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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동물 흉내를? '해치지않아'에게 필요했던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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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 ①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 영화 '해치지않아' 내용이 나옵니다.

빚이 하도 많아 돈 되는 동물까지 다 팔아 치운 고사 직전의 동물원. 그 안의 사람들이 생각한 탈출구는 '사람이 동물인 척 흉내 내는 것'이었다. 원작은 웹툰이라 만화적인 상상력이 숨 쉴 공간이 넉넉했다. 하지만 영화는 달랐다. 더구나 이 설정은 영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동물 탈은 핵심이었다.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질을 보장하면서도, 지나치게 완벽해선 안 됐다. 약간의 빈틈이 필요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재곤 감독은 영화 작업을 하다가 잠시 멈추었고 2018년부터 새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멈춘 이유를 묻자,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나 하는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재홍, 전여빈 등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동물 탈을 보고 나서 '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손 감독은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마음을 놓았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관객 반응'은 전혀 대비할 수 없는 부분이었던 까닭이다.

관객의 평가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손 감독은 '해치지않아'에 얼마나 만족했을까. 그는 "점수로 매길 수는 없다"라면서도 "100명 중 100명이 100% 다 납득하진 않겠지만, 처음에 걱정했던 것에 비해 (사전의) 걱정을 잠재워서 만족하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해치지않아'는 훈(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두 시간에 담기에는 양이 많았는데, 에피소드를 어떤 기준으로 골라냈나.

제일 신경을 쓴 부분은, 어쨌든 동물 탈을 가지고 벌어지는 상황들이 자연스럽고, 전체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갈 것. 그래서 동물 수트를 입고 (연기)하는 상황 대부분은 원작을 갖고, 두 시간에 맞춰 만든 스토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변형했다. 어떤 장면은 '아, 이건 원작을 조금 변형했구나' 하는 걸 즉각 알 수 있는데 변형을 많이 해서 (바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 안재홍을 비롯해 '해치지않아' 배우들은 동물 탈을 보고 이 영화가 가능하겠구나 생각했다던데, 본인이 확신한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하다.

제가 안심한 건 그 후였다. 왜 그러냐면 제가 만든 건 코미디 작품이라서, 거기에 한정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계산하더라도 최종 시사 날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100% 확신을 못 하기 때문이다. (웃음) 저는 동물 탈의 중간 진행(단계)까지 다 보니까 어떤 퀄러티가 나올지는 어느 정도 예측했다. (안심한 시기는) 티저 예고편 나왔을 때 반응을 보고 나서였다.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이 영화만의 특수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해치지않아'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 콜라 먹는 북극곰(안재홍 분), 정면승부 사자(강소라 분), 고개 숙인 기린(박영규 분), 순정마초 고릴라(김성오 분), 멍 때리는 나무늘보(전여빈 분) 등 캐릭터가 확실하다. 캐릭터를 세우면서 어떤 것에 중점을 뒀나.

일단은, 그 다섯 명의 주요 캐릭터와 다섯 개의 주요 동물들이 나왔을 때 각각의 개성 역시 차별화해 가져가는 게 중요했다. 전체를 봤을 때 (개별 특성이) 너무 유사하지 않나 싶을 땐 조합을 새로 하는 과정을 거쳤다. 동물 수트에 관해 얘기하면, 우선 인체와 비슷한 것, 유인원 중 저희는 고릴라를 선택했다. 이족 보행을 할 수 있는지를 봤는데 그런 동물은 별로 없다. 북극곰은 일어서는 장면이 가능하니까 했는데, 고릴라와 다르게 몸 전체를 보면 더 까다로운 유형이다. 사람과 많이 달라서. 나무늘보는 (탈을) 만들 수는 있는데 (실제 크기는)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다. 그래서 크게 해서 코미디 요소로 포함하자고 했다. 사자는 처음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떻게 볼 땐 그럴듯하지만 다르게 보면 허술한 것, 그걸 코미디 요소로 활용하자고 했다. 육식동물이 (동물원 멤버로) 들어가면 더 풍성해지니까. 기린은 그때그때 변화했다. 가능하면 원작 동물을 반영하고 싶었다. (주어진) 제작 기간 내에 전체를 구현하려면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의 변형된 모습으로 나오게 됐다.

▶ 동산파크 사람들이 어떤 '한 덩어리'로 보이기를 원했는지.

어쨌든 코미디 드라마라서, 관객들한테 우울하거나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전망을 안겨주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유형의 감정을 일으켜야 하는가는 정해져 있었다. 초반에는 대립해야만 했다. 대립-화해-대립 이렇게 변화를 계속 주는 거다. 드라마가 있는 영화는 어떤 장르의 영화든 다 비슷할 것 같다.

▶ 극중 캐릭터가 '사람'일 때는 어떤 디테일을 넣으려고 했나.

구체적인 설정은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졌다. 모든 경우를 다 설명하려고 하면 길어질 것 같고, 해경(전여빈 분)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해경은 남자친구 성민(장승조 분)에게만 관심이 있고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3천만 원을 포기하는 거니까. 그 나이대에 모을 수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하면 큰돈이지 않나. 그게 결국 주인공 태수(안재홍 분)의 마음을 자극하고. 해경이라는 캐릭터가 사랑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는 않다는 것, 자기만의 속 깊은 생각이 있다는 것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그거였던 것 같다.(* 기자 주 : 해경은 동산파크 사람들이 동물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낸다는 걸 남자친구 성민이 알아차리자, 본인이 빌려준 돈 3천만 원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성민을 입 단속하려고 한다.)

▶ 동물 탈을 제작하는 고 대표(김기천 분)는 상당히 의뭉스러워 보였는데 그렇게까지 사기꾼은 아니더라.

그렇게 사기꾼일 것 같다는 걸 의도하고 미심쩍게 만들었다. 원작에는 동물 수트를 만드는 과정이 더 긴데 러닝타임 2시간 내로 계산해 보니까 그 과정이 길면, 실제 관람객을 대하고 방사장 밖의 사건이 일어날 시간이 부족해지더라. 또,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면 동물들이 딱 소개됐을 때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봤다. 미리 노출하기 때문에 한 씬으로만 줄였다. 그리고 김기천 선배님이 굉장히 재미있게 잘하셨다. 왜냐하면 그런 씬은 사실 부담스럽다. '아, 이 씬 재밌다'면서 누구 캐스팅할 거냐고 하면서 너무 기대치가 큰 거다. 내용상으로도 중요해 보이니까 굉장히 부담된다. 그런데 잘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다. (웃음)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 차게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변호사 태수(안재홍 분)와 팔려 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된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미션을 그렸다. 맨 아래 사진 왼쪽부터 안재홍, 강소라, 손재곤 감독, 박영규, 전여빈, 김성오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 주인공 태수의 직업이 원작과 달라졌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별 볼 일 없어지는 인턴 변호사고, 그의 생살여탈권을 쥔 건 재벌이다.

이게 굉장히 좀, 파격적이고 과격한 아이디어이지 않나. 그걸 추진하려면 그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원작도 원작만의 동기가 있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을 (관객에게) 빨리 납득시켜줘야 하니까 각색했다. 저 혼자만 한 건 아니고 작가분 중 한 분이 써 주셨다. 그분이 오랫동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고, 변호사 취재 경험이 많았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아주 절박해, 더 빠른 시일 내에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 바라는 위치를 얻기 위해 가장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밀어붙여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 이외에도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여주는 부분이 구석구석 녹아 있었다. 의도한 건가.

영화를 통해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먼저는 아니었다. 저와 같이 쓴 작가들이 결국은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고 나 자신이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 사례와 뉴스를 통해서 매일 접하는 거니까, 스토리를 짤 때 그냥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것 같다. 영향을 받은 게 먼저고 이후에 이야기를 만든 거다. 한예리 씨(민채령 역)의 첫 번째 오빠로 나오는 이현욱 씨가 연기한 민철현 역은 사실은 몇 년 사이에 특정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법한 캐릭터다. 요즘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상류층이나 재벌가 사람들의 사생활이 조금씩 노출되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그 사람들도 결국 상당히 좀 원초적인 거다. (웃음)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지만, 생각보다 폼이 안 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기도 별거 아니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큰 회사 이끄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더 추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저희도 봐 왔으니 자연스럽게 (영화에) 반영된 것 같다.

▶ 처음부터 결말을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일단 주인공(태수)에 한정해서 비유해 보겠다. 사실은 주인공이 선택한 마지막 결정은 실제 상황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다. 몇십 년 동안 안정된 직업을 보장하는 삶을 버리고,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결정을 한 거니까. 대형 로펌에 대항했기 때문에 그 직업 안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위험한 선택이었을 거다. 실제 상황에서 주변 사람이 그랬다면 말렸을 것 같다. '모른 척' 하라고 하는 게 현실이지 않았을까.

근데 이건 영화다. 저는 영화를 만들 때 '이제 이렇게 살아가야 해', '이렇게 하는 게 유일한 정답이야'라고 매번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진짜 살면서 저도 잘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허황되고 치기 어린, 짧은 생각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어렸을 때는 알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더 현명해지는 것 같지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에 결말에서도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하는데, 실제 태수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동물과 관련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고. 적어도 주인공 본인 이익이 되는 결정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동물에게 이익이 가는 올바른 결정을 하게 했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올바른 선택. 물론 그런다고 그 사람 인생이 행복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관점이 반영돼 결말이 그렇게 된 것 같다. <계속>

'해치지않아' 손재곤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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