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정보통신(IT) 기술'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대체로 '해킹'을 떠올린다. 북한 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천재 해커가 컴퓨터 앞에 앉아 현란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영화 장면도 어쩐지 익숙하다.
그러나 북한의 정보통신(IT) 산업에 해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고 다채로운 게임의 세계도 존재한다.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게임의 교육적 효과를 적극 홍보하는가 하면, 자체 개발한 게임까지 세일즈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새해 첫날 "대영정보기술교류소에서 양력설을 맞으며 지능형손전화기(스마트폰)용 전략 모의 오락 '임진조국전쟁 1.0'을 개발해 내놓았다"고 소개했다.
임진왜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에는 거북선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 지휘 장면도 화려한 3차원 가상무대로 구현된다.
대영정보기술교류소는 최근 새로운 전투 게임 '호랑이 특전대'도 출시했다. 저격과 야간습격, 매복, 방어 등 각종 전투 환경을 입체적으로 제공하는 게임이다. 다양한 특수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3차원 기술을 활용해 보는 각도를 임의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북한은 오락의 순수한 기능인 '재미'에 초점을 맞춘 게임을 활발하게 선보이고 있다.
또 "최근 가정과 사무실을 비롯한 임의의 장소에서 누구나 손쉽게 설치하여 이용할 수 있는 가정용 전자오락 조종 장치 '모란봉'이 커다란 호평을 받고 있다"는 지난해 9월 10일자 메아리 보도처럼 게임에 대한 일반 주민의 접근성 향상을 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2018년 11월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해안관광지구 거리 안에 전자오락관을 추가 배치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태어난 신세대는 탈정치적인 경향이 있다"며 "그 영향으로 근래에는 체제 선전 등을 위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영정보기술교류소는 운동과 교육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스포츠 게임 '배드민턴 강자 대회'는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한 2인 대전 서비스를 탑재했으며, 교육용 게임인 '수학여행'은 수리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신비한 주사위'는 지능교육과 함께 교훈적인 일화를 제공한다.
지난해 9월 북한에서 출시된 비디오 게임 콘솔인 '모란봉'에선 중국 게임기 '씨드래곤 캐시디'(Cdragon Cassidy G80)나 일본 닌텐도의 위(Wii)를 참조한 흔적이 드러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 게임 개발자들의 실력이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북한 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북한 개발자들은 어릴 때부터 정보통신(IT) 관련 조기교육을 받는 만큼 기본적인 역량은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