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공수처 설치 법안에 반대하며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사진=황진환 기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패배해 후폭풍에 휩싸인 자유한국당이 별다른 수습 방안을 내지 못하며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의원직 사퇴와 헌법 소원, 장외 투쟁 등 실효성 대신 구호만 요란한 대응책만 제기된 채 사태가 이렇게까지 밀린 데 대한 지도부 책임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황교안 대표가 비례대표를 포기하고 지역구에 출마할 뜻을 밝히는 등 정면돌파 카드만 거론된다.
범여권과의 세(勢) 대결에서 완벽히 밀렸으나 위기를 반전시킬 '통합론'은 여전히 구호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황교안 대표는 민생현장 탐방 등 대권행보에 이어 장외집회를 강행하며 현실과 동 떨어진 행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스트트랙 대패 한국당, 책임론·후속 대응책 '부재'
범여권이 주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지난달 30일, 한국당은 2시간40여분 간 비공개 의원총회를 통해 향후 대응을 논의했다.
광화문 합숙 농성, 총선 불출마 결의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으나 결론은 '의원직 총사퇴'였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정국이 시작될 때부터 지도부에서 거론됐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달린 대응책이 돌고 돌아 확정된 셈이다.
당 내부에서도 사퇴 결의서는 지도부에 위임하지만 실제 이행은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거나, 회기 중이 아닐 때는 국회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우 의원은 SNS을 통해 "의원직 사퇴카드는 카드가 될 수 없다. 비호감 1위인 정당소속 의원들의 사퇴는 모두를 행복하게 할 뿐"이라고 혹평했다.
자유한국당 김한표 원내수석부대표가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피곤한 듯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준연동형 비례제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향한 헌법소원도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기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밖에 향후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협상 참여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여부도 명확히 정하지 못했다.
내년도 예산안과 선거법, 공수처법에서 3연패를 당했지만 지도부 책임론도 당내에선 잠잠한 모습이다. 황교안 대표의 강경 투쟁과 심재철 원내대표의 협상력 부재가 물밑에선 제기되고 있지만 공식석상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황 대표의 과도한 원칙론과 다선 의원 답지 않는 심 원내대표에 판단력 부재에 실망한 의원들이 많다"면서도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있다 보니 대놓고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있다. 당이 이대로 가면 정말 큰 일"이라고 말했다.
◇황교안 '통합론' 또 구호만?…위기 수습 보다 대권행보 지적전략 실패를 의식한듯 황 대표가 꺼낸 돌파 카드는 또다시 '통합'이었다. 복수의 의원들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30일 의총에서 "통합론을 조만간 제시하겠다", "정말 자신있다. 믿어 달라", "총선 과반이 가능하다. 희망을 갖자"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내에선 의심의 시각이 팽배한 모습이다. 한 영남권 초선 의원은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한 서른번 얘기했는데 실패했지 않느냐"며 "시간을 끌려고 통합을 얘기한 게 아닌가 싶다. 성과가 곧 난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비슷하다"라고 꼬집었다.
황 대표의 통합론이 신년을 맞은 1월1일 나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으나, 별다른 메시지가 담기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애초 대국민담화 형식의 행사가 예상됐으나 오찬 간담회로 정해졌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우리시장을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황 대표의 행보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수처법이 통과된 뒤 다음날, 황 대표의 첫 행보는 민생현장(대림동 우리시장) 방문이었다. 당 일각에선 위기 수습 보다 '대권 행보'에 나섰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오는 3일에는 또다시 대규모 광화문 장외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당내에선 '중도 여론에 반한다'며 집회 반대 기류가 있었으나 황 대표의 의지가 관철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 상황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총선 위기론'은 절정에 달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패스트트랙 대전 이후로 비상대책위원회 요구가 고개를 드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무지와 무능과 독단의 소산이다.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안"이라며 비대위 필요성을 언급했다.