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보건당국이 세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 방역망의 '1차 마지노선'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국제 공조체계를 토대로 중국 후베이성을 정조준했던 검역 체계에 예상하지 못했던 허점이 노출되면서 해법 마련이 시급해보인다.
◇'先 해외 유입 차단-後 국내 확산 통제' 보건당국의 신종 코로나 마지노선그동안 보건 당국은 신종 코로나 국면에 대응해 크게 2개의 축을 중심으로 '방역 마지노선'을 세웠다.
대외적으로는 신종 코로나가 집중 발생하는 중국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감염자의 추가 유입을 막고, 이를 토대로 대내적으로는 확진자 및 접촉자를 통제해 국내 추가 확산을 막는 구상이다.
중국 등 해외에서 감염자가 계속 유입된다면 국내에서 아무리 방역체계를 촘촘하게 세워도 '밑 빠진 독의 물 붓기'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일 정부가 14일 이내에 중국 후베이성을 경유한 외국인은 전면 입국금지하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방문하지 않아 방치된 16번 환자…일본 이어 태국도 사각지대?
하지만 이미 지난 1일 12번 환자가 일본에서 유입되면서 검역체계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중국인 남성인 12번 환자는 일본에서 감염자와 접촉한 사실을 모른 채 한국에 입국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국적을 기준으로 중국에만 접촉 사실을 통보했고, 한국에는 알리지 않았다.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증상 없이 입국한 12번 환자는 검역 체계의 틈새로 빠져나갔고, 2주 가까이 방역망 밖에 방치됐다.
중국 후베이성 방문 외국인 입국제한 조치가 시행된 4일 마스크를 쓴 관광객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16번 환자의 경우 지난달 19일 태국에서 귀국해 25일 처음 증상이 발현됐다.
하지만 중국 방문 경험이 없어 신종 코로나 의심환자로 분류되지 않아 열흘 동안 격리되지 않았다.
현재 보건당국이 일반 잠복기 7일, 최대 잠복기 14일로 설정한 점을 감안하면 태국 여행 기간에 16번 환자가 전염됐을 수 있다.
아직 16번 환자의 감염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12번 환자에 이어 중국이 아닌 국가에서 감염된 뒤 방역망 밖에 방치된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궁 속에 빠진 16번 환자 감염 미스테리…당국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조사 중"태국은 19명이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일본(20명)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감염자가 많은 나라다.
물론 2만여명을 넘어선 중국의 감염 추이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28개 감염자 발생 국가 중 비교적 감염자·접촉자 수가 많은 편이다.
다만 태국 보건 당국은 아직 16번 환자가 태국 내 감염자와 접촉했다고 알리지는 않았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아세안 국가 간에, 또 IHR(국제보건규약)에 따라 국가별 담당관 간에 수시로 정보를 교류한다"며 "태국도 접촉자가 있으면 통보를 해주는데, 오늘(4일)까지 통보 받은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태국은 신종 코로나가 발생한 중국 우한시와 가장 교류가 잦은 나라다.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과 11월 비행기를 통해 우한을 출발한 해외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은 국가는 태국(5만 5천명)으로, 일본(2만 3천명)의 2배에 가까웠다.
또 항공서비스앱 '항공반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우한에서 해외로 향한 여행객들도 태국을 가장 많이 찾았다.
특히 우한의 대중교통이 봉쇄되기 직전 시민들이 '탈출 러쉬'를 벌였던 점을 감안하면 16번 환자가 여행 도중 중국인 감염자에게 전염됐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감염되거나, 국내에서 감염자를 만나 전염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 본부장은 "여행지에서 중국 후베이성의 주민과 접촉할 가능성 등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역학조사 결과를 봐야 될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해외 감염 확인해도 뾰족한 대책 보이지 않아…"어렵지만 대책 마련 서둘러야"이처럼 정부가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비단 복잡한 16번 환자의 동선을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태국 등 해외에서 감염된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당장 동원할 뾰족한 대처 수단이 없다.
정부는 외국인 입국금지 결정을 내리면서 위험지역을 후베이성으로 한정했다.
중국과의 인적 교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한정된 행정력으로 통제하기도 어렵고, 밀입국 등 '풍선 효과'도 지적됐기 때문이다.
2만여명이 감염되고 400명 이상 숨진 중국조차 후베이성이 아닌 지역을 위험지역에 포함시키기 쉽지 않은데, 태국이나 일본까지 별도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이재갑 한림대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차라리 중국처럼 환자가 많이 발생하면 추이에 따라 지역별로 지정할 수 있지만, (확진자) 한 명 나올 때마다 해당 국가를 위험지역으로 선포할 수도 없으니 딜레마"라며 "태국이 정말 신종 코로나 유행상황인지 평가할 근거도 아직 없고, 감염경로를 아예 못 찾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에서 오는 사람을 전원 검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의사의 재량권을 강화해 역학적 연관성이 없어도 의심스러우면 검사하는 전략도 있지만, 파장과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일단 역학조사 결과가 매우 중요하고, 보완책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며 "어렵지만 늦어도 이번 주 안에는 반드시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