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자료사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감찰 무마·선거개입 의혹 등을 모두 꿰뚫는 대법원 판결이 30일 나온다.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전원합의체의 첫 구체적 판단으로, 공무원의 직무권한 범위를 직급이나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제시할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은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각종 지원을 배제하도록 한 직권남용·강요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2심에서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판단을 받았다. 조 전 수석은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지만 2심에서는 일부 유죄로 판단이 바뀌었다.
전원합의체에서 2심 결정을 유지한다면 김 전 실장은 징역 4년, 조 전 수석은 징역 2년의 실형에 처해진다. 현재 이들은 모두 불구속 상태에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 범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고 간단히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가볍지 않은 범죄다.
대법원은 1978년부터 최소 6회 이상 직권남용 범죄에 대해 판단한 적이 있지만 모두 3명으로 이뤄진 소부 선고였다. 대법관 13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지금까지 소부 선고에서는 공무원의 직무권한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았다.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한 경우는 그것이 불법적이라고 할지라도 '직권남용'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만 정의했다. 직권남용 범죄는 '월권죄'가 아니라는 의미다.
앞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자금을 횡령(비자금 조성)한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도 이 과정에 공무원들을 동원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왔다. 당시 법원은 차명재산의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본래 공무원에게 지시할 업무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불법 모금 혐의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직권남용 혐의를 성립시켰다.
이처럼 대통령의 직무권한 범위를 두고도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날 전원합의체의 결정은 현재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여러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 전 대통령 사건이 내달 19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재판 개입은 애초에 대법원장(또는 행정처 법관들)의 권한이 아니어서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시절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의 비위혐의를 눈감아 준 감찰무마 의혹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다만 이 사안에서는 조 전 장관의 지시로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들의 감찰 권한이 방해되었는지가 쟁점이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2004년 "직무권한은 반드시 법률상의 강제력을 수반하지 않아도 되고, 그것이 남용될 경우 상대방에게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만들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한편 전날(29일) 검찰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기소한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13명의 혐의에서는 직권남용이 대부분 빠지고 공직선거법 위반만 적용됐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시장에 대한 비위 첩보의 생산·가공 등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전 시장에 대한 첩보 수집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업무범위인지 등을 두고 직권남용 법리 적용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직권남용 혐의는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에게만 적용됐다. 김 전 시장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관들을 인사조치한 의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