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두고 벌어진 용산참사…유가족들 "웃음 없는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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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설 연휴 5일 앞두고 벌어진 참사
11년째 '아픈 겨울' 나는 유가족들…"명절? 잊은 지 오래"
경찰 '과잉진압' 검찰 '부실수사' 조사 결과 나왔지만…
책임은 철거민만…유가족들 "재심 원해"
진상규명위 "공권력에 의한 폭력 처벌 위한 특별법 추진해야"

용산 참사 당시 현장 모습 (사진=자료사진)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의 눈 앞에 경찰 특공대원을 실은 컨테이너가 나타났다. 진압 과정에서 큰 불이 나면서 현장은 아비규환이 됐고, 결국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9년 뒤, 경찰은 진상조사를 거쳐 '조기 진압을 목표로 해 안전이 희생된 사건이었다'는 결론을 내놨다.

김영덕(65)씨 남편 고(故) 양회성씨(당시 58세)도 그 때 그 곳에 있었다. 지난 23일 만난 김씨는 아직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집을 나서기 전날 밤 남편이 갑자기 두 아들을 부르더니 자기가 없는 동안 엄마랑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어요. 생전 안 보이던 눈물까지 보이면서…".

칼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유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때로 돌아간다.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던 김씨는 주먹 쥔 손으로 한동안 가슴을 두드렸다. 그는 "12월, 1월만 되면 심장이 뛰고 가슴이 계속 진정이 안 된다. 괜찮다가도 불안하고 그날이 자꾸 떠오른다"며 고개를 떨궜다.

참사 이후 11년째 악몽 같은 겨울을 나고 있다는 김씨는 "자꾸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 같아 두렵고 안타깝다.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라고 말했다.

◇ "소리 내 웃은 적 없다"…명절 잊은 철거민들 서로가 버팀목

용산참사가 일어난 때는 2009년 설 연휴가 시작되기 5일 전이었다. 참사 희생자 고 이상림씨(당시 72세) 아내 전재숙(76)씨는 "참사 후 꼭 1년이 지나서야 남편 장례를 치렀다. 이후 4~5년 동안 명절 쇤다는 생각은 못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금은 매년은 아니더라도 종종 가족들이 모여 밥도 먹고 차례도 지낸다"면서도 "명절에 단 한 번이라도 소리내어 웃어본 기억이 없다"고 덤덤히 말했다.

김씨의 설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김씨는 "식사 자리에 모인 친지들이 맘편히 밥을 먹을 수 있었겠느냐"며 "한번 남편 얘기를 시작하면 울음바다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날들을 "한 마디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린 것"이라고 압축했다. 참사로 일터와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마주한 것은 냉정하고 무거운 '생업'이었다.

일식집 주방장 출신 남편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했던 김씨는 파출부, 호떡 노점상으로 전전하다가 건강 문제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 20년 넘게 고깃집을 운영했던 전씨는 지금은 서울 동대문구에서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참사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었다. 김씨는 "용인 수지에 사는 철거민과 전재숙씨까지 세 가족이 종종 뭉쳐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는다"며 "며칠 전에도 수지에 사는 동생이 집에 와 11주기를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 11년 지났지만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없어…"특별법 제정해야"

용산 참사 이후 현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사진=자료사진)

 

유가족들은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이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와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용산참사 때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했고, 검찰이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를 각각 발표했다.

검찰은 진압작전의 최종 결재권자인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서면조사에 그쳤고, 개인 휴대전화의 통신기록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청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반면, 옥상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은 특수공무방해치사 혐의로 징역 4~5년의 실형을 받아 복역했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책임을 오롯이 철거민들만 진 셈이다. 김 전 청장은 이후 경북 경주에서 20대 국회에 입성했고, 현재 4월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해 7월 유가족들을 만나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검찰의 사과 표명은 없었다.

유가족들은 책임자 처벌 없는 진상규명은 공허하다며 '재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재숙씨는 "재심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제대로된 진상규명은 결코 없다"고 절규했다. 김영덕씨도 "당시 검찰이 경찰의 과잉 진압을 부실 수사했다.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날 그 망루 안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재심이나 재수사가 이뤄지려면 이전 재판 과정에서 나오지 않은 관계자 진술이나 새로운 팩트(사실)가 나와야 한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이 국장은 특히 "공권력에 의한 폭력 범죄는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진상규명을 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거의 유일하게 남은 방법"이라며 "21대 국회가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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