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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상대 직권남용' 규정한 대법, 사법농단 신경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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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문건 작성·검토 '면피' 근거 되나
檢 "사법농단은 재판권 침해가 쟁점"
조국 감찰무마 사건과는 관련 없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반인이 아닌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직권남용은 범죄 성립이 더 어렵도록 범위를 좁혔다. 대표적으로 공직자(판사)를 상대로 한 직권남용 사건인 사법농단 재판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직권 보석 결정으로 풀려난지 하루만 인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대법 "공무원 상대 직권남용죄 성립 엄격히 봐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날(3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실행을 지시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의 심리가 미진하다며 파기환송했다.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 범죄는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①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②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다.

대법원이 새로 설시한 부분은 ①번 중에서도 '공직자'에 대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한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 일반인은 공무원의 직권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공무원이 직권을 이용해 일반인에게 어떤 행위를 시키게 되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연결돼 직권남용죄 성립이 쉬워진다.

그러나 상대방 역시 공무원이거나 법령에 따라 일정한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공공기관 임직원 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기관 공직자들 사이의 협조와 의견교환은 법률상 근거를 두고 폭넓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무가 없는 일을 한 것인지의 여부는 그 공무원이나 공적 기관의 관계 법령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새 결론이다.

대법원은 "법령이나 다른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기준·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의 '법리 검토' 문건 작성, 면죄부 받나

가장 주목받았던 '직무권한의 범위'에 대한 판단은 제쳐두고 '공직자 상대 직권남용'만 구체화되면서 대법원이 사법농단 재판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청와대가 관심을 두고 있는 재판들에 대해 특정 방향으로 결론을 유도하는 듯한 '법리 검토' 문건을 재판연구관들에게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판에 나온 재판연구관 일부는 "결론을 열어두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종합했다"거나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의 의견도 듣고 자체적으로 판단·검토한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재판개입 목적의 행위가 아니라 본래 자신의 업무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커진다. 행정처의 지시가 위법했더라도 재판연구관들이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재판연구관들은 그저 본업을 한 것이어서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증인으로 나온 재판연구관 중 일부는 당시 그러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괴로웠고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며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정상적인 업무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사법농단 재판의 핵심은 재판연구관들에게 ①의무 없는 일(검토보고서 작성 등)을 하게 한 데서 그친 게 아니라 ②권리 행사 방해(재판권 침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②는 대법원이 전날(29일) 판결에서는 다루지 않은 부분이어서 ①처럼 성립 범위가 좁혀지는 등의 변화는 없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감찰무마 혐의(직권남용)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동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민기자

 

◇대법 판결, 조국 직권남용 사건과는 '무관'

한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연루된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 역시 이번 대법원 판결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장관의 공소장을 보면 혐의내용이 직권을 남용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더 이상 감찰을 할 수 없도록 ②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 변호인들은 "특감반원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는 이번 판결이 검찰 측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환경부 공무원들을 통해 산하 공공기관의 임원들에게 사표를 내라고 한 혐의를 받는다. 대상자들이 대부분 1급 고위 임원이었던 만큼 연임이나 사임은 재량의 영역이었음에도 '의무 없는 일'을 했다는 점에서 강화된 대법 판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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