년 6% 이상을 유지했고, 지난해에는 전체 선발인원 중 7.49%(160명)를 특별전형으로 선발했다.
사법시험 출신(제34회에 합격)으로서 로스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로스쿨 신입생은 블라인드 형식의 선발 과정을 거쳐 공정하게 선발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도 이른바 '명문대' 출신들의 로스쿨 입학 비율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보완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소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불리는 대학 출신들로 신입생이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좀 더 다양한 대학 출신 신입생이 선발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싼 등록금으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로스쿨 입학 및 수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많지만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로스쿨이 사법시험에 비해 고비용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2014년 천도정 전북대 경영학과 교수와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연구팀이 로스쿨이 사법시험에 비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데 2.5년 더 걸리고, 비용도 1억7천여만원 더 소요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결과는 로스쿨이 이른바 '돈스쿨'이라는 오명을 얻는데 기여했다.
연구팀의 논문 '법조인 선발 제도별 법조계 진입유인 실증분석'에 따르면 저자들은 로스쿨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데 평균 12.5년의 기간과 3억5천692만원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사법시험은 약 10년의 기간과 1억8천474만원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 사법시험과 달리 로스쿨은 교육과정을 거친 뒤 다시 변호사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점, 2년 과정인 사법연수원에 비해 로스쿨은 3년 과정이라는 점 등이 반영됐다.
또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기회비용도 로스쿨은 8.5년 동안 1억8천792만원으로 산정한 반면, 사법시험은 사법연수원 교육기간 등을 뺀 4년 만을 반영해 8천735만원으로 산정했다. 기회비용 만으로 1억원의 비용 차이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2년 뒤인 2016년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차이는 크지 않지만 사법시험이 로스쿨보다 기간과 비용이 조금 더 드는 제도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김 교수의 연구자료인 '천도정·황인태의 법조인 선발제도별 소요비용 추계 비판'에 따르면 저자는 로스쿨의 경우 변호사 자격 취득까지 평균 9.6년의 기간과 2억7천9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고, 사법시험은 10년과 2억9천670만원이 쓰이는 것으로 추산했다.
천도정·황인태 교수 연구팀이 3.9년으로 책정한 로스쿨 입학 준비기간을 김 교수는 1년이라고 봤다. 천·황 연구팀은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 입학하기까지 기간을 로스쿨 입학 준비기간이라고 본 반면, 김 교수는 수험생들이 평균적으로 LEET를 준비하는 기간인 1년을 로스쿨 입학 준비기간으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김 교수는 로스쿨의 기회비용을 5.6년 동안 1억2천300만원이라고 산정했고, 사법시험은 오히려 사법연수원 교육기간 등을 추가해 6.8년 동안 1억4천902만의 기회비용이 발생한다고 산정했다.
또 천·황 연구팀이 비용 소요가 없다고 본 사법연수원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2년 동안의 로스쿨 학비인 3천207만원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봤다. 정부가 연수비용을 대신 부담할 뿐 소요되는 비용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납세자들이 대신 부담하는 몫으로서 합산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로스쿨 측은 높은 학비 부담에 대해, 장학금제도와 특별전형제도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진입장벽을 낮춘 측면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스쿨협의회에 따르면 2018학년도 로스쿨 재학생 1만2천117명 중 6천975명(57.6%)이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총 등록금 851억원 중 295억원(34.7%)이 장학금으로 충당돼 단순히 장학금을 받은 학생 수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또 장학금 중 225억원(76.3%)은 경제적 취약자에게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에는 기초생활수급자부터 소득 3분위까지의 학생 1천40명에게 등록금 전액이 장학금으로 지원됐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단체인 한국법조인협회의 김정욱 전 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로스쿨에 입학하면 장학금과 함께 저리의 학자금 대출과 2천만원 한도의 생활비 대출도 가능하다"면서 "로스쿨 교육과정에 맞춰 변호사시험을 준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법시험 준비생보다 훨씬 안정적인 상황에서 시험 준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반론에 대해 안철수 전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김철근 공보단장은 "로스쿨과 관련해 불공정 사례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제도 자체가 엘리트 특권층에 유리한 구도"라며 안 전 의원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국장은 "본인의 노력으로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