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된 현직 판사들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 연이어 나온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오는 13일 영장내용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 등으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린다. 곧바로 다음날(14일)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가 청와대의 입장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으로 기소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판단을 내놓는다.
이들은 지난해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이 기소된 뒤 같은해 3월 5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등과 추가 기소됐다.
앞서 지난달 13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사법농단 1호 선고'로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유 전 연구관은 변호사로 현직 법관 신분이 아니었고 개인비위 성격이 짙단 점에서 사뭇 무게감이 다르다.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지난 2016년 4월 소위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자 법관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영장내용 등을 유출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 등을 받았다. 사건 당시 신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조 부장판사와 성 부장판사는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이 김수천 부장판사 등 전·현직 법관의 비리사건으로 비화하자 양 전 대법원장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에 나섰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신 부장판사에게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보고해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신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성 부장판사와 조 부장판사에게 전달했고 이들은 뇌물 관련수사를 받던 김 부장판사의 영장청구 내용 등 10여 차례에 걸쳐 수사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결심공판에서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더 이상 재판이 사법행정권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못하게 하고 헌법상 재판의 독립을 더 굳건히 확립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신 부장판사에 대해 징역 2년, 조·성 부장판사에게 각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이들은 재판이 시작될 무렵부터 줄곧 '통상적 사법행정절차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신 부장판사는 결심 당시 최후변론에서 "제가 법관 비위사항을 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재판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함으로 사법행정 담당자로서 직무상 마땅히 해야 할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법행정 활동"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성 부장판사 역시 "당시 법관 비위가 문제돼 사법신뢰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었고 다수의 현직 법관의 비위 의혹이 사실확인 없이 경쟁적으로 보도되는 상황이라 이에 대한 법원의 대처를 위해 당연히 보고가 필요한 것으로 인식했다"며 "저를 비롯한 영장전담 판사들은 그것이 범죄가 된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영장내용 보고에 대한 사실관계를 일부 인정하는 만큼 관건은 이같은 보고가 '적법한' 것인지를 재판부가 판단하는 법리적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임 전 차장의 '공모자'로 적시된 만큼 이번 선고는 추후 임 전 차장의 양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편 임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지난 2015년 '세월호 참사' 당일 미궁에 빠진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보도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청와대의 입장을 반영토록 하는 등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았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체포치상 등 사건에 대해 양형이유를 변경케 한 혐의, 야구선수 임창용·오승환씨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하지 말고 약식명령 처리하라고 지시한 혐의 등도 있다.
임 부장판사의 혐의는 지난달 대법원이 '블랙리스트' 사건을 놓고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엄격히 심리해야 한다며 파기환송한 판례와 맞물려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당시 대법원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하급자들의 정황 보고 등이 본연의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임 부장판사 측은 "적어도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며 혐의내용이 임 부장판사의 직무권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법리상 무죄라는 주장을 펴왔다.
재판부 또한 "재판부가 가장 궁금하고 마지막까지 고심하고 있는 부분이 일반적 직무권한"이라고 밝힌 바 있어 임 부장판사가 본래 자신의 직무권한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유·무죄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임 부장판사의 혐의는 사법농단의 '몸통'이라 불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와도 맞닿아있어 해당 선고결과는 이후 관련 판결 방향을 가늠할 척도가 될 수도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에서 "사법부의 정책적 목적 달성을 위해 법원행정처 고위간부와 공모하거나 단독으로 사법행정권을 위법하게 남용해 법관의 독립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며 임 부장판사에 대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