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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보호법' 된 산업기술보호법…"노동자들 누가 지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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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다음달 시행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 공개 금지 등이 골자
시민단체 "광범위한 산업기술 포함한 법…작업장 위험 말하지 말라는 것"
민변 다음달 21일 헌법소원 제기…"생명·안전과 직결된 정보 접근 막을 수 있어 문제"

반올림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박하얀 기자)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다음 달 시행을 앞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는 이 법률이 기술 보호를 앞세울 뿐 사실상 '삼성 보호법', '대기업 보호법'에 불과하다며 개정안 폐기를 촉구했다.

반올림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7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기업 눈치 보기 바쁜 국회와 정부 규탄한다", "이윤보다 인권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가핵심기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개정안이 시행되면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는 묵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개정돼 다음 달 21일 시행 예정인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국가기관 등이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정보 비공개' 조항을 신설했다. 국가핵심기술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기술 69개가 포함돼 있다.

산업기술(신기술)을 포함한 정보를 말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도 신설 조항에 담겼다. 반도체 전자 산업, 바이오, 건설, 조선, 화학산업 등 33개 분야, 3000개에 달하는 기술과 제품이 산업기술에 포함돼 있다.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개정안이 노동자의 권리 측면에서 현행법보다 오히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가 기업·기관에 기본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안전 관련 정보마저도 국가 핵심기술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이 시행되는 다음 달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는 법률상 외부에 공개될 수 없다. 시민단체들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노동 환경을 알 길이 더 없어진다고 호소했다.

현행 정보공개법은 원칙적으로 '공개'하되 영업상 비밀 등 공개가 거부될 수 있는 사유를 정하고 있다. 반면 이번 개정안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국가 안전 등의 예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공개하도록 한다. 소송 진행 중 알게 된 정보나 적법한 경로를 통해 얻은 정보라도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거나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반올림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 관련 정보 공개' 등을 요구하는 피켓을 펼쳐놓고 있다. (사진=박하얀기자)

 

개정안은 산업기술 유출·침해 행위로 기관에 손해를 입힌 자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산업기술 침해 행위가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등 처벌 기준을 강화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는 "광범위한 산업기술들을 포함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작업장의 위험을 알리는 활동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활동가는 "산업재해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일했던 일터가 얼마나 위험한지 배운 적이 없다"며 "노동자들이 병에 걸렸을 때 가진 것이라고는 오래돼서 희미해진 기억, 간혹가다가 들을 수 있는 동료들의 증언,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조각 정보들 뿐"이라고 말했다.

또 개정안 시행으로 기업들이 산업 안전과 관련된 문제 제기 자체를 차단하는 등 사전 검열을 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시민단체에 제보해 위험을 알리는 활동도 처벌받을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오민애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작업 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받기만 하면 되는 '만능 패'를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오 변호사는 "(산재가 빈발하는) 전자 산업에서 사용되는 기술 대부분이 국가핵심기술에 포함될 수 있다"면서 "산업재해 심사나 관련 소송 절차에도 적용될 수 있고,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정보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는다"고 지적했다.

개정안 조항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들은 "개정안은 처벌을 정하고 있으면서도 조항이 명확하지 않다"며 "어떤 목적으로 정보를 공개해도 문제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될 수 없다'고 명시하지만 '관련' 정보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일부가 관련돼 있어도 정보 전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산업활동으로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안전과 관련된 정보는 사용,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단서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이 같은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내용이 단서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로 기업과 다퉈야 하는 피로를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개정 법률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노동자나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오는 2월 21일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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