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번째 인재인 이경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부총장(오른쪽 두번째)과 20번째 인재인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오른쪽)가 배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1차 인재영입이 끝난 가운데 이들의 거취를 두고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영입 인사들은 대부분 정치 신인이라는 점에서 지역구 보다는 비례대표를 염두에 두고 입당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난해 패스트트랙으로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서 민주당 몫의 비례대표 당선권은 6~7번으로 대폭 줄어든 데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선 비례대표에 대한 전략공천을 금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 하위20% 물갈이·비례 전략공천도 난망…험지 뛰나
비례대표 11번까지 당선됐던 20대 총선에 비해 이번엔 당 대표의 인재영입 활용 범위가 매우 좁아졌다.
민주당의 경우, 비례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신청한 후보들을 살펴본 뒤 이들을 국민배심원단에 넘긴다. 국민배심원단에서는 비례대표 후보를 2배수까지 선정해 중앙위원회에 올리고, 중앙위에서 비례 순번을 정한다.
조직력이 없는 영입인사들이 중앙위원회에서 높은 번호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이 나온다. 당에서 영입 당시 인사들에게 "지역구에 나가야 될 수도 있다"고 언질을 준 것도 이 때문이다.
소외계층(여성·청년·장애인), 외교·안보·경제 전문가, 당직자 등을 당선권에 배치하도록 한 게 당규인 만큼 여성이면서 장애인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당선권에 배치될 확률이 높지만 다른 후보들에겐 기회의 문이 많이 닫힌 상황이다.
당 지도부가 예상했던 자연스러운 물갈이도 난항을 겪고 있다.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20%에 든 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탓에 지역구 전략공천도 어려워진 것이다.
공천관리위원회 재량으로 면접 등을 통해 하위 20% 의원들에게 이중 감점을 준 뒤 해당 지역에 영입인사를 보내 경쟁시키더라도 생환 여부는 불투명하다.
당 지도부의 판 짜기가 이처럼 꼬인 상황에서 영입인사에게 명확한 언질을 주지 않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특정 지역구가 언급되고 있는 소병철 순천대 석좌교수나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등과 달리 대다수 영입인사들은 자신의 거취를 거의 모르고 있다.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3명만 전략공천으로 돌리고 나머지 영입 인재들은 지역구로 보낼 것"이라며 "영입인재들 중 절반 이상은 이미 지역구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최근 민주당 핵심 관계자가 몇몇 영입 인재들을 만나 출마 지역구를 타진하고 있다.
조동인 미텔슈탄트 대표는 경북 구미에,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최지은 박사의 부산 북구강서을을 제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고지를 감안한 제안이지만, 조직력이 전혀 없는 이들이 지역구에 나가 원내에 입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경북 구미시갑엔 이미 4명의 예비후보가 공천신청을 했고, 구미시을은 김현권 의원이 재선에 도전한다. 부산 북구강서구을에도 예비후보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다.
김성환 당 대표 비서실장도 지난 7일 입당식 뒤 기자들에게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오늘 입당 환영식에 참석한 김두관 의원과 가까운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라고 했다. 또 홍성국 전 미레에셋 사장에 대해서는 "수도권이 될 수도 있고, 태어난 곳인 충남 연기군(세종)이 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연고지가 마땅찮을 경우 재공모에 들어간 단수공천 지역구나 하위 20%에 든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에 가 경선을 치를 수도 있다. 다만 애초에 다른 예비후보들이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현역의원의 입지가 탄탄한 지역구에 가 이기는 건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해찬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영입인재를 찍기 때문에 무조건 불리하지 않다"며 "지역위원장보다 영입인재 인지도가 더 높은 경우 많다. 조직표도 한계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최대한 당사자들의 희망사항을 받아들여서 지역구를 조정해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19.20호 영입인재 환영식을 마친 뒤 영입인재 1호인 최혜영교수부터 20호인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까지인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4년 전 '더벤저스'…낙선 뒤 정부·공공기관으로
2016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어벤저스(더벤저스)'로 불렸던 영입인재 20명은 지역구에서 6명, 비례로 4명이 원내 입성했다.
이중 낙선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와 오기형 변호사는 당직을 맡았고 김빈 디자이너는 청와대에서 디지털소통센터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입인사들을 구제할 가능성이 크다.
다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은 "전문영역이 있는 분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직 출신이 아닌 분들은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하게 해 준다. 그게 여당의 힘"이라며 "자기 생업을 하면서 공적인 일에 참여하면 되지, 영입된 인재라고 다 국회의원을 해야 하느냐"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이같은 방안에 대해 영입인사들은 다소 불만스러운 눈치다. 또 영입인재 중 생계를 비교적 쉽게 이어갈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직장을 관두고 올 수밖에 없던 경우엔 막막한 상황이다.
당 지도부도 이를 인식한 듯 최근 영입인사들과의 오찬에서 박주민 의원이 "마지막까지 지역구를 정하지 못하고 옮겨 다녔다"며 달래는 듯한 모습도 연출됐다고 한다.
한 영입인사는 "비례대표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오긴 했지만,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보다도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불안해진다"며 "정부기관에서 일하느니 다시 원래 하던 일을 하는 편이 더 보람 있을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